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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부실투성이 미분양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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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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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경제부문 기자

지난해 11월 3.3㎡당 평균 4200여만원에 분양돼 1순위 평균 12.4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 지난해 12월 초부터 계약을 진행했는데 지난달부터 분양 조건을 바꿨다. 당초 입주 때 일시에 내도록 한 중도금(분양가의 60%) 이자를 받지 않고 냉장고 등 유상 선택품목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미분양 물량을 빨리 팔기 위해서다. 그런데 서울시의 1월 말 기준 미분양 현황에 이 아파트 이름이 빠져 있다. 어찌 된 일일까.

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미분양 통계는 주택시장의 주요 가늠자다. 그만큼 영향력이 커 지난해 말 미분양이 한 달 새 50% 넘게 급증했다는 발표는 주식시장의 ‘어닝쇼크’처럼 주택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미분양 숫자부터 믿기 힘들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국토교통부가 밝힌 미분양은 준공된 주택을 제외하고 2만1047가구였다. 업체 측에 분양보증을 해 주고 분양실적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의 통계와 차이가 너무 크다. 이 공사의 조사 통계에 따르면 같은 시점의 분양률은 81%였다. 분양률 계산의 기준인 분양보증 가구 수는 60만 가구 정도로 추산된다. 12만 가구가 팔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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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는 미분양 집계가 업체의 입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는 업체 측이 제출한 미분양 현황을 취합해 국토부에 보고하고 국토부는 이를 그대로 발표한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미분양이 많으면 수치가 인터넷에 떠돌며 ‘나쁜’ 단지로 지목돼 분양이 어려워진다”며 “자치단체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다른 주택 거래 통계와 달리 미분양의 경우 업체 측의 엉터리 보고를 제재할 장치가 없다. 자치단체가 미분양을 직접 조사하지도 못한다.

대부분 자치단체가 공지하는 단지별 미분양 세부 현황에도 허점이 많다. 업체 측이 게시를 원하지 않으면 제외한다. 대구시의 1월 미분양 단지 리스트에는 ‘건설사 요청으로 미공개’란 문구와 함께 미분양 현황이 비어 있는 단지를 발견할 수 있다.

미분양 통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물량이 빠진 것도 허점이다. 미분양 통계가 민간 주택 위주가 되면서 2010년 7월부터 공공 미분양은 ‘0’으로 표시되고 있다. 공공이 분양하는 물량은 전체의 20~30% 정도를 차지하고 근래 들어서는 연간 10만 가구가 넘는다. 미분양 통계가 실제로 팔리지 않은 물량을 보여주기에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미분양 통계의 의의를 ‘주택 보급과 관련한 정책 수립 때 기초자료로 활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통계로 제대로 된 주택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장원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