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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객실선 독서 삼매경, 내려선 문화·맛집 탐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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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테마형 전철이 지난달부터 운행에 들어갔다. 경의중앙선(문산∼홍대입구∼청량리∼용문) ‘독서바람 열차’를 탄 가족과 청소년들이 책을 읽고 있다.

겨우내 움츠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가볍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교통체증, 주차전쟁, 바가지요금 때문에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오기 일쑤다. 이런 고민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교통카드 한 장 들고 전철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표를 예약하지 않아도,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다. 전철이 여행의 트렌드를 바꿔놓고 있다.

2시간36분 ‘독서바람 열차’
수인선 43년 만에 전철로 부활
교통카드 한 장으로 추억 쌓기

지난 5일 오후 1시쯤 경의중앙선 운정역. 다양한 책 문양이 둘러진 전철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주부 박경숙(45·경기도 파주시)씨와 두 딸이 기다렸다는 듯 책 한 권씩을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지난달 첫선을 보인 ‘독서바람 열차’다. 책을 보며 여행하는 테마형 전철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파주시·코레일이 ‘책의 도시 파주’와 ‘자연과 웰빙의 도시 양평’을 연계하기 위해 만들었다. 독서바람 열차는 경기도 파주 문산역에서 양평 용문역까지 평일 두 차례, 주말과 휴일 세 차례 운행한다. 124㎞ 구간으로 전철 노선 가운데 가장 길다.

전철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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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이 운길산역과 양수역을 잇는 철교를 지나고 있다.

이 전철 객실 하나가 책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인문학·시집·소설·동화책 등 다양한 종류의 도서 500여 권이 꽂힌 4개의 책장과 전자책이 있다. 전철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볼 수 있다. 매월 작가와의 만남, 북 콘서트, 독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박경숙씨는 “아이와 책을 읽고 창 밖 정취도 감상하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며 “여행하는 동안 지식도 쌓고 지루함도 날려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곳곳에 근대사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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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선과 연결된 광명시장에선 구수함과 정겨움이 넘쳐난다.

서울과 인천시 부평구를 잇는 전철(7호선)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1일부터 한 개 전동차 전체를 세계여행을 테마로 운행에 들어갔다. 라오스와 체코, 호주의 주요 도시와 신혼여행지에 어울리는 나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내부를 꾸몄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하나투어가 여행을 꿈꾸는 시민들을 위해 만들었다.

 전철이 다양한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출퇴근 위주의 이동수단에 불과했던 전철이 여행객을 위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서울 도심의 명소와 옛 정취가 스며든 골목길 같은 추억의 장소는 물론, 산과 바다까지 이어준다. 전철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버스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한갓진 여유를 누리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도 없다. 각종 모임이나 가족 나들이, 특별한 사람과 함께 소소한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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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노선이 새로 생겼다. 1995년 12월 31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인선이다. 수원과 인천 주민의 삶의 터전을 이어주던 열차가 폐선 43년 만에 전철로 다시 태어났다. 인천관광공사는 지난달 27일 수인선 개통을 기념해 근대역사문화 탐방과 식도락을 주제로 테마여행 코스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인천 옛 포구의 향취와 장터, 주변 골목까지 돌아볼 수 있어 봄맞이 여행지로 제격이다.

 이번에 개통한 인천역∼신포역∼숭의역∼인하대역을 중심으로 인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나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근거지였던 소래염전과 소래포구를 비롯해 신포시장과 용현시장, 인천항과 월미도, 차이나타운 등 맛과 멋이 살아 있는 곳에서 추억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코레일은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여행객 유치에 나섰다.

신설역 주변 관광지와 맛집을 다녀온 후 인증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수인선 구간 14개 역을 방문해 도장을 찍어 오면 추첨을 통해 신설역 이미지가 새겨진 충전용 교통카드를 준다.

체험·휴식까지 한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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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면 인천·충청·강원 지역에 있는 관광지와 전통시장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산·바다·호수·공원·유적지·수목원·박물관도 하나로 이어준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와 체험학습, 바닷가 해맞이 장소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빌 수 있다.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은 “전철은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버스와 달리 관광지·전통시장·유적지 등을 한번에 둘러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며 “앞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 객석에 앉은 것처럼 네모난 스크린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전철 여행이 뜨는 이유는 경기 불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전철 여행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한국트렌드연구소 박성희 연구원은 “쇼핑은 도시에서 하고 여행은 교외로 떠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여행·체험·휴식을 하나로 융합하는 쪽으로 여행 트렌드가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강태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안재욱, 코레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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