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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스스로 위기 맞은 하창우 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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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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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기자·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하창우 호’가 ‘자초위난(自招危難)’에 빠졌다. 지난달 23일의 일 때문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이날 하창우 변협 회장은 몇몇 측근과 간단한 상의를 거친 뒤 다음 날 아침 테러방지법에 ‘전부 동의한다’는 의견서를 정 의장과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게 보냈다. 공교롭게도 23일은 하 회장이 취임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일선 변호사들의 반발은 거셌다. 변협 인권위원들은 지난 1일 긴급 위원회를 열고 “의견서가 변협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확인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 회장을 압박했다. 이들의 성명에는 1000여 명의 변호사가 동참했다. 지난달 29일 변협 정기총회에서 하 회장이 “회원들의 중지를 모으지 못해 유감”이라고 사과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인권위원들은 10일까지 하 회장이 응답하지 않으면 추가 행동에 나서겠다고 통첩했다. 하 회장은 침묵 중이다.

변협 회원들 반발의 핵심은 하 회장이 사전에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도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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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실 ‘하창우 호’의 지난 1년은 논란의 연속이었다. 하 회장은 취임 직후 차한성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를 반려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관예우 타파’라는 명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퇴임하는 대법관·검찰총장에게 편지를 돌리며 ‘개업 자제’를 촉구했고 신임 대법관들에겐 개업포기 서약까지 받았다. 검찰을 불편하게 한 검사평가제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우려 속에 밀어붙였고, 하 회장의 반대 의지가 강했던 대법원의 상고법원 도입 문제 역시 변호사들 사이에선 찬반이 갈리는 주제였다. 지론인 ‘사시 존치’ 추진 과정에선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들과 맞섰다. 하 회장의 거침없는 행동은 일부 변호사로부터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돈키호테 같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변협 회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입법안에 대한 의견 제시 외에도 대법관후보추천위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에 당연직으로 참가하고 변호사 등록심사와 비위 변호사 징계 등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제는 회장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회칙상 이사는 모두 회장이 추천하고 산하 각종 위원회는 모두 자문기구에 불과하다. 입법안에 대한 의견을 낼 때 ‘중요 사항’은 이사회 의결을 요하지만 변협 회장이 “일상적 의견 표명”이라고 주장하면 이사회를 안 거쳐도 그만이다.

테러방지법 찬반과 하 회장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지금 변협 내부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위기인 듯하다. 하 회장이 10일 전후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임장혁 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