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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알파고가 이긴다면 누구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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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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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교수·심리학과

입신 9단의 이세돌과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 간 세기의 바둑대결이 이틀 후로 다가왔다. 물론 서울에서 열리기에 우리의 관심이 증폭된 측면도 있지만 과학에 관심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열광하고 있다. 신경망 프로그래밍, 머신러닝, 딥러닝 등과 같은 용어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먼 세계의 얘기로만 여겼던 인공지능이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볼 수 있게 됐다.

언론은 연일 누가 이길 것인지를 보도하고 있다. 현재 승률은 반반이라고 하고, 마지막에는 대부분이 이세돌이 이겼으면 하는 기대를 얘기한다. 과연 누가 이길까? 그런데 우리가 이런 승자를 맞히는 질문으로 열광하고 있을 때 과연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는 이기고 싶어하고, 이기려는 의지가 있기는 할까? 과연 알파고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은 1956년 ‘사람 같은, 특히 인간의 지능을 닮은’ 기계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그때 당시에는(아마 지금도)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믿었다. 다른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 본능이나 감정 같은 것은 열등한 것이고, 논리적인 인지적 능력에 의해 통제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사람 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정보처리를 할 수 있는, 이왕이면 더 빠르고 잘할 수 있는 기계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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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부 한정된 능력에서는 그런 기계들이 이미 우리의 일상에 널려 있다. 인간의 머리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계산을 컴퓨터는 순식간에 해내고,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다 알 수도 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이용해 빠른 길을 찾아준다. 이런 인공지능 기계들은 우리에게 더 편안하고 나은 세상을 이미 가져다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계들이 인간보다 아무리 더 뛰어나도 인간이 그들을 (아직은)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시키는 것만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기계들은 스스로 의지가 없다. 뭘 원하지도 않고, 시킨 일을 거부하지도 않고, 시키지 않은 것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만약 스스로 의지를 가진 기계에 대한 상상은 항상 두려움으로 귀결된다. 컴퓨터를 끄려는데 자신은 꺼지기 싫다고 계속 켜져 뭔가를 하고 있는 컴퓨터를 상상하면 무섭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마치 의지를 가진 것 같은 기계들은 이미 있다. 가끔 자신의 길 안내 지시를 어기고 다른 길로 갈 때 끊임없이 돌아가라고 미친 듯이 번쩍거리는 내비게이션을 보면 ‘그만해, 그건 집착이야’라고 외치게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는 시킨 대로 안 하고, 시키지 않은 일을 한다. 물론 누군가가 멀리서 몰래 시킨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그 컴퓨터의 주인 입장에서는 스스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인공지능 발전의 끝이 그리 장밋빛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구글의 알파고에 대한 평가는 그 정보처리 능력의 속도와 범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들리는 바로는 몇 주 만에 100만 번의 대국을 치르는 속도로 매일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파고는 최대한 많은 집을 차지하라는 최종 목표만 입력된 기계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바둑을 두면서도 긴장하지 않고, 즐기지도 않고, 이겨도(집을 더 많이 차지해도) 기쁘지 않다. 그냥 자신이 더 크게 이길 수 있었던 수를 분석하는 동시에, 벌써 전 세계의 기사들과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진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허탈할 것이다.

바둑이 뭔지도 모르고, 왜 이겨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바둑을 밤낮으로 두고 있는 알파고를 보면서, 문득 한국의 청소년들이 생각났다. 우리의 자녀들은 매일 외우고, 문제를 풀고, 시험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그 노력, 학습량과 속도, 경쟁을 생각하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달에 100만 대국을 둔다는 알파고에 못지않다. 그런데 우리의 청소년들은 왜 그러고 있을까? 그 공부와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는 있을까? 한국은 여전히 사람의 덕목에 지적 능력만 있다고 믿었던 초기의 인공지능 과학자처럼 보인다. 아마 대부분이 알파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자녀를 꿈꿀 거다. 자녀들을 인공지능과 경쟁시키려 한다면 그건 멍청한 짓이다. 어차피 질 게임이니까. 인간이 미래의 인공지능보다 궁극적으로 앞서는 것은 바로 그게 무엇이건 간에 그걸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 중 누가 이기든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구글, 그 운영진이다. 구글의 운영진은 이 경기의 의미와 왜 이겨야 하는지를 안다. 그래서 이기고 싶어한다. 알파고는 그냥 집만 계산하는 기계다.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은 과연 구글 운영진과 알파고 중 누구로, 무엇으로 키워지고 있을까?

허태균 고려대 교수·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