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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2000년엔 사라진다던 결핵이 지금도 위험한 까닭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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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는 지카 바이러스로 인해 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행 기준치의 4배가 넘을 정도의 독감이 기승 중이죠. 대체 의학이 얼마나 더 발달해야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잠깐 과거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커버스토리 질병과의 전쟁 | 현대사회 편

1970년대 전문가들은 20세기 말까지 전염병을 박멸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효과가 좋은 항생제와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도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2016년에도 질병은 이곳저곳에서 출몰하고 있어요. 인간이 진화하듯,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 역시 살아남기 위해 숙주를 감염시키는 능력을 더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도시 환경과 그로 인한 생활 습관도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질병의 출현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요인들을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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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 버린 자연의 법칙

많은 동물의 서식지인 삼림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살기에도 유리한 환경이에요. 삼림과 가까운 지역의 개발은 신종 질병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집트 아스완댐이 완성되고 7년 뒤인 1977년, 약 20만 명이 리프트계곡열에 감염돼 600명의 희생자를 냈죠. 리프트계곡열은 아프리카의 남쪽과 동쪽에 살던 양·소에게서 나타나던 질병입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북쪽으로 가는 새로운 통로를 댐이 열어줬다고 분석했어요.

지카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는 흰줄숲모기와 이집트숲모기죠. 전문가들은 천연림이 벌목으로 사라지고 도시화되며 모기들이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늘어났다고 말합니다. 또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해 모기가 살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죠. 수의학을 전공한 마크 제롬 월터스는 자신의 책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에서 “1970년대 이후 등장하는 신종 질병 75%가 야생동물과 가축에서 전파됐다”며 “자연과 인간과 병원체 사이의 균형이 깨진 것이니 생태계를 보존해야 질병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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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계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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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의 15~30%가 알레르기를 앓고 있습니다. 알레르기란 면역체계의 과민반응을 말해요. 세균·바이러스·기생충과 같이 질병을 일으키는 외부 물질을 찾아내 제거하는 방어 작용을 면역체계라 해요.

알레르기는 면역세포에 혼선이 생겨 외부 물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세포를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며 생겨요. 원인으로는 환경의 변화를 주로 말합니다. 그중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화학물질이 문제로 꼽히죠. 19세기 석탄을 동력 삼아 산업혁명을 시작한 인류는 20세기엔 석유를 이용해 플라스틱·합성고무·농약·살충제 등의 화학물질을 만들어냈어요. 면역계가 보기에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외부 물질’이었겠죠.

화학물질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내분비계 교란물질)이 호르몬을 교란하기도 합니다. 농약이 유입된 미국의 아포프카 호수에서 1980년 악어 개체수가 급감한 적이 있죠. 농약이 수컷 악어의 성호르몬 신호에 교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에요. 너무 깨끗한 위생 환경도 알레르기의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어요. 과거와 달리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자 할 일이 없어진 면역체계가 엉뚱한 외부물질을 공격한다는 겁니다.


양 많고 열량 높은 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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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발표한 ‘2015년 학생 건강검사 표본분석’을 보면 학생 비만율이 2006년 11.6%에서 2015년 15.6%로 늘었습니다. 최근 비만은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취급받고 있죠. 비만은 칼로리 소모보다 섭취가 많아 남아도는 에너지가 지방세포에 축적된 상태를 말해요. 즉 활동량에 비해 먹는 양이 더 많은 거죠.

수렵채집 시대에 인간은 음식을 일정한 때에 먹을 수 없어, 있을 때 많이 먹어두는 게 유리했어요. 이런 생물학적 시스템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도 식량이 부족할 때처럼 배부르게 먹는 습관을 갖고 있죠.

하지만 열량이 부족한 상태에 적응해온 몸은 에너지가 남아도는 지금의 환경에 취약합니다. 비만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심혈관질환·고혈압·당뇨 등의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두 배 이상이죠. 특히 비만의 합병증으로 주로 지목되는 당뇨병은 한국과 같은 아시아에서 빠르게 늘고 있어요. 반면 체중을 줄이면 당뇨나 심혈관질환의 위험도가 떨어지고 고혈압·고지혈증 같이 비만으로 생기는 문제의 상당수가 개선되기도 합니다.

늘어난 평균수명

2013년 OECD 회원국 평균 기대수명은 80.4세입니다. 1971년엔 70.4세였으니 42년 만에 10년이 늘은 셈이죠. 그런데 평균수명이 늘자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질병들이 등장했어요. 암은 각종 화학물질이 발암물질로 작용하거나 방사능·자외선에 노출된 경우, 식이습관과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수명이 늘며 세포 내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빼놓을 수 없죠.

세포가 어떤 이유로 인해 돌연변이로 변형된 것을 암세포라고 합니다.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DNA를 복제해 나눠 갖는데, 분열할수록(=나이가 들수록) 복제 오류가 생길 위험도 높아지죠.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알츠하이머 역시 노인성 질환이라 평균수명이 짧은 시대에는 흔치 않았어요. 200여 년 전 평균수명은 30~40세에 불과했습니다. 현대의 주요 질환이 대개 40세 이후 나타난다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노화와 관련된 암·심장질환·당뇨 등을 거의 겪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약발’이 떨어진 약

한국질병관리본부는 새 학기를 맞이하는 중·고등학생에게 결핵예방수칙을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 1970~80년대 미국 보건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결핵은 2000년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었죠. 코흐균(결핵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보급돼 거의 사라질 뻔했던 결핵은 1980년대 내성을 가진 변종이 나오며 환자가 늘어났어요.

당시 유행한 에이즈도 한몫합니다. 에이즈 환자는 면역체계가 약해 결핵 감염에 취약했기 때문이에요. 세균이 유전적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항생제를 무능하게 만드는 효소를 생산하며 그 항생제에 더는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을 내성이라고 하죠. 이런 특성을 세균이 자신의 후대에게 물려주면 항생제를 복합처방해도 소용없는 ‘슈퍼 박테리아’가 생깁니다.

내성은 항생제 치료를 끝까지 받지 않을 경우 생길 가능성이 높아져요. 폐렴과 같이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균을 검사한 결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항생제에 70%가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죠. 약을 남용한 탓에 또 다른 질병 피해를 만든 겁니다.

질병까지 확산시키는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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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퇴치 전략 중에는 병이 퍼지기 전에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있어요. 병균을 연구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의 질병은 주위로 퍼지는 속도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빠릅니다.

2002년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는 6개월 만에 세계로 퍼져 8000명을 감염시켰죠. 항공 교통의 연결망을 따라 확산됐다고 해요.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운송수단(200년 전에 비해 사람들의 이동 거리는 100배 늘어났다고 합니다)이 질병까지 빠르게 옮겨준 겁니다.

특히 요즘의 질병은 대부분 공기(정확히는 비말 감염)로 전염되죠. 바이러스는 사람이 밀집된 곳에서 많이 퍼지고 빠르게 변이해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비율은 세균에 비해 1000배나 높죠.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는 하루에 바이러스 100억 개를 생산합니다. 언제 어떻게 감염되는지 알기 어려운 이런 질병에 대항하려면 간단한 위생규칙을 지키는 수밖에 없어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입을 가리고 하는 것, 그리고 손을 잘 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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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인터뷰
통제할 수 없는 공기 감염, 위생수칙 지켜야만 예방할 수 있어

전문가들은 “인간의 몸은 그 옛날 수렵채집 시기의 생활양식에서 크게 변한 게 없다”고 말합니다. 현대의 질병들은 급격히 변한 생활에 몸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질병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이은희씨(사진)에게 현대의 질병의 특징과 대응법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현대의 질병이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균성 질환은 줄고 바이러스 질환이 증가했죠. 세균은 사람의 세포와 차이가 있어 구분이 쉽지만, 바이러스는 세포 속에 들어가 결합하기 때문에 세포는 죽이지 않고 바이러스만 찾아 파괴하는 것이 어려워요. 연구자들이 주로 백신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죠. 백신은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지만 질병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야한다는 조건도 있어요.”
의학이 발달했음에도 과거에 비해 질병이 더 늘어났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요.
“세계화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질병이 늘었다는 점,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이 발달했다는 점, 수명이 연장되며 질병에 걸릴 확률이 늘었다는 점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이 인식하고 접하는 질병이 많아진 것뿐, 과연 과거보다 질병이 더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연구해 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질병은 앞으로도 늘어날 텐데,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현대는 과거에 비해 위생상태가 좋아졌어요. 수인성 전염병은 거의 줄어들었죠. 다만 공기와 같이 통제 불가능한 조건에서 감염이 생기죠. 공기 감염이라고 하면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사람 몸에 들어와 감염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 오랫동안 살아있을 수 없어요. 사람의 체액, 즉 침 방울 같은 비말에 흡착해 있다가 이것이 다른 사람과 접촉했을 때 감염되죠. 예방은 공중 에티켓을 강조하는 수밖에 없어요. 기침·재채기를 할 때 입을 가리는 것, 감기 등에 걸렸을 때 마스크를 쓰는 것, 손을 잘 씻는 것 등이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인간만 존재할 수는 없어요. 수많은 미생물과 함께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생명에 큰 지장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또 우리 몸의 면역계는 생각보다 튼튼하니 믿는 것도 필요해요. 면역력을 높이려면 해롭지 않은 수준에서 다양한 외부 물질을 접해야 하죠.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요. 우리 몸은 최소량의 법칙을 따라요.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성분에 의해 지배된다는 법칙이에요. 사실 지금 시대에 걱정해야 할 것은 결핍증이 아니라 과다증이죠. 몸에 좋은 음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게 아닌 이유고요. 누가 뭘 먹어서 건강해졌다는 비법 역시 조심하는 게 좋아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입증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맞춰주는 균형이 중요해요.”

 글=이세라 기자·권소진 인턴기자 slwitch@joongang.co.kr

도움말=이은희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참고 도서=『하리하라의 몸 이야기』(해나무), 『질병의 탄생』(사이), 『신종 질병의 세계』(현실문화), 『콜럼버스의 교환』(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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