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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붉은 꽃망울 톡톡~ 봄이 훨훨 날아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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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남녘 섬 봄맞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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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만발한 숲에 마침 직박구리 한 마리 날아들었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 세연정에서 반가운 소식처럼 봄을 만났다. [사진=최승표 기자]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절기가 내일(5일)이라지요. 그러나 남도에서 경칩(驚蟄)은 이미 과거 완료형 사건이었습니다. 지난달 23일 전남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연못에서 청포 묵처럼 탱글탱글한 개구리 알을 봤습니다. 괜히 심장이 뛰더군요. 봄을 알려온 건 개구리 알만이 아니었습니다. 겨울부터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꽃이 제 몸을 던져 바닥을 붉게 물들였고, 들판에는 연둣빛 풀이 수줍게 돋아 있었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봄 내음이 찰랑였습니다.

week& 은 해마다 이맘때면 봄을 마중하러 남쪽으로 내달렸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맞이 여정에 나섰지요. 남녘 땅끝까지 내려가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배를 타고 더 남쪽의 섬을 찾아갔습니다. 여행기자 2명이 각각 경남 통영 수우도와 전남 완도 보길도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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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어 봄에 지는 동백꽃.

사실 남도의 섬까지 가지 않아도 봄의 기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가는 길, 차창에 비치는 풍광이 시나브로 화사해졌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전북 군산 이남부터는 누런 논바닥에 여린 풀잎이 돋고 있었습니다. 전남 함평과 무안까지 지나니 들녘의 색깔은 두 가지로 정돈됐습니다. 붉은 황토 아니면 초록 밭이었습니다. 마늘과 양파가 한창 대를 올리고 있었고, 아낙들이 봄동을 거두느라 바빴습니다. 해가 어스름한 저녁에는 기러기 수만 마리가 북녘으로 올라가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선 우리 남도의 따스한 풍경이었습니다. 수우도와 보길도는 낙원 같은 섬입니다.

week& 이 처음 들른 수우도는 외진 섬이었습니다. 행정구역은 통영에 속하지만, 경남 사천 삼천포항에서 하루에 2대 뿐인 여객선을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섬에 하나밖에 없던 분교도 문을 닫은 그야말로 낙도(落島)입니다. 한데 이 섬이 최근 백 패커와 낚시꾼 사이에서 성지로 뜨고 있답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묵고 감성돔 같은 대물을 낚을 수 있으니 낙원이 따로 없겠지요. 하나 이 섬은 예부터 동백의 낙원이었습니다. 겨울부터 봄까지 붉은 동백꽃이 지천을 덮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하여 섬에서는 수우도를 ‘동백섬’이라 부릅니다.

보길도는 수백 년 전부터 낙원이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찾아가는 명소가 됐지만, 400여 년 전에는 한 사람, 고산 윤선도(1587~1671)의 낙원이었습니다. 그가 중앙정치에서 밀려난 불운한 정객(政客)이었는지, 아니면 시대를 외면한 채 음풍농월(吟風弄月)만 즐긴 한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고산은 보길도에 조선 최고의 정원을 남겼습니다. 그가 꾸민 세연정에는 이미 화사한 봄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아직 춥습니다. 당분간 추울 것입니다. 아니, 하수상한 시절이어서 가슴 한구석이 내내 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찬란한 봄을 찾아 남(南)으로 달려갈 일입니다. 봄은 누구나 누려 마땅한 선물 같은 계절이니까요.


글=최승표·이석희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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