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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극적인 우리의 만남, 첫사랑처럼 설레는 모험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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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스터즈’ 사만다 푸터먼 & 아나이스 보르디에


해외 입양아를 다룬 영화 중 이만큼 밝고 사랑스러운 작품도 드물지 싶다. 3월 3일 개봉하는 ‘트윈스터즈’(원제 Twinsters, 사만다 푸터먼·라이언 미야모토 감독)는 1987년 부산에서 태어나 각각 다른 나라로 입양된 한국인 자매의 극적인 상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3년 전 SNS를 통해 만나게 되기까지 이들은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 자신이 쌍둥이라는 사실조차도.

프랑스 파리에서 자라 영국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하던 아나이스 보르디에(29)는 친구가 알려준 유튜브(YouTube) 영상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배우를 발견한다. 뇌리를 스친 건 입양 서류에도 써 있지 않았던 ‘쌍둥이’란 단어.

안녕, 사만다! 얼마 전 우연히 너를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아나이스가 미국 LA의 여배우 사만다 푸터먼(29)에게 보낸 페이스북(facebook) 메시지는 25년 만의 만남에 도화선이 됐다. CNN·뉴욕포스트 등 해외 언론에서 화제가 된 이들의 사연은 미국에 이어 지난해엔 국내에도 『어나더 미』(책담)라는 에세이집으로도 출간됐다.

‘트윈스터즈’ 개봉에 맞춰 내한한 아나이스와 사만다를 서울 북촌 에어비앤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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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스터즈` 아나이스 보르디에(왼쪽), 사만다 푸터먼(오른쪽). [사진 라희찬(STUDIO 706)]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쌍둥이 자매가 검정 고무신을 맞춰 신고 나타났다. 문득 ‘트윈스터즈’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니, 신기해.”

 아나이스와 영상 통화를 마친 사만다가 들려준 고백이다. 첫 영상 통화할 땐 쑥스러워 계속 웃기만 했던 쌍둥이는 지난 3년간 스무 번 넘게 만나며 더 애틋해졌다.

누가 언니예요?”

‘JTBC 뉴스룸’(2014~, JTBC)에서 앵커(손석희)의 돌발 질문에 장난스레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여느 의좋은 자매 같았다.

이날 아나이스가 입은 초록색 옷은 사만다가 지난해 ‘트윈스터즈’로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혼자 한국에 다녀가며 사다준 선물. “대신 아나이스의 양말을 슬쩍했다”며 푸흐흐 웃는 사만다 덕에 한바탕 큰 웃음이 터졌다.

Q 얼마 만의 만남인가.

아나이스 보르디에(이하 아나이스) “마지막에 만난 게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때였나?”


사만다 푸터먼(이하 사만다)
“‘트윈스터즈’가 지난해 7월 미국에서 개봉하고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됐다.”

Q 다큐멘터리에서 처음 쌍둥이라는 걸 알게 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더라.
사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 내가 쌍둥이구나, 알고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들어본 적 없는 곳을 향한 여정에 오르는 것 같았다.”

아나이스 “지금은 쌍둥이란 사실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엔 정말 흥분했다. 사만다와 연락이 닿았을 때부터 매 순간을 꼼꼼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안 쓰던 일기도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오늘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계집애가 답변이 없다’ 하는 사소한 것까지 말이다(웃음).”

Q 사만다는 연인 라이언 미야모토와 ‘트윈스터즈’를 공동 연출했다. 편집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나이스의 의견이 신경 쓰였겠다.
사만다 “우리 이야기인 만큼 내 관점뿐 아니라 아나이스의 감정도 충실하게 담겨야 했다. 내내 신경 쓰였는데, 아나이스가 영화를 보고 좋아해 줘서 한시름 놨다.”

아나이스 “사만다를 전적으로 신뢰해서 우려는 없었다. 우리들의 대단한 모험담을 어떻게 보여줄지 그저 궁금했다.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논스톱 촬영한 분량이 어마어마했으니까. 결과물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사만다가 디테일한 에피소드보다 큰 그림, 감정을 공감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의미가 뭔지 알겠더라.”

Q 편집은 어떻게 했나.

사만다 “처음에 우리한테 있었던 사건들을 라이언과 엽서처럼 만들어 나열하고 몇몇은 빼기도 하면서 구조를 잡아 나갔다. 친구 소개로 아카데미 수상 편집감독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제프 콘시글리오가 편집과 제작에 참여하면서 힘을 많이 얻었다. 그에게 아나이스와 내가 해외 입양 한인 컨퍼런스 참석차 처음 같이 한국에 갔을 때의 뭉클한 감동 같은 걸 세심하게 설명하면서 편집 방향을 잡아 나갔다. 영화 후반 작업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았다. 1866명이 12만 달러(1억4920만원)나 후원해 줬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Q 입양 하면 흔히 떠오르는 원망과 슬픔의 감정보다 만남의 기쁨과 설렘이 더 많이 느껴지는 다큐멘터리다.

사만다 “입양아로 행복하게 살아 오면서 순진하게도 입양의 어둡고 슬픈 이야기를 잘 몰랐다. 매해 5000~6000명의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내 삶에 감사한다.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거나 화나진 않는다. 지금 너무나도 소중한 부모님과 오빠들이 곁에 있고, 아나이스를 만났다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누구든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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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가 두 사람의 추억 앨범 같겠다.

아나이스 “네다섯 번은 본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선 늘 운다. 우리 둘의 가족과 친구들이 사만다와 내 생일을 축하하러 파리에 모인 날이었다. 처음 만난 뒤 1년여간의 감정들이 다 범벅된, 이제부터 다 같이 인생을 살아갈 거란 느낌이랄까. 행복하고도 짠하다.”

Q 3년이 지났다. 쌍둥이지만 정말 다르다 싶었던 순간은.

사만다 “나는 외향적인데, 아나이스는 내성적이고 감정기복이 더 심하다. 친구들한테 아나이스가 자꾸 분위기를 잡는다고 하면 다들 파리지엥이라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웃음).”

Q 25년간 헤어져 지냈는데, 같이 살아 보고 싶지 않나.

사만다 “다 커서 한집에 사는 건 남자친구들이 안 좋아할 것 같다(웃음). 같은 도시에는 살아 보고 싶다.”

아나이스 “사만다와 라이언이 불어를 유창하게 익혀서 파리에 정착하면 좋겠다!”

Q 서로 패션계와 영화계에 종사한다. 컬래버레이션을 해 볼 계획은 없을까.

아나이스 “난 지금 파리에서 가족이 운영하는 럭셔리 브랜드(장 루소)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족 사업을 해외로 더욱 확장하기 위해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사만다와 함께할 일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만다 “비영리 입양 단체 킨드레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아나이스가 이곳의 내빈 선물도 디자인해 줬다. 개인적으로는 연기와 영화 제작을 계속할 것 같다. 언젠가 한국영화에도 출연하면 좋겠다. 당장 다음 달엔 ‘트윈스터즈’가 초청된 그리스영화제에 간다. 입양 기관을 비롯해서, 호주·영국·프랑스 같이 입양아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우리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Q 낳아 준 어머니한테도?

아나이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만나길 힘들어하지만, 대신 이 영화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다.”

Q 태어난 고향 부산에는 가본 적이 있나.

아나이스 “지난해에 사만다만 다녀왔다. 언젠가 꼭 함께 가 보고 싶다.”

사만다 “지난해 ‘트윈스터즈’가 상영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2015, 이상호·안해룡 감독) 상영을 강행한 이후 부산시와 갈등을 겪고 있다 들었다. 이건 꼭 말하고 싶었다. 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하다. 예민한 주제란 이유로 영화 상영을 막고, 그걸 빌미로 영화제를 압박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영화가 대화의 창구를 여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걸 막아선 안 된다.”

아나이스 “창작자로서 나도 믿을 수 없었다. 요즘은 SNS로 누구나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의사 표현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뭔가를 틀어막으려는 강압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정부가 감춘 의도가 더 확연하게 드러날 뿐이다.”

사만다 “누군가가 ‘트윈스터즈’의 상영을 막고 입양 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 못하게 했다면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났을 거다. 나 역시 영화인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잘 해결되기만을 바란다.”

글=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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