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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종인 야권통합론’의 전제와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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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선거 40일을 남기고 야권통합론이 또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대표가 “4·13 총선 승리를 위해 야권이 단합해야 한다. 야권통합에 동참해 달라는 제의를 드린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그동안 정의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그의 야권통합 제안은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을 향한 러브콜이다. 더민주를 접수한 지 한 달여 만에 김 대표는 ‘운동권 정치 종식’ ‘핵 가진 북한정권 궤멸론’ ‘선거일정 파탄 낼 필리버스터 제동’ 등 기존 야당의 구태의연한 정치문화를 깨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 그는 앞으로 선거국면을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패론’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한다. 김 대표의 제의는 그가 구상하는 일련의 전략적 일정표에 따라 나온 듯하다. 그의 허를 찌르는 발표는 계파싸움 외에 볼 것이 없는 새누리당과 혼미한 리더십에 우왕좌왕하는 국민의당을 초라하게 보이게 했다.

 정당은 동일한 정치적 신념과 국가운영 철학을 가진 세력이 국민의 의사를 형성하고 선거를 통해 나라를 책임 있게 이끌어가기 위해 조직된 결사체다. 정당과 정당의 통합은 가치와 정책의 조율이 전제되고 각 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상당한 승인을 조건으로 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김 대표가 이런 통합의 전제와 조건들을 진지하게 고려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총선판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선거전략적·정치공학적 관점이 우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당 이름을 바꾸거나, 분당했다 다시 통합하는 그들만의 익숙한 드라마라는 비난도 나온다. 국민의당의 안철수 대표가 “제안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부정적 입장인 반면 천정배 공동대표·김한길 선대위원장 등은 “진의를 알아보겠다”고 신중한 반응이어서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김종인 대표가 이 온도차를 파고들어 제3당을 분열시키고 안철수 대표를 고립·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라면 정도(正道)가 아니다. 국민의당 사람들도 문재인 전 대표가 무너질 때는 탈당했다가 안철수 대표가 추락할 때 다시 복당하는 얄팍한 처신을 했다가는 야권통합론과 관계없이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런 문제점과 별도로 야권통합론은 선거판을 1여2야 구도에서 1대1 여야구도로 바꿀 대형 이슈로 번질 수 있다. 야당 분열로 선거 패배주의가 만연한 야권 지지층에선 분위기 반전이 일어날 만하다. 통합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박빙의 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 선거구에서 야권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새누리당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통합 논의가 진행된다면 더민주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일이 있다. 제3당 출현의 원인이 됐던 친노 패권주의 및 운동권 세력·문화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 진영논리와 극단주의를 양산한 운동권 문화의 종식은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정치교체라는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행여 4년 전 주사파 정치세력(통진당) 같은 반국가적·반사회적 정당이 끼어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종인 야권통합론’은 과거 문재인식 ‘묻지마 야권단일화’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