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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 비빔밥까지…달라진 코리안 메이저리거 위상

중앙일보

입력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만이 모인다는 메이저리그(MLB)에서 한국 선수들의 위상이 달라졌다.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늘어나면서 '맞춤형 지원'을 하는 구단이 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에 차려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프링캠프의 식당 메뉴에는 김치가 있다. 올해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은 오승환(34)을 위해 구단이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다. 오승환의 소속사 스포츠인텔리전스그룹 김동욱 대표는 "오승환이 음식을 가리지 앉지만 구단이 그를 위해 특별히 김치를 준비해줬다. 다른 동료들도 매운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43)가 미국에서 뛰던 199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박찬호는 마이너리거 시절 고기와 김치·마늘을 먹었다가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항의하는 동료들과 충돌한 적이 있다. 박찬호는 "훈련 도중 흘리는 땀에서 마늘 냄새가 날까봐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도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영입한 김현수(28)를 극진히 대접하고 있다. 구단 직원들은 김현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은 뒤 그가 "비빔밥"이라고 대답하자 당장 음식을 준비했다. 구단 요리사가 7가지 채소와 밥이 담긴 대형 비빔밥을 만들자 간판 외야수 애덤 존스(31)가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서빙을 했다. 지난달 27일 볼티모어 구단은 비빔밥 요리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는데 클릭수가 31만 건이나 됐다. 김현수는 "구단 직원들이 '적응하려고 하지 마라. 원하는 게 있으면 다 해주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미네소타 트윈스도 클럽하우스에 박병호(30)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추가할 예정이다.

넉살 좋은 김현수는 볼티모어 동료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김현수는 "선배에게 존댓말, 후배에게 반말을 쓴다는 걸 알려주면 외국 선수들이 아주 재미있어 한다"고 전했다. 최근 세인트루이스 라커룸에선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가 자주 들린다. 미국 선수들이 오승환에게 건네는 인사다. 오승환이 영어를 하기에 앞서 MLB 선수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오고 있다.

미네소타 투수 필 휴즈(30)는 박병호를 비롯해 투수 글렌 퍼킨스(33), 내야수 트레버 플루프(30)와 브라이언 도저(29) 등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함께한 사진을 2일 SNS에 올렸다. 휴즈는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박병호가 낯선 언어(영어)를 쓰며 이곳에서 생활하는 게 무척 힘들 것이다. 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초대했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동료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민훈기 해설위원은 "90년대 한국 선수들은 고교 졸업 후 바로 미국에 갔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올라갔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배려할 필요가 없었다"며 "최근 빅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이미 한국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스타들이다. 많은 돈을 주고 영입한 만큼 MLB 구단이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김현수와 박병호는 미국의 ESPN이 2일 선정한 '플로리다주 시범경기에서 주목할 신예 야수 7명'에 선정됐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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