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부두목, 마닐라서 아이 돌잔치…'어깨' 100명 우르르

중앙일보

입력 2016.03.02 03:00

업데이트 2016.03.02 17:33

지면보기

종합 14면

기사 이미지
한국 조직폭력배에게 필리핀은 ‘소(小)한국’이다.”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전직 조폭 강모(46)씨가 최근 기자에게 한 얘기다. 그는 “필리핀에선 적은 돈으로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소문이 나 한국에서 사고를 친 조폭들이 필리핀을 도피처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수사력이 약해 잡힐 염려가 크지 않은 데다 카지노·유흥업소 운영 등 한국에서 해 왔던 익숙한 일거리도 많아서다.

조폭들 도피처 된 ‘소한국’ 필리핀

강씨는 “보통 ‘거기 ○○형이 있으니 가서 만나 보라’는 권유를 받고 출국한다”며 “그렇게 하나, 둘 모이다 보니 제법 숫자가 많아지면서 그 나름의 조직 체계와 질서가 만들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찰과 현지 교민 등에 따르면 필리핀에는 10여 개 조직, 200명 이상의 조폭이 깊숙이 자리를 잡고 활동 중이다. 수적으로는 부산에 뿌리를 둔 칠성파 조직원이 가장 많다고 한다.

2013년에는 수십억원의 대출 사기를 저지르고 해외로 달아났던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가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되기도 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사는 사업가 K씨는 “지난달 칠성파 부두목급 인사가 마닐라에서 아이 돌잔치를 열어 축하차 갔는데 참석 조폭만 100명 이상 되더라”고 전했다.

경찰은 조폭 대부분이 마닐라 등지의 카지노에서 ‘정킷방(해외 카지노에서 빌린 VIP룸)’을 운영하거나 ‘롤링업(카지노에 손님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일)’을 하며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한다.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도박중개업을 하는 전직 조폭 A씨는 “친분이 있던 운동선수·연예인 등을 모아 현지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해 주고 돈도 빌려준다”며 “필리핀 경찰 쪽과도 연결고리가 있어 단속에 걸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필리핀 내 한국 출신 조폭 수가 늘면서 이들이 새로운 범죄의 씨앗이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사업규모를 키우고 세를 늘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리핀 현지 르포

'3G 천국' 찾아 몰려든 욕망…3년간 한인 범죄자 392명

총 없소? 신문지 싼 권총이 20분 만에 왔다

지난 1월엔 두 개의 한인 조폭 조직이 카지노 운영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가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K씨는 “양측 조직원 50여 명이 승합차에 칼과 야구배트 등 연장을 싣고 마닐라 시내에서 한동안 대립해 칼부림 직전까지 갔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사업이 커가는 와중에 큰 불상사가 생기면 공멸한다는 설득에 무력충돌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포그니·윤정민 기자 pogn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