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 천국' 찾아 몰려든 욕망…3년간 한인 범죄자 392명

중앙일보

입력 2016.03.02 03:00

업데이트 2016.03.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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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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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유흥업소가 밀집한 앙헬레스시 워킹스트리트는 술 취한 관광객들과 현지 여종업원들로 북적댔다. [마닐라·앙헬레스=오종택 기자]

한국말 하는 여자 있어요. 불러줄까요?”

 지난달 1일 오후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앙헬레스시(市) 워킹스트리트의 한 유흥업소 앞. 짧은 치마 차림의 여종업원 티파니(21)가 기자의 팔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 ‘K크라임’ 현장을 가다 <중> ‘어글리’ 넘어 크리미널 코리안

그는 영어로 “들어와서 보고 놀다 가라”고 꼬드겼다. 이어 “한국인이 많이 와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여종업원이 많은데 불러줄까”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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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스트리트를 관할하는 STATION4 경찰서. [마닐라·앙헬레스=오종택 기자]

워킹스트리트는 성매매가 가능한 유흥업소와 술집이 밀집해 있는 앙헬레스 최대 번화가다. 평일인데도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한 현지 여성들이 건물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지나가는 손님들을 잡아 끌었다.

20대 초반의 호객꾼 남성들은 한국말로 “담배 있어요”라고 크게 외쳤다. 고객들은 주로 한국·중국·일본의 20~50대 남성과 60대 이상의 미국 남성이었다.

 한인 관광객들에게 앙헬레스는 ‘3G(Golf·Gamble·Girl)의 도시’로 불린다. 시내 어떤 호텔에서든 10분 안에 골프·도박·성매매가 모두 가능하다고 해서다. 관광객 상당수는 낮에는 골프를 치고 해가 떨어지면 술과 도박을 즐기거나 성매수를 한다.

한 교민은 “필리핀행 비행기에 300명이 타면 그중 250명이 관광객인데 대부분 유흥을 즐기러 온 남성”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천발 필리핀 앙헬레스 클라크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승객 대다수는 20~50대 남성이었다. 가족단위 여행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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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헬레스시 한인타운에 설치된 CCTV. 한인 범죄피해와 범죄자 도피가 계속되면서 방범시설을 강화하고 있다. [마닐라·앙헬레스=오종택 기자]

 워킹스트리트 인근 P호텔에서는 한인 남성이 젊은 필리핀 여성을 끌어안고 들어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지난달 2일 오전 1~2시 사이 5명의 만취한 한인 남성이 짙은 화장을 한 필리핀 여성을 끌어안고 호텔로 들어갔다.

한 20대 남성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필리핀 여성의 신체를 더듬으며 옆에 있는 친구에게 “너도 빨리 하나 데려와, 얘 괜찮지?”라고 말했다. 이런 행태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오전 10시에도 ‘낮바’로 불리는 업소는 한인 남성으로 북적였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다가 맘에 드는 필리핀 여성을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이들이 성매매를 하고 지불하는 비용은 2000~3000페소(약 5만~8만원)가량. 필리핀 여대생 비앙카 본존(24)은 “성매매나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관광객 관련 뉴스는 너무 흔해 놀랍지도 않다”고 말했다.

도박장도 필수 코스 중 하나다. 지난달 4일 찾은 마닐라의 카지노 VIP룸에선 “커피 좀 주세요”와 같은 한국말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현지에서 정킷방을 운영하는 A씨는 “마카오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꽤 많은 한국인이 도박을 즐기러 온다”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앙헬레스 호텔 대부분엔 카지노가 있고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도박을 즐기는 한국인은 500여 명 수준이라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필리핀 현지에서 단순히 성매매 관광을 벌이는 수준의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이 ‘크리미널 코리안(Criminal Korean)’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미널 코리안은 현지에서 교민과 필리핀인에게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주는 한국인 범죄자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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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3년간 필리핀에서 범죄를 저질러 필리핀 경찰에 입건된 한국인은 392명이다.

불법체류자가 84명으로 가장 많지만 ‘폭행·상해’와 ‘사기’ 피의자가 각각 46명, 마약과 강간·강제추행 피의자도 각각 24명과 21명에 이른다. 또한 이런 크리미널 코리안은 매년 증가 추세다. 2013년엔 91명, 지난해엔 16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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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피한 피의자들의 범죄도 심각하다. 2007년 안양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한 뒤 필리핀으로 도피한 최세용(48)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필리핀에 숨어든 뒤 인터넷 사이트에서 “같이 여행하자”며 한국인 관광객을 꼬드긴 뒤 납치해 돈을 뜯어냈다. 피해자들의 옷을 벗기고 쇠사슬로 묶어 회칼과 권총 등으로 위협하는 끔찍한 범행도 서슴지 않았다.

최세용은 피해자 11명에게 5억여원을 뜯어내며 범행을 계속했지만 2013년에야 검거됐다. 지난해 국내로 송환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수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도피가 용이해 최세용과 같은 한국인 범죄자들이 은신처로 선호한다. 경찰은 지난해 말 기준 필리핀으로 도피해 있는 한국인 범죄자가 2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필리핀 한인회 관계자는 “필리핀의 불안한 치안 상황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국인만 희생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국인 청부살해의 배후에도 대부분 ‘로컬 코리아노’가 있다고 추정될 만큼 한국인 범죄자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마닐라·앙헬레스(필리핀)=윤정민 기자·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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