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또 지운 화폭, 40년 만에 빛 보다

중앙일보

입력 2016.03.02 01:16

업데이트 2016.03.0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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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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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나무를 소재로 한 ‘무심의 시기’ 작품 앞에 선 조용익 화백. [사진 성곡미술관]

세월 속에 잊혀버렸던 작가의 귀환은 조용하면서도 서늘했다. 긴 시간의 무명(無名)을 견뎌낸 화가는 자신의 목숨 같은 작품으로 말을 대신했다.

한국 단색화 1세대 조용익 화백
성곡미술관서 ‘지움의 비움’전

지난달 26일 서울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조용익(82) 화백의 개인전 ‘지움의 비움’은 ‘인간승리’라는 수식어를 붙일만한 사건이었다.

전시장에 내걸린 100점 작품은 그의 분신이었다. 40여 년에 걸쳐 오로지 그리고 또 그렸던 노화가의 그림은 모두 그의 노래이고 증언이다. 최근 국제 미술시장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한국 단색화의 1세대인 그의 오랜 침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용익은 전후(戰後) 한국 현대미술의 발아기에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1958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 추상미술의 초기 단계에 다양한 그룹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61년 파리비엔날레, 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 등 다양한 국제전에 참가하며 세태 조류를 따라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적 미의 원형을 추구했으나 시절은 그를 잊었다.

 74년부터 92년까지 추계예술학교 교수로 후학들을 기르는 사이, 그의 작품은 화랑과 미술시장에서 사라졌다. 그의 대작 단색조 그림들에 ‘알려지지 않은 단색화(Unknown Dansaekhwa)’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폭이 넓은 평필로 묽게 갠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 전면에 고르게 칠한 다음, 페인팅 나이프로 톡톡 끊어가며 지워간 뒤 다시 물감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반복해 지워나가는 행위를 그는 수십 년 반복했다.

참선과도 같은 그의 그림을 가족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수백 점 대형 캔버스를 단 한 점도 팔지 않고 끌어안고 있던 그는 집을 팔고 가재도구를 버리고 오로지 그림을 이고 지고 변방으로, 변두리로 계속 유랑했다.

강원도 오지에 그 많은 그림들을 부리고 나니, 이웃들이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 그림은 그리다 만 것 같아요.” 이 말을 전하며 화가는 웃었다. 벌어진 그의 입 속에는 아래 이가 하나도 없었다.

 한 호흡에 붓을 달리는 그의 그림들은 실패도 많지만 직감의 감도에 따라 빛을 발한다. 뒤늦게 주목받는 이 순간에도 그는 “앞으로는 터치에 더 힘을 쏟아보련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씨는 “‘물결의 시기’를 거쳐 ‘무심(無心)의 시기’를 지나는 그는 아크릴 물감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사군자의 느낌을 표출하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 단색화의 긴 역사를 한 자리에 응축하고 있는 그의 희귀한 전시는 교육적이면서 인간적이다. 전시는 다음 달 24일까지. 02-737-765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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