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예술가 이윰(45)씨.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조각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예술·교육·치유 성격을 혼합한 교육 프로그램인 ‘스토리 아트’ 콘텐트를 개발해 보급하기도 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 입지를 다졌지만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컸다. 무엇보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예술에 덧씌우고 싶었다.
‘문화창조 아카데미’ 오늘 입학식
하지만 어떻게 기술력을 키울지, 누구와 협업해야 할지, 돈은 얼마나 들고 실험은 할 수 있을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는 “융복합이란 말을 듣는 순간 ‘이거다, 돌파구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 같은 이들을 위한 국내 첫 융복합 전문 교육기관인 ‘문화창조 아카데미’가 2일 개관한다. 영화 쪽에서 1984년에 창립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
문화창조 아카데미는 21세기형이다. 장르라는 기존 칸막이를 과감히 허물어 영상·디자인·공연·게임 등 콘텐트의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첨단 기술과의 접목이 특히 강조된다. 문화 융복합 교육기관은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첫 입학생 45명의 면면은 범상치 않다. 고교나 대학을 졸업한 풋풋한 20대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이윰씨처럼 탄탄한 경력의 소유자가 많다. 애니메이션 회사 기획팀장 출신도 있고, 항공기 정비기술자, 52세의 CF 감독도 있다. 한결같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엇”을 원하고 있다.
건축사 경력의 윤영선(31)씨는 “특정 분야에 갇혀있다 보니 한계를 절감했다. 넘어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강섭(29)씨는 “입학 설명회에서 ‘똘아이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란 말을 듣고 울컥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입학생은 크리에이터로, 교수는 감독으로 불린다. 아카데미 박경자 본부장은 “상하 관계가 없고 주입식 수업도 없다. 철저히 학습자 주도형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오전엔 대체로 강의다. 우주의 신비, 청색기술과 같은 생소한 커리큘럼이다. 당장 써먹을 순 없지만 사고의 확장을 위해서다.
오후는 실습 위주다. 이미 45명의 입학생 전원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제출했고, 현실성·기술 적합성·상용화 가능성 등을 치열하게 따져 7, 8개 프로젝트로 정리될 전망이다. 일명 ‘크리에이터 주도 프로젝트’다.
감독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박칼린(공연)·노소영(디자인)·코디 최(미술) 등 자기분야에서 대표성을 인정받는 국내 16명의 예술가가 감독으로 참여해 “이 작품을 이런 방식으로 만들겠다”고 계획을 발표하면 크리에이터들이 골라서 참가하는 방식이다.
자칫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다면, 국내를 대표한다는 예술가의 영감은 그대로 사장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참가자에게 평가받는 꼴이다. 새로운 콘텐트 발굴을 위해 선생·학생 가리지 않고 계급장 뗀 채 맞짱 뜨는 ‘무서운’ 학교인 셈이다.
아카데미는 2년 과정이다. 아카데미는 졸업생들이 콘텐트랩에서 창업과정을 심화시킨 뒤 벤처단지에 상주 작업해 최종적으로는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아카데미는 문화창조융합벨트의 근간이다. 기존 관습을 뛰어넘는 강의·실습·토론으로 콘텐트 교육의 새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2일 열리는 입학식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와 베른하르드 제렉스의 강연으로 꾸며진다. 문화체육관광부 김종덕 장관과 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의 토크 콘서트도 열린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