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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무슨 한복을 지어…” 편견 깬 괴짜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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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송중기(왼쪽)와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 두 사람이 입은 한복을 이서윤씨가 제작했다.

송중기·김수현 한복 만든 이서윤씨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40)씨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가 무슨”이라는 말을 들었다. 일곱 살 때 한국무용에 반해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펄쩍 뛰며 “남자가 무슨 춤이냐”고 했다. 1997년 한국무용을 그만두고 한복 디자이너를 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남자가 무슨 한복을 짓느냐”고 했다. 그는 자신이 편견과 싸워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남들과 같은 옷 원하면 딴 데 가보시라”
재료비만 받고 국악인 옷 지어주다 시작
10년 무명, 드라마 ‘일지매’로 이름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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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씨는 전통 한복 복식에 해외 여러 나라에서 공수한 원단을 결합해 그만의 한복을 만들었다. 이씨는 “올해는 모던한 디자인의 한복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씨의 작품은 여러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 드라마 ‘일지매’(2008년)의 이준기, ‘성균관 스캔들’(2010년)의 송중기, ‘옥탑방 왕세자’(2012년) 박유천, ‘별에서 온 그대’(2014년) 김수현이 입은 한복이 그의 작품이다.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다. 일본·미국·호주·바레인·브라질 등 세계 곳곳에서 그의 패션쇼가 열렸다. 특히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은 그의 한복을 ‘아트워크’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호주 이민 50주년 기념 패션쇼 때는 호주의 한 유명 인사가 1년간 공식 행사 때마다 그의 한복을 입겠다며 외교부를 통해 한복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광복 70주년 기념 한복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주관 100주년 기념 한복 패션쇼, 문화재청 주관 코리아 헤리티지 패션쇼, 북유럽 수교 50주년 한복 패션쇼 등에도 참가했다. 일본 오사카와 도쿄엔 자신의 매장도 냈다.

“남자가 무용하면 집안이 망한다”

 그는 한복 디자인을 배운 적이 없다. 대학에선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TV에서 국악 프로그램을 하면 그렇게 가슴이 떨리고 좋았어요. 춤이 너무 추고 싶어서 일곱 살 때부터 한국무용을 배웠죠. 하지만 중학교 진학 후에도 춤을 추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펄쩍 뛰며 반대하셨어요.”

  경상도 태생의 보수적인 아버지는 “남자가 춤을 추면 집이 망한다, 장남에 장손이 무슨 춤을 추느냐, 남자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고 어머니는 무용복을 모조리 갖다 버렸다. 결국 중학교 입학 후 춤을 그만뒀다. 그런데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부모님이 반대를 멈췄고, 그는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가는 한국무용 대회마다 1등을 했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연습했다. 버선과 연습복이 남아나질 않았다. 매번 새것을 사는 것보다 고쳐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러다 직접 만들어 입게 됐다. 춤출 때 쓰는 소품도 만들어 주변 친구들에게 버선 등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바느질깨나 하는 남자’였다. 그래도 한복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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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한국무용을 전공한 이서윤씨. 연습복, 버선, 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대학 시절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됐어요. 생계를 위해 유명한 기획사를 통해 가수로 데뷔하려고 했죠. 그런데 잘 안 됐어요.” 데뷔 직전 번번이 기획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입대 영장이 나오거나, 몸을 다치는 등의 일이 생겼다.

 방황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마다 그는 바느질을 했다. 그는 “신기하게도 힘들 때마다 바느질 생각이 나더라”며 “국악 하는 선생님들께 재료비만 받고 한복을 지어서 드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한복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밤엔 아르바이트, 낮엔 옷 만들어

97년부터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99년엔 어렵사리 대학로에 7평짜리 작은 작업실을 열었다.

 하지만 손님은 없었다. 지나가는 길에 매장에 걸린 한복을 보고 예쁘다며 들어온 사람이 가끔 있었지만 막상 디자이너가 젊은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발걸음을 돌렸다.

 “남자니까 믿질 못하더라고요. 친한 국악인들에게 재료비만 받고 한복을 지어줬지만 돈은 안 됐어요. 옛말에 비단장사는 왕서방이 한다고 했잖아요. 한복이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인지 몰랐어요. 당시 원단 한 마에 15만원, 20만원 했는데 열 마, 스무 마는 사야 했어요. 밤에는 춤추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원단값을 벌고 그걸로 옷을 했어요. 정말 근근이 살았어요.”

 그렇게 힘든 3년을 지내고 나니 한 명, 두 명 단골이 생겼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생활고는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그 시절을 ‘한복 지옥’이라고 부른다.

 한복 지옥에서 벗어난 건 2008년 SBS 드라마 ‘일지매’의 한복을 맡으면서였다. 조선시대 한복의 디자인을 살리면서 시폰이나 새틴 같은 서양 옷의 원단을 사용해 한복의 틀을 깼다.

 “전통 방식의 한복을 지을 때는 전통 문양으로 수를 놓고 금박도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장인의 손을 빌려 완벽하게 재연해요. 현대적으로 해석할 때는 외국에서 공수한 원석이며 원단을 연구해서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히죠. 전통은 전통대로 현대적 새로움은 새로움대로 늘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재해석하고 창조해야 누구나 입고 싶은 옷이 만들어져요.” 머리에 꽂는 장신구부터 버선까지 한복에 어울리는 소품이나 액세서리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한복 입는 사람 줄어드는 게 아쉬워

그의 별명은 ‘괴짜 디자이너’다. ‘이런 색깔 이런 디자인의 한복을 원한다’고 주문하면 그는 그냥 “다른 데 가서 맞추시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이 한복을 얼마나 입나요. 한복을 평소 잘 입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한복이 어울리는지 잘 몰라요. 저는 며칠 동안 고민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과 디자인의 한복을 생각해내요. 똑같은 한복 만들 거면 그냥 공장에서 찍어내면 되지 뭐하러 디자이너를 찾아오겠어요.”

 전통 예술인들을 위해 한복을 지을 때면 무대의 특성을 고려해서 디자인한다. 가야금 연주자의 한복이라면 어깨선과 손끝의 동작이 돋보일 수 있도록 소매와 끝동에 화려한 문양을 넣거나 포인트를 준다. 한국전통무용의 대가 고 임이조, 명창 안숙선·박애리도 무대에서 그의 한복을 입었다.

 한복을 사랑하는 그는 그만큼 안타까운 일도 많다. 한복을 입는 사람 수가 자꾸 줄어드는 건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그는 한복 만들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그 방법을 전수할 계획이다. 한복의 명맥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결혼식에서조차 한복을 안 입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고, 명절 귀향길에 한복을 입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입던 한복을 요즘엔 평생에 한두 번 입는 셈이다.

 “아무리 좋은 옷도 대중이 많이 자주 입어주지 않으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어요. 우리의 고유 복식인 한복은 고귀함과 기품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옷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입지 않으면 한복 짓는 사람이 줄어들고 결국 한국의 전통 의복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더 많은 사람이 한복을 즐겨 입게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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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오사카 한국문화원 주최 ‘Korea Month 2014’ 행사에서 열린 이서윤씨의 한복 패션쇼 피날레 장면.

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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