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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서 소 사라지고 카스트 제도 흔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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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14면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소가 보이지 않는 콜카타 거리. 한경환 기자

도로 위를 자유롭게 누비는 소, 카스트제도의 신분질서. 흔히들 인도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힌두교와 관계 깊은 두 가지는 탐사대가 웨스트벵골주 수도 콜카타를 방문했을 때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 놓았던 이미지들이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탐사대가 누볐던 콜카타 시내 도로 어디에서도 그 흔할 것으로 생각했던 우공(牛公)들은 만나지를 못했다. 정신 없이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배려해서 피해 버린 것일까. 인도와 콜카타에서는 여전히 힌두교가 대세이고 소를 숭배하는 신앙 또한 조금도 변함이 없을 터인데.


콜카타 길거리에서 소를 보지 못한 것은 의외였다. 힌두교도는 그들이 숭배하는 신과 여신들이 소의 몸에 깃들어 있다며 소를 신성시한다. 인도 독립운동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소의 보호를 힌두교도의 최대 의무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소의 도축은 물론 쇠고기 판매나 섭취를 금기시한다. 인도 최대 경제도시인 뭄바이에서는 쇠고기를 가진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인도에서는 젖소로 태어나는 것이 여자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한다. 뉴델리 외곽에서는 지난해 10월 힌두교 주민 100여 명이 누군가 소를 도축해 먹었다는 소문을 듣고 50대 무슬림을 찾아가 집단 폭행,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델리 같은 대도시의 변두리에선 거리를 배회하는 소를 쉽게 볼 수 있다. 1300만 인구의 뉴델리엔 약 2만8000두의 소가 공존하고 있다. 작은 도시와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도시화·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콜카타에서와 같이 소는 점점 교외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길 잃은 도시의 소를 농촌으로 돌려보내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생할 것으로 생각했던 카스트제도 또한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탐사대를 안내했던 리쉬 쿠마르 아켈라(35)는 “식당 주인이 수드라(하층 카스트) 출신이라고 손님들이 안가나. 이 제도는 현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아켈라는 “인도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여서 정치인들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 카스트들의 표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며 “그래서 무상교육·무상급식 등 각종 복지혜택이 이들에게 많이 돌아가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힌두교 칼리가트 사원 앞의 콜카타 시민들. 다양한 계층의 인도인들이 섞여있다. 인근에 마더 테레사 하우스가 있다. [사진 주강현]

현대 인도에서 카스트제도는 법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실존적으로는 아직도 엄연히 존재한다. 카스트 계급은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로 크게 구분된다. 지역이나 직업,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세부 카스트는 수천 개로 다시 분류된다.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수천 년 전통의 카스트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로 했다. 1950년에 제정된 헌법은 이를 명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교육이나 직업선택에서 소외받아 왔던 하위 카스트 계층에게는 공무원 응시나 대학입시 등에서 유리한 우대정책을 펴 왔다.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최하층 카스트인 달리트는 지정카스트(SC), 소수민족 등은 지정부족(ST)으로 지정돼 혜택을 받는다. 90년대 초에는 ‘기타 하층민(OBC)’이라는 분류가 생겨 수드라에 해당하는 차하위 카스트 주민들도 교육·취업에서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층 카스트 계층은 경제적으로 취약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은 좋은 직업도 갖기 어렵다. 하이데라바드대학 박사과정에 다니던 불가촉천민 출신 대학원생은 사회적 차별을 견디지 못해 지난달 17일 자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카스트 관련 시위나 사건은 대부분 ‘역차별’ 조항 때문이다. 북부 하리아나주에서는 하층 카스트 우대 정책에 반발한 중상류층 자트 카스트가 지난 14일부터 시위를 벌였다. 강제진압 과정에서 19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지난해 8월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자신의 고향이자 12년간 주 총리를 지냈던 서부 구자라트 주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다. 파티다르 카스트가 자신들을 OBC에 포함해 할당제를 적용해 주거나 하층민 우대 정책을 폐지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어쨌거나 인도에선 대도시의 거리에서 소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던 카스트제도가 역차별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 오랜 전통의 변화와 함께 ‘거인’ 인도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지난해 인도 경제는 7.3% 성장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6.8%)을 추월하며 세계경제의 견인차로 떠올랐다. 전체 인구의 65%가 35세 이하인 젊은 나라 인도에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앞을 다투어 몰려들고 있다. 2014년 5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한 이후 ‘메이크 인 인디아(제조업 인도)’를 모토로 내걸고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투자 대상지 1위, 국제 경쟁력 지수 16단계 상승 등 긍정적인 지표 일색이다.


인도의 고도 성장 영향인지 콜카타의 거리는 활기 그 자체였다.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14년 전인 2002년 콜카타를 방문했다는 탐사팀의 마창모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양식산업연구실장은 “당시엔 거리에 소와 3륜 오토바이인 릭샤, 그리고 간간이 영국택시들이 한가롭게 지나다녔다“며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콜카타인들은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고 회고했다. 마 실장은 “지금은 소가 없어도 차량 홍수로 가는 곳마다 길이 막히고 모두가 바빠 보인다”고 말했다. 늘 바쁜 뉴요커(뉴욕인)들처럼 곧 콜카터(콜카타인)라는 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150년 동안 인도의 수도였던 콜카타의 옛 영화가 꿈틀거리며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음 회에는 벵골만<下> 방글라데시의 다카·치타공 편이 게재됩니다.


콜카타=한경환 기자?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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