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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잊혀져선 안되는 것들

중앙선데이

입력

 VIP 독자 여러분,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세상을 놀라게한 두 장면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선보인 가상현실(VR)기기와 엠네스티 한국 지부가 서울 광화문에서 벌인 유령집회 얘깁니다. 삼성전자가 '기어 VR'를 동원해 갤럭시 S7를 발표하는 자리에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까메오'로 등장해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었죠. 저커버그의 출현은 마치 "앞으로는 VR이 대세가 될 거야"라고 예언하는듯했어요. 이에 질세라 LG전자도 G5를 공개하면서 VR 기기와 VR 카메라를 함께 선보여 VR대열에 합류했고요. 광화문의 유령집회는 3D입체영상을 형상화한 홀로그램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사람들이 시위하는 장면을 촬영해 이를 홀로그램으로 투영, 스크린 속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형상화해낸거죠. 기술적으론 VR과 다르더라도 이 역시 '가상된 현실'이란 면에선 유사하다고 할수 있겠죠. "이제 시위에까지 첨단 IT기술이 동원되는구나.역시 시위 강국 한국이야." 신선한 충격도 잠시, 이런 가상현실이 일상화·보편화되는 세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IT기술이 더 고도화돼서 아예 가상현실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면 어떻게 될까? 공상해봅니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체험할 때와 똑같이 촉각·미각·청각등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데까지 기술이 발전한다면 '신세계'가 열리지 않을까요. 굳이 비행기표를 끊고 호텔 예약을 하지 않고도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될겁니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곧바로 남태평양의 해변으로 날아가 금빛 모래사장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피부가 검게 그을리는 체험을 하게될 수 있을 겁니다.아니면 아마존 정글속에서 악어사냥을 하는 짜릿함을 맛볼 수도 있겠죠.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없어 망설이고 미뤄뒀던 고공 절벽에서 뛰어내리기,헹글라이딩,번지 점프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도 맘껏 누릴수 있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스마트폰과 VR기기만 있으면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장미빛 세계만 열릴까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지 않게되면 관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될지 모르고,스포츠 관련 업계는 문을 닫게 될 지도 모르죠.이어지는 실업과 도산은 미국 경제학자 갈브레이드가 풍자한대로 또 다른 '풍요 속 빈곤'을 낳을지도 모릅니다. 또 VR기술이 범죄에 이용된다면 어찌 될까요?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나왔듯이 교묘한 스크린 장치를 설치해놓고 범죄를 저지른다면 목격자는 '거짓 장면'을 보고도 '실제'라고 믿게될테고, 범인이 만든 '가상의 인물'을 실제 범인이라고 믿게 될 수 있겠죠.(더 끔찍한 상황도 상상하게 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더이상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만져지지 않는 형상을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실제와 공상,현실과 가상이 한 공간 속에 공존하는 시대에 살게 된 거죠.IT와 과학기술이 바꿔놓은 세상에 경이로움과 함께 섬뜩함이 교차됩니다. 로봇이 우리의 일상 생활 안으로 들어온지도 이미 오랩니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산업용 로봇이 생산 현장에 투입된 건 옛날 얘기고, 데이터와 통신의 결합으로 인간과 똑같은 지성과 감성까지 담은 지능형 로봇의 상용화가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웃 일본에선 인간의 심리상태를 읽어내며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고 노인들의 말벗이 돼주는 로봇이 실용 단계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러시아 출신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을 기억하실 겁니다. 인간과 똑같이 닮은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이 주인공입니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로봇역을 연기했는데 인간의 감성을 가진 로봇은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면선 번민합니다.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런게 가능해진다면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경계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을 사랑하는 로봇은 과연 사람일까요? 로봇일까요? 또 자신을 보기흉한 모습으로 만들었다며 주인을 원망하며 마구잡이로 살인 행각을 저지르는 인조인간 프랑켄슈타인이 현실화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IT와 과학기술의 발달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간과해선 안될게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성을 훼손하지 않고 윤리·도덕적 가치를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지난주 중앙SUNDAY에 글을 쓴 IT칼럼니스트 유승민씨는 구글이 개발중인 무인차에 대해 'MIT 테크놀러지 리뷰'를 인용해 이렇게 문제제기를 합니다. '도로에 무단횡단자 한 무리가 나타났다. 직진하면 여러 명을 치게되고 핸들을 꺾으면 보도에 서있는 한명이 다치거나 죽게된다. 이럴때 무인차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라고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동차에 저장된 인공지능이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계하는게 과연 윤리적인 선택일까요? 사람이 운전하는 경우라면 순간적 판단에 따라 자신이 희생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을테지만 인공지능 무인차에 이런 옵션을 넣어 설계한다면 과연 그 차가 팔릴까 하는 물음을 던져봅니다.


 이번 주 중앙SUNDAY에선 '세기의 대결'로 불리는 이세돌 9단 vs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을 전망해보는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암기력과 계산력이 강점인 알파고가 승리한다면 충격파가 클 겁니다.반대로 이 9단이 이긴다면 인간의 창의력과 함께 상상력·직관·지적 깊이가 요구되는 바둑의 오묘한 세계가 다시 주목받게 되겠죠. 대국을 기다리는 설레는 흥분 뒤편으로 '그래도 그렇지 인간과 기계가 대결하는 세상이라니' 하는 헛헛함이 올라오는건 어쩔수 없네요. 엊그제 새로 산 김광규 시인의 시집을 집어들었습니다. '당시의 유행'이란 시에 눈길이 멈춥니다.'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유명한 원로시인이 이렇게 쓰셨더군요. 혹시 저처럼 마음이 헛헛해진 분들을 위해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정보의 속도는 믿을 수 없이 빨라지고/마음의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얼굴은 모두 어슷비슷해지고…(중략) …밤하늘 별자리를 찾던 시인들/이제는 인터넷 사전을 뒤지거나/몽골여행을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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