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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헌책방 … 도룡뇽·다슬기 사는 오지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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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여기 어디?  ① 충북 단양 새한서점

새 연재기획 ‘여기 어디?’를 시작합니다. TV 드라마나 영화·CF 촬영지로 뜬 신흥 명소, 화제가 된 숨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TV를 보다가 신문을 읽다가 “저기는 어디일까?” 궁금해 하실 곳을  week&이 대신 찾아가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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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 스틸컷

‘여기 어디?’ 첫 여행지는 관객 915만 명(감독판 성적 포함)을 기록하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운 한국영화 ‘내부자들’에서 찾았다. 영화에서 검사 우장훈(조승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숲 속 헌책방이자,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의 은신처로 등장했던 그 곳이다. 영화를 본 독자라면 기억이 새로울 터이다. 영화에서처럼 책방은 푸근한 인상의 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산중 오지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었다.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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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작은 사진)’의 촬영지 새한서점. 헌책에 파묻혀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산중 서점이다.

‘내부자들’은 정치·경제·언론 등 권력의 검은 유착 관계를 다룬 범죄영화다. 밑바닥 정치깡패 안상구와 열혈 검사 우장훈(조승우)이 거대 권력에 맞서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영화 무대는 검찰청·신문사·유흥가 등 고층빌딩 우거진 도심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음모와 배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영화에도 사뭇 낭만적인 장소가 등장한다. 검사 우장훈의 아버지 집으로 등장하는 숲 속의 책방이다. 제보자를 숨기는 안전 가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허술한 이 낡은 집에서 깡패와 검사는 티격태격 다툰 끝에 동지가 된다. 안상구가 우장훈에게 대선주자 장필우(이경영)의 비자금 파일을 넘기는 장소도 이 책방이다. 산중 책방의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이 책방에서 영화가 전환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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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에 비스듬히 들어선 새한서점.

헌책방 장면은 세트장에서 촬영한 게 아니다. 실제 책방이 무대로 활용됐다. 충북 단양 적성면 현곡리에 있는 ‘새한서점’이다. 현곡리는 전체 주민이 136명에 불과하고, 하루에 겨우 버스 3대가 오는 오지마을이다. 이 외진 산골 마을의 안쪽 고개를 넘으면 후미진 비탈에 거짓말처럼 새한서점이 들어앉아 있다. 서점으로 드는 좁은 비탈길, 사방이 책으로 쌓인 내부, 안상구와 우장훈이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이던 평상, 담배를 피우던 뒷마당 등 영화 속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실 새한서점은 ‘내부자들’의 촬영지 후보에 없는 장소였다. 제작진에게는 헌책방이 몰려 있는 부산의 보수동 책방거리,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의 우선 순위가 높았다. 하나 막상 촬영을 하려니 두 지역 모두 사람이 너무 많았고, 공간도 협소했다. 제작진은 전국을 배회한 끝에 새한서점을 찾았다.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의 회상을 전한다.

“낡은 헌책방과 숲이 어우러진 풍경이라니. 이런 서점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가만히 놔둬도 사연 있는 공간처럼 느껴져 별다른 미장센(무대장치)도 하지 않았다.

 

문화관광 서점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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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서점 주인 이금석씨.

새한서점은 현곡마을 산골짜기 계곡 옆에 비뚜름한 자세로 서 있었다. 다랑논이던 땅 위에 판잣집 형태로 건물을 세운 것이라고 주인 이금석(64)씨가 소개했다. 위태로워 보였지만, 옛 정취는 확실했다. 천막이 지붕 노릇을 하고, 폐교에서 떼어 온 문짝과 바닥재가 외벽을 둘렀다. 경사를 따라 얼키설키 터널식으로 세운 건물이어서, 내부에서도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다녀야 했다. 비탈진 흙 위에 서서 책을 꺼내 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새한서점에는 대략 13만 권의 책이 쌓여있다. ‘로맨스소설’ ‘원서논문자료’ 등 책장마다 이씨의 정겨운 손 글씨가 붙어 있었다. 100년을 훌쩍 넘긴 한영자전(한글과 영어로 한문을 설명한 사전), 각종 잡지의 초판본 등 희귀 도서는 물론이고 예전 고려대 학생의 학번과 이름이 적힌 전공서적도 눈에 띄었다. 맨 구석 그늘진 자리에는 성인용 만화책이 가득했다.

새한서점의 역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이씨는 1979년 서울 잠실에서 좌판을 깔고 중고서적 판매를 시작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책을 팔았다. 이름은 늘 새한서점이었다. ‘새로 한다’는 의미다. 고려대 앞에서 헌책방을 운영할 때는 제법 이름도 날렸다.

“전문서적만 10만 권이 넘었으니까, 손님이 전국에서 몰려왔지. 헌책 찾는 사람 사이에서 ‘새한서점에서 못 찾으면 포기해라’라는 말이 돌았으니까.”

이씨는 2002년 단양으로 내려왔다. 서울 생활을 접을 궁리 중에 고향 제천 옆의 단양에 폐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폐교를 빌려 쓰다 7년 전 지금 현곡마을 자리에 정착했다. 이씨는 요즘 문화관광 서점으로 변화를 꿈꾸고 있다. 손님을 위해 야영지도 빌려주고, 차도 내어준다. 돈은 받지 않는다.

“책만 쌓아두어서는 손님이 찾지 않는 세상이니까, 문화를 팔아야지. 여기가 도롱뇽도 살고 다슬기도 살고 환경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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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새한서점까지는 자동차로 약 2시간 30분 거리다.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톨게이트에서 나와, 금수산로를 10㎞ 정도 내려오면 현곡마을이 나온다. 마을 초입 현곡교 앞에 새한서점 푯말이 있다. 새한서점은 정기휴일이나 영업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이금석 사장이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가게를 열어둔다. 홈페이지(shbook.co.kr)에서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일반 문학·인문 서적은 1권에 1000원~1만원이지만, 1권에 30만원이 넘는 희귀 서적도 있다. 새한서점에서 남한강이 가까워 하루 여행을 겸하기에도 좋다.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본길 46-106. 010-9019-8443.

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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