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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인터뷰]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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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통신 기자들이 지난 3년간 인터뷰했던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들을 다시 만났다. 그간 대학총장, 장관, 외교관, 건축가, CEO, 셰프 등 쟁쟁한 유명 인사들을 인터뷰했지만 정작 기자들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두가 평범한 내 이웃의 얼굴을 떠올렸다.

“신문에 내 기사가 나간 뒤에 수많은 곳에서 격려 전화를 받았다”고 웃는 소방관, “학원 아이들이 내 기사를 읽고 ‘신문에 나온 할아버지’라며 인사한다”는 학원 경비 할아버지까지. 작은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왜 이들을 기억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 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메트로 G팀 gangnam@joongang.co.kr

이투스청솔 경비원 이석철씨
내 기사에 말기암 할머니도 재수생도 힘 얻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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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오셨습니까? 어이쿠, 또 오셨네.”

 이투스청솔 분당점 출입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반갑게 맞았다. 이곳에서 14년째 경비로 일하고 있는 이석철(71) 할아버지다.

 그의 사연은 2014년 10월 8일자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이라는 코너에 소개됐다. 대기업 간부로 일하다 명예퇴직으로 물러난 뒤, 사업 실패와 실명이라는 위기를 겪었던 일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자살을 결심하고 약과 소주를 사들고 산에 올랐지만 “내 마지막 모습이 이건 아니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투병 할머니와 수개월 통화하며 말동무
올핸 더 겸손하게 섬기며 살고 싶어요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곳은 교회와 학원이다. 병원에서도 ‘원인 불명’ ‘치료 불가’ 판정을 받았던 그의 뿌연 눈은 새벽기도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빛을 찾았다. 대기업 간부였던 그가 얻은 두 번째 일자리는 재수종합학원 경비 자리였다. 그는 이 학원 학생들에게 “청솔 할아버지”라 불린다. “내 인생에서 겪은 굴곡이 지금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 재수생들의 마음을 달래줄 재료로 쓰인다”며 “날마다 소풍 오는 기분으로 학원에 출근한다”고 말했다.

 2년 전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를 알려줬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이라는 열다섯 글자의 시구에 자신의 삶이 녹아있다며 읊어준 것이다. 올해 다시 만난 할아버지는 “대접받으려거든 먼저 남을 섬기고 대접하라”는 얘길 들려줬다. “나이를 먹어보니, 이 말이 인간관계의 참 진리”라는 거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江南通新에 소개된 뒤 “잊고 지내던 중·고교 동창들, 이웃 주민들, 학원 강사들에게 축하 연락을 숱하게 받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막역한 친구들은 ‘야, 너 신문에도 나고 출세했다’고 놀리고, 사회에서 만난 이들은 ‘이형, 사연 보니 대단하신 분이네요’라며 추켜세워주더라”며 “신문에 짤막하게 나간 기사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볼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잊을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자꾸 연락이 와서 처음엔 안 받았죠. 나중에 받아보니, 내 신문 기사를 읽었다는 할머니신데, 말기암 투병 중이라는 겁니다. 내가 실명 위기에서 기도를 통해 새 인생을 얻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나 봐요.”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와 수개월간 통화하며 힘을 북돋워줬다.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면 받지 마시라고 했죠. 우리 나이는 이미 갈 날이 머지않았잖아요. 치료 대신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을 비우고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시라 권해드렸습니다.” 몇 달 뒤, 할머니의 아들이라는 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며 저에게 감사하다고 합디다. 내가 나왔던 신문 기사도 미국 살던 그 아들이 먼저 보고 어머니께 ‘한번 보시라’고 알려드렸던 거래요. 신문에 한 번 실린 게 저에게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주네요.”

학생들 사이에 인기도 더 많아졌다. 올부터 학원에 다니고 있는 한 여학생은 첫날부터 “저희 엄마가 학원 가면 할아버지께 인사 잘 드리라고 했다”며 살갑게 군다. “그 학생 어머니가 제 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으셨대요.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어찌나 고맙고 신기한지, 날마다 감동입니다.”

 2년 전과 지금의 변화라면, “더 열심히, 더 즐겁게 일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오전 6시30분이면 출근해 학원 건물 맨 위층부터 전등을 밝히고 히터 틀어 따뜻하게 공기 덥혀놓는다. 쓰레기는 없는지, 물품은 부족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드나드는 사람 모두에게 45도로 인사하고, 아이들 얼굴 하나씩 살피다보면 금방 밤 10시가 된다. “신문에 또 한 번 등장하게 된 올해는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섬기며 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리츠칼튼 도어맨 손광남씨
“당신이 있어 좋다” 손님 말에 보람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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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나가고 많은 분이 알아봐 주셨어요. 훌륭하다는 말 많이 들었죠. 처음 들어본 얘기였어요. ‘도어맨은 초라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신문을 보고는 정말 훌륭한 일을 하는 걸 알았다, 대단하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한 어르신은 “여기에 당신이 있으니 좋다”고 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전 세계 리츠칼튼 호텔에서 내 기사 공유
호텔리어 큰딸에겐 더 자랑스러운 아빠 돼

 손광남(59) 리츠칼튼서울 도어데스크 수퍼바이저(계장)는 수줍게 웃었다. 1984년 남서울호텔(현 리츠칼튼서울)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도어맨으로 호텔을 지켜온 그는 2014년 8월 20일 시작한 ‘당신의 역사’ 시리즈 첫 번째 기사의 주인공이었다. 기사가 나간 후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부분의 호텔 관련 기사들이 총지배인이나 총주방장 같은 고위직급 인사의 인터뷰였는데 당시 기사는 고객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읽은 리츠칼튼 본사 관계자는 리츠칼튼 신사(*리츠칼튼은 직원을 신사·숙녀라 부름)의 삶에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녹여낸 것에 감탄했다며 전 세계 90개 체인에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기사를 보고 가장 좋아한 건 가족이었다. 특히 호텔리어로 일하고 있는 큰딸은 아빠를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손 계장은 “호텔리어 중에는 유학파가 많은데 유학 한 번 안 다녀온 딸이 호텔에서 인정받으며 일해 대견하다. 또한 도어맨으로 일하는 아빠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훌륭하다고 얘기해줘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처럼 요즘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국내 호텔 업계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도어맨이지만 요즘도 3000여 개의 고객 차량 관련 정보가 들어있다. 비결은 매일 아침 영어 단어 외우듯 신문을 뒤적이며 고객 얼굴과 관련 정보를 외우는 것이다. 95년 리츠칼튼서울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업계에서 유명해졌다. 바로 로비에서 나오는 고객 얼굴을 보고 바로 차량 번호를 부르며 차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알아보고 차량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호텔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였다.

 한 자리를 지킨 덕에 역대 대통령 중엔 고(故)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문을 열어줬다. 그의 친절한 응대는 남녀노소, 신분이나 직급을 가리지 않는다. 커다란 모자를 쓴 자신을 보며 신기해하는 아이들에겐 한 번 더 경례해준다.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한다. 근무가 끝난 후엔 30분씩 운동하며 체력을 관리한다.

 기사가 나간 후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는 그는 “제 능력이 닿는 한 계속 도어맨으로 일하고 싶다”며 “고객을 만나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27년차 소방관 백균흠씨
모교 특강 … 소방관에 대한 관심 뿌듯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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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40㎏…소방관이 공기호흡기·방화복·도끼 등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춰 입었을 때 평균 무게다. 소방관들은 무게 40㎏의 장비를 지고 화염 속을 뛴다. 한여름에는 방화복을 잠깐 입었다 벗기만 해도 땀으로 목욕하기 일쑤다. 서울 광진구 능동119안전센터의 백균흠(50) 소방위는 “40㎏은 별로 무겁지 않다”고 한다. “사람을 못 구했을 때 가슴 한켠에 납덩이처럼 꽉 들어차는 그게 무겁지…”

내근 발령 한 달 만에 다시 소방호스 들어
고생한다·고맙다, 그 말에 현장 못 떠나요

 2014년 11월 26일자 江南通新 ‘당신의 역사’에서 그를 소개한 지 1년 2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 지난 17일 오후 6시 그의 집인 자양동 자택 근처였다. 밤샘 근무한 다음 날 오전에 퇴근해 피곤할 법도 한데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고 동생 잘 지냈어.” “죄송해요 형님. 그간 인사도 못 드리고…” 취재 과정에서 친해져 형님·동생 하기로 해놓고 그간 안부 전화 한 통 못했던 동생이 야속할 텐데 “괜찮아. 어디 안 아프고 잘 살면 됐지”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그날도 ‘형수님’(임선미·45) 손을 꼭 붙잡고 함께 나왔다.(※예전에 취재를 위해 세 차례 그를 인터뷰했을 때도 항상 아내 임씨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나왔다.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소방관인 그에게 아내는 최고의 지지자이면서 동반자다.)

 백 소방위는 올해로 27년차 베테랑 소방관이다. 강남소방서에서 진압대장으로 8년을 채우고 지난해 7월 광진구 성수119안전센터로 발령이 나 6개월을 일한 뒤 지금은 능동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江南通新에 기사가 나간 뒤 수많은 곳에서 격려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고생한다. 고맙다…그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 때 그 뿌듯함에 중독돼 소방관 일을 하는 거죠. 하하.” 기사가 나가고 모교인 건대부고에서 열린 진로 특강에 초청받기도 했다. “자랑스러운 일이죠. 변호사·CEO 등 쟁쟁한 사람들 이름 한가운데 제 이름이 딱 있는데,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렇게 소방관에 관심 가져주는 게 고마운 일이죠.”

 그는 여전히 찰과상이나 뼈에 금 가는 정도의 부상은 그냥 달고 산다. 화재 진압을 하다 2~3층에서 떨어지는 일은 다반사다. 소방관이 그 정도 상처 가지고 어디 가서 다쳤다고 하는 게 오히려 창피한 일이란다. 아내 임씨는 “이제 좀 조심하면 좋을 텐데, 이 사람은 불을 보면 가장 먼저 뛰어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며 야속해 했다.

 알고 보니 그간에 사연이 있었다. 성수119안전센터에서 6개월 근무 후에 광진소방서 재난관리과로 배치돼 내근 근무를 하게 됐다.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아 잠깐 휴식을 취하게 해준 거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내근 근무를 그만뒀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게 체질이지…아휴 몸이 근진근질해서 난 그런 거 못해.” 그렇게 해서 지금 능동119안전센터로 왔다. 백 소방위는 지금도 불이 났을 때 소방호스를 들고 가장 먼저 화재 현장으로 진입하는 관창수 역할을 맡고 있다. 나이 50을 넘기면서 화재 현장이 힘에 부칠 법도 한데, 그는 아직도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힘쓰는 일은 이제 젊은 친구들한테 밀리겠지만, 지금은 집 밖에서 냄새만 맡아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음식이 타는 건지 아니면 정말 화재인지 구분해내는 노하우가 있죠. 정년퇴임까지 화재 현장을 지키는 게 꿈이에요.”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국내 1호 소믈리에 서한정씨
강남통신 SNS에 와인 칼럼 이런 게 인생의 즐거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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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소믈리에이자 한국와인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서한정씨를 만난 건 지난해 3월, 봄기운이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지난해 3월 25일자 ‘당신의 역사’에 한국 와인의 역사를 대변하는 서씨의 이야기를 담기로 했다. 그는 2008년 신라호텔에서 은퇴한 후 3년간 촉탁직으로 근무한 뒤 2012년부터 경기도 포천에서 여전히 와인 이야기를 하고 콩밭을 가꾸며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카카오스토리 ‘서한정의 와인? 와인!’ 연재
와인 어렵지 않아요, 즐겁게 마시면 그만

인터뷰를 위해 그의 집을 찾은 기자에게 “은퇴하고는 가끔 와인 강연을 하거나 해외 와이너리가 초대해서 외국에 가는 것 외에는 이렇게 밭일을 하며 지냅니다. 여름에 강남통신 기자들 포천으로 놀러 와요. 내가 기른 콩 구워서 와인 한잔합시다. 와인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요. 내가 즐겁고 맛있게 마실 수 있으면 돼죠”라고 했다.

기사가 게재되고 온라인에는 ‘반가운 얼굴이다’ ‘스승님이셨다’ ‘추억의 마주앙 광고 기억나네요’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 일이 인연이 돼 인터뷰가 게재된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4월 22일부터 강남통신 카카오스토리에 ‘서한정 와인? 와인!’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서한정씨가 직접 고른 와인을 소개하는 코너로 어렵게만 느껴지는 와인 마시는 법부터 와인 스토리, 추천하는 해당 와인과 궁합 맞는 요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독자 16명을 초청해 서한정씨와 함께 즐기는 와인 클래스를 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소믈리에로 불리는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매일 와인 관련 서적과 매너에 대한 공부를 한다.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것을 남에게 알려주고 그런 게 인생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와인이 있는 자리는 항상 행복하고 즐겁죠. 저는 강남통신 독자와 함께 매주 와인을 즐긴다고 생각합니다. 강남통신과 와인의 마리아주 역시 환상적이에요. 강남통신과 저 또한 참 좋은 인연이지요.”

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노인 미용봉사자 김정순씨
대단한 거 아니야, 날 위해 봉사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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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고 하지 뭐.”

 덤덤하고 짧은 답. 20년간 노인, 장애인, 화상 환자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미용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는 김정순(63)씨의 말이다. 지난 1월 13일자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소개된 후 생긴 변화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남을 기쁘게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데…
친정엄마·손주 돌보려 봉사 그만둬야해

 김씨의 간단한 말에 ‘여전하시네’란 생각을 했다. 강남구자원봉사센터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봉사를 했느냐’는 질문에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하며 시크하게 일축해 버렸다. 햇수로는 20년, 시간으로 따지면 5200시간이 넘는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내 몸, 내 가족 챙기기에도 힘들어하는 세상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을 위해 그 긴 시간 동안 봉사를 해온 건 누가 봐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김씨는 “별것 아니다”고만 했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뭐해. 난 쇼핑도 싫고 모여서 수다 떠는 것도 싫어. 어르신들 만나면서 그분들 살아온 인생 이야기 듣는 게 좋아. 재미있잖아. 그리고 머리 잘라 드리면 얼마나 깔끔하니 보기 좋아. 덥수룩했던 모습이 깨끗해지니 나도 기분 좋고 당사인 어르신과 환자들이 좋아하잖아. 그럼 나도 기분 좋고. 그래서 봉사한 거야. 대단한 거 아니야.”

 김씨의 사연은 지면뿐 아니라 온라인과 SNS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씨는 “가족과 친구들이 훌륭하다고들 해. 봉사활동 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한 줄은 몰랐다고 말이야. 아들이 ‘우리 엄마 대단하다’라고 할 땐 즐거웠어. 사돈댁에서도 대단하다고 전화도 왔어.”

 김씨가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한 건 1997년 장애인의 날이었다. 친구를 따라 장애인 휠체어 밀기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매주 2~3일씩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다. 미용기술을 익혀 노인병원 3곳과 복지관 5곳을 고정적으로 들르며 치매·중풍 노인, 장애인의 머리를 다듬어 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집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봉사를 시작한 후 그의 생활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흘러갔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집에서 1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청소와 빨래(※빨래도 세탁기를 쓰지 않고 모두 손으로 한다),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는 시간이 정확하게 오전 7시50분, 치매에 걸린 구순의 친정어머니를 데이케어센터를 보내드리고 나면 오전 8시30분이다. 그다음엔 노인병원·복지관·화상전문병원 등에 가서 미용 봉사를 했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어머니가 센터에서 돌아오는 오후 5시30분쯤이다. 그다음엔 어머니를 돌보고 가족을 위한 식사와 살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올 12월 말로 20년간의 봉사활동을 멈추려고 한다. 오는 5월 태어날 손주를 돌봐주기 위해서다. 친정어머니와 손주를 함께 돌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봉사를 계속하긴 힘들다. 김씨는 “봉사 가는 병원 원장님과 복지관 관장님이 아기 데리고 오라고 하는데, 어디 그럴 수 있나. 하지만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날 기다릴 노인과 환자분들이지”라며 섭섭해 했다.

 이어 그는 봉사에 대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봉사는 남을 위한 게 아니고 나를 위한 거야. 남을 기쁘게 만들어 줌으로 얻어지는 기쁨이 얼마나 큰데.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만두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게 중요해요.”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65세 재취업한 황승구씨
신문에 나온 나를 보니 지난 노력 보상받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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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2개월 전 황승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연구위원의 마음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2년간 백수생활을 한 끝에 65세의 나이로 재(再)취업에 성공했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열정만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중앙일보 江南通新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은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는 기회가 될 것 같아 흔쾌히 응했죠.”

다시 일 시작하고 노동의 기쁨 맘껏 즐겨
1년 계약직 연구위원, 최근 재계약 맺어

 그는 인터뷰에서 은퇴 후 생활과 재취업의 과정을 솔직히 들려줬다. 2012년 12월을 끝으로 34년간 몸담았던 한국기계연구원을 떠난 그는 이후 1년간 쉬다가 2014년에 재(再)취준생이 됐다. 이 기간에 매일 하루에 1~2시간씩 채용공고 사이트에 접속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입사원서를 넣었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본 건 6번의 고배를 마신 뒤였다.

 이런 내용을 담은 재취업 성공기는 2015년 1월 7일자 중앙일보 江南通新에 소개됐다. 2015년 새해를 맞아 특별히 제작한 사진집 형식의 신문이었다. 주제인 ‘새출발’과 그의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신문에 소개된 후 주변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축하를 받았습니다. 두 딸은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했고, 지인에게 ‘항상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얘기도 들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열심히 하자’고 다짐할 수 있었던 게 그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 됐다. “제 사진이 인쇄된 지면을 보니 지난날의 노력에 대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일하면서 위기가 있을 때마다 이 신문을 보고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후 그의 인생은 조금 더 바빠졌다. 지난해 8월부터는 한국기계연구원 퇴직자 40여 명으로 구성된 기계전문가협동조합에도 참여하고 있다. 연구소의 40년사를 보여주는 책 출판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게 주된 일이다. “퇴직한 후 쉴 때는 ‘휴식’의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한 후에는 노동의 기쁨, 휴식의 달콤함을 마음껏 즐기게 됐습니다.”

 1년 계약직이었던 UST와 재계약도 맺었다. UST 계약학과 입학생을 산업체와 연구원에 연결해 주는 게 그의 업무인데, 자신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낀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턴’의 대사가 떠올랐다. 은퇴한 70세 노인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가 인턴 지원을 하면서 자기소개서에 담은 내용이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그에게도 당분간 은퇴는 없어 보였다.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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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의 지난 3년 

강남통신은 2013년 2월 20일을 시작으로 3년간 ‘새로움과 통한다’(통신·通新)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명사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인생을 소개하고 지역 이슈와 교육,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쳐 한 발 앞선 트렌드를 전했다. 지난 3년간 강남통신이 담은 이야기들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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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강남통신에는 사람 이야기가 많다. ‘교육 1번지’라 불리는 강남구 대치동에 살고 있는 ‘대치동 사람들’ 3부작 시리즈(2013년 2월 20일~3월 6일)를 시작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책임변호사,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등 명사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인생과 교육관을 살펴봤다.

 ‘당신의 역사’(2014년 8월 20일~2015년 9월 23일) 시리즈는 보통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이었다. 경력 30년의 호텔 도어맨 손광남씨를 시작으로 한국 최초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 오순택씨, 현대자동차 최초의 여성 임원이었던 김화자씨 등 한 가지 직업에 인생을 바친, 유명하지 않지만 해당 직업에선 장인 48명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엮어냈다. 현재는 로봇박사 데니스 홍 교수와 그의 부모인 홍용식·민병희 인하대 명예교수의 이야기(2015년 11월 4일자)를 시작으로 한 ‘최고의 유산’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부모에게 물려받고, 또 내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족의 정신적인 유산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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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강남통신이 사람 이야기와 함께 공들인 분야는 교육이다. 엄마와 아이가 모두 힘들어하는 중2병, 과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부모들에게 의문을 품게 했던 중학교 수행 평가의 실태와 교육열에 시달리는 대치동 이야기 등 생활 속 교육 이야기를 풀어냈다. 해외에 거주하는 엄마, 아빠들이 직접 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2013년 9월 4일~2015년 7월 15일)는 세계 41개 도시의 학교생활을 소개해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독자들에 호평을 받았다. 현재는 한국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는 세계의 명문대학을 소개하는 ‘해외 대학 리포트’(2015년 8월 19일~)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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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강남통신은 맛집 소식이 강하다. 셰프들의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 ‘셰프의 단골집’, 셰프가 추천하는 동네 맛집인 ‘셰프의 이웃집’, 투표를 통해 최고의 맛집을 선정하는 ‘맛대맛 라이벌’ ‘레드스푼5’까지 소개하는 기획물마다 인기를 얻었다. 맛대맛 라이벌(2014년 2월 5일~2015년 2월 11일)과 레드스푼5’(2015년 8월 19일~2016년 2월 17일)는 맛 전문가인 셰프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간 코너다. 맛대맛 라이벌은 1·2위 대결 구도로 설렁탕을 시작으로 홍어까지, 42가지 주제별 맛집 85곳을 소개했다. 레드스푼5는 전문가와 독자가 함께 선정한 음식별 맛집 5곳을 선정했다. 이번 호부터 ‘맛있는 지도’가 연재될 예정이다.

 화장품 썰전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84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는 강남통신 최장수 코너다. 백화점·드러그스토어·온라인쇼핑몰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가장 잘 팔리는 화장품을 조사해, 기자들이 직접 제품을 써 본 후 신랄하게 품평한다. 장점만을 부각하는 다른 잡지·방송과 달리 장단점을 가감 없이 평가해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에겐 반갑지만은 않은 코너지만 독자들은 솔직하고 ‘독한’ 품평에 호평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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