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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만난 사람] “쿠팡은 유통 아닌 IT회사…우리의 도전 1회 초도 안 지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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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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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쿠팡 본사에서 김범석 대표가 “고객이 어디서 어떤 물건을 주문하든 실시간 배송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사진 김경빈 기자]

국내 전자상거래(e커머스)거래액 60조원 시대. 쿠팡은 국내 수많은 e커머스 업체 중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다.

e커머스 주도하는 김범석 대표

 업계 최초로 자체 차량과 인력을 이용한 ‘로켓배송’을 선보여 초고속 배송 경쟁을 불러 일으켰다. 설립 5년 남짓 된 벤처회사지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비롯해 블랙록·세콰이어캐피털 등 세계적인 ‘큰 손’들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받은 자금을 과감하게 투자해서 또 화제다.

쿠팡은 내년까지 1조5000억원을 물류에 투자하고 인력 4만 명을 뽑을 계획이다. 지난해 영업적자가 4000억~5000억원대로 추정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투자’를 외치고 있다.

지나친 투자가 독이 되진 않을까. 경쟁자들의 도전은 어떻게 이겨낼까. 쿠팡이 만들려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한 사람, 2010년 쿠팡을 창업한 김범석(38)대표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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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팡을 국내 1위 소셜커머스로 부른다. 마음에 드나.

 “시작은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쿠팡을 소셜커머스라는 건 삼성을 설탕회사(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제일제당)라고 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처럼 (과감히) 투자하는 소셜커머스가 어딨나.”

 - 그럼 쿠팡은 어떤 회사인가.

 “쿠팡은 정보기술(IT) 회사다. 직원의 절반이 IT 개발자다. 우리 직원들은 중국 상하이와 미국 실리콘밸리·상하이에도 상주하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 어떤 기술이 필요한 것인가.

 “e커머스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주문을 받는다. 매장을 가진 오프라인 회사보다 물류센터에서 취급해야 하는 물건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첨단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물류센터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물류센터 효휼의 핵심은 ‘회전율’이다. 일반창고는 상품이 많아지면 공간도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회전율이 높으면, 즉 하나를 출고한 즉시 하나를 입고해 넣으면 공간이 더 필요하지 않다. 비용도 줄고 고객도 빨리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1분 1초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수요예측을 잘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소프트웨어다.”

 - 전국에 초대형 물류센터를 짓는 이유가 뭔가.

 “많은 기업들이 비용을 아끼려고 물류와 배송을 아웃소싱한다. 하지만 ‘24시간 내 전국 책임배송’ 서비스를 실현하려면 전국 주요 거점마다 자체적인 물류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 유동성 위기라는 설도 있다.

 “현금은 충분하다. 지난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투자금 10억 달러(약 1조원)를 받았는데 달러-원 환율이 올라 원화 환산액은 당초보다 많이 늘었다. e커머스는 사업 초기에 돈이 조 단위로 들어갈 곳이 많다. 상하이와 실리콘밸리 외에 해외에 또 하나의 연구개발(R&D)센터도 설립 중이다. 유동성 위기라면 가능한 일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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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투자해서 이루려는 목표가 뭔가.

 “고객이 어디서 어떤 물건을 주문하든 몇 시간 내, 궁극적으론 실시간으로 배송하는 거다. 이건 아마존도 못해 본 엄청난 시도다. 고객이 모바일(스마트폰 등)을 터치하는 순간부터 쿠팡맨이 웃으면서 배송하는 순간까지 전 과정을 한꺼번에 통합하는 모델이다. 나는 이걸 ‘세상에 없었던 디렉트(direct) 모델’, ‘엔드투엔드(End to End)서비스’라고 부른다.”

 - 그게 가능할까.

 “미국에선 불가능해도 한국에선 가능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통신망이 깔려있고, 사람들이 최고 수준의 기기(스마트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스포츠카(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하는데 미국의 아마존은 도로(통신망·기기)가 너무 부실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반면 한국은 인프라 면에서 최고다. 해외 IT·물류 인재들이 제 발로 쿠팡에 입사하는 이유가 아무도 본 가본 길을 우리가 가고 있어서다.”

 - 손정의 회장도 이런 비전을 듣고 투자한 건가.

 “처음에 만나서 이런 계획을 설명을 했더니 첫 마디가 손 회장은 ‘꿈이 너무 작다. 더 큰 꿈을 꿔봐라’고 하더라. 최대한 크게 그림을 그려 얘기했는데 오히려 핀잔을 들으니 당황했었다.(웃음) 손 회장은 나와 만나서 사적인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경영에 대한 간섭이나 투자금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조건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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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마트 등 대형마트가 쿠팡을 잡겠다며 ‘최저가 경쟁’을 선언했다.

 “마트는 매장에 진열해서 팔기 때문에 상품 수를 늘리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무엇이든 팔 수 있다는 e커머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경쟁하려 한다. 가격 전쟁을 하는 것보다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유저인터페이스(UI)와 더 나은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10원 더 싸기 때문에 쿠팡을 이용하기 보다는 서비스가 더 좋아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아지게 하겠다.”

 - 쿠팡의 최종 목표는 뭔가.

 “고객들로부터 ‘도대체 쿠팡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을 듣는 거다. 쿠팡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 없도록 만들고 싶다. 주문 당일에 배송하는 로켓배송 상품도 크게 확대해나갈 것이다. 처음부터 고객중심적인 ‘기술회사’를 꿈꿨고, e커머스는 그 시작이다.”

 - 해외 진출 계획은.

 “아직은 국내다. 국내에서 우리의 다이렉트 모델을 구현해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해외로 진출할 때는 아마존이나 다른 글로벌 기업들보다 몇 세대 앞선 기술을 가지고 나갈 거다. 이루고 싶은 것을 야구에 비유한다면 아직 1회 초도 지나지 않았다.”

글=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김범석=7세 때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 경영대학원을 1년 다니다 중퇴했다. 재학 중 대학생 시사잡지인 ‘커런트(current)’를 창간해 뉴스위크에 매각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명문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잡지 ‘빈티지미디어’를 창간, 운영하다 애틀란틱미디어에 팔았다. 귀국해 2010년 쿠팡을 세웠다.

◆로켓배송=쿠팡은 자체 배송 인력인 ‘쿠팡맨’을 통해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공휴일 포함 24시간 안에 배송해 준다. 물류 업계에서는 쿠팡이 운수 사업자도 아닌데 사실상 유료배송 영업을 하고 있다며 반발한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는 11개 택배회사가 “로켓배송을 금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부정한 경쟁 행위나 영업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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