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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서 빈곤 퇴치하는 '영웅' 앤드루 윤…TED서 기립박수

중앙일보

입력

영웅(Hero).”

17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콘퍼런스에서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은 앤드루 윤(37ㆍ한국명 윤수현)을 이렇게 소개했다. 전 세계 기아ㆍ빈곤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유다.

윤씨는 강연에서 “10억 명의 극빈층 대부분은 농부다. 인류는 이미 100년 전 이들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좋은 씨앗과 비료, 농사 기술이다. 아직 그것을 전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빈곤 퇴치의 해법이 없는 게 아니라, 실천을 안 하고 있을 뿐이란 얘기였다.

이어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벌이고 있는 지원 활동을 소개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커스 슁글스 미국 X프라이즈재단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직접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강연 다음날 그를 따로 만났다.

윤씨는 미국에서 자란 교포 2세다. 명문 예일대를 우등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켈로그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졸업 후 보스턴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윤택한 삶을 살았지만, 학창시절 아프리카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하고 2006년 빈곤 퇴치 사업에 뛰어들었다.

케냐의 한 농가를 방문했는데 1에이커(약 4046m) 당 2t을 수확했다. 한데 바로 옆집의 수확량은 4분의 1밖에 안 됐다. 가난으로 아이도 잃었다. 두 집의 형편이 이렇게 달랐던 이유는 간단했다. 한 집은 좋은 씨앗ㆍ비료를 썼고, 한 집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빈곤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문제, 전달(delivery)의 문제였다.”

윤씨는 자기 돈 7000달러를 털어 40개 농가에 대출을 해줬다. 그의 지원을 받은 농부들은 각자 자기 생애 최대 실적을 올렸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한 윤 씨는 ‘원 에이커 펀드(www.oneacrefund.org)’를 설립했다. 농가 한 곳당 1에이커를 경작할 수 있는 농사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 줬다. 물류창고를 지어 좋은 씨앗과 비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패키지’로 농사기술 교육도 시켰다.

10년 뒤인 현재 ‘원 에이커 펀드’가 지원하는 농가는 케냐ㆍ르완다 등 4개국 40만 가구로 늘어났다. 이들의 소득은 전보다 평균 50%가 늘었다. 한 집 당 5명의 가족이 있다고 치면 약 200만 명이 빈곤을 탈출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퍼주기’를 한 것도 아니다. 경영학을 전공한 윤 씨는 펀드 동료와 농부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심어줬다. 그 결과 대출 상환율이 99%에 달한다. 이를 통해 펀드 운영경비의 80%를 충당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윤 씨는 “2020년까지 지원 규모를 현재의 3배로 확대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윤씨는 10년째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다. 미국서 살던 시절에 비해 수입이 크게 줄었지만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과 의미다.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일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그것을 쉽게 충족시켜 준다”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삶에 ‘한국의 유산(Korean Heritage)’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도 했다. “40년 전 전만 해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케냐와 비슷했지만 이후 급성장을 했다. 함께 힘을 모아 빈곤을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아프리카에서도 한국 얘기를 자주한다”.

“요즘 한국에는 ‘꿈과 미래가 없다’며 절망한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 경우엔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을 보며 매일 큰 감동을 받는다. 그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전문가가 되도록 한다. (틀에 박힌 일보다) 자신을 고무시키는(inspiring) 일을 찾으라고 격려하고 싶다.”

◇TED는=기술(Technology)ㆍ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ㆍ디자인(Design)의 영문 머리글자다. 이름 그대로 세계 각국 지식인들이 다양한 분야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나누는 모임이다. 15~19일 열린 올해 주제는 ‘꿈’이었다. 국내 언론 중에는 중앙일보가 유일하게 초청을 받았다.

밴쿠버(캐나다)=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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