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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의 메시' 정승환, "평창에선 안 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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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암빙상장에서 열린 제13회 전국장애인겨울체전 아이스슬레지하키 경기. 강원도청 14번 선수가 번개같이 공을 몰고 가자 두세 명의 선수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벼운 몸놀림으로 따돌린 그는 동료 선수에게 여유있게 공을 내줘 골로 연결했다. 기회가 생기면 벼락같은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빙판의 메시'로 불리는 국가대표 공격수 정승환(30·강원도청)이었다. 정승환의 강원도청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9년 동안 정상을 지켰다.

정승환은 5살 때 집 근처 공사장에서 놀다 사고를 당했다. 갑작스럽게 구조물이 쓰러지면서 오른 다리가 쇠파이프에 깔렸다. 오른 무릎 아래를 절단하면서 의족을 착용하긴 했지만 일상 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일반인처럼 격렬한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정승환의 운명이 바뀐 건 대학 선배이자 국가대표인 이종경을 따라 빙상장에서 아이스슬레지하키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슬레지하키는 아이스하키 못지않게 박진감 넘치고 격렬해 패럴림픽에서도 최고 인기 종목이다. 정승환은 "스피드와 힘에 매료됐다"고 했다.

2006년 강원도청은 아이스슬레지하키 최초의 실업팀을 창단했다. 정승환도 하키에 전념할 수 있었고, 대표팀의 경쟁력도 빠르게 성장했다. 세계정상급 팀과 기량 차가 커 귀화선수로 전력을 강화한 아이스하키와 달리 . 2012년에는 최고 단계인 A풀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2014년 소치 겨울 패럴림픽에서는 사상 첫 메달 획득도 기대됐다. 1m67㎝·53㎏의 작은 체구지만 재빠른 움직임과 기술로 상대를 따돌리기 때문이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정승환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슬레지하키 선수'로 소개했다.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에 빗댄 '빙판의 메시'란 별명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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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예선 첫 경기에서 홈팀 러시아의 텃세에 시달렸다. 상이군인들 위주로 팀을 꾸린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펼쳤다. 한국은 에이스 정승환이 어시스트 2개를 올리는 활약을 펼치면서 2-2로 경기를 마쳤다. 그리고 한민수가 승부샷에서 골을 넣어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세계최강 미국에 0-3으로 진 뒤 복병 이탈리아에 1-2에 발목을 잡혔다. 러시아에 조 2위를 내준 한국은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정승환은 경기 뒤 라커룸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정승환은 "정말 아쉬웠다. 미국전에서 부상을 당해서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갔는데…. 분했다"고 말했다.

아픔을 곱씹은 대표팀과 정승환은 2년 뒤로 다가온 평창 패럴림픽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B풀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은 전승으로 우승을 거머쥐며 다시 A풀로 올라갔다. 13골·9어시스트를 기록한 정승환은 MVP에 올랐다.

정승환은 "우리가 B풀 대회에 머물 팀은 아니라 만족하지 않는다. 내년 강릉 세계선수권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창이 세번째 올림픽 도전인데 이번엔 울지 않겠다. 꼭 메달을 따겠다. 하나 뿐인 실업팀이 더 늘어나고 사람들의 관심도 커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춘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아이스슬레지하키란=아이스하키(ice hockey)와 슬레지(sledge·썰매)의 합성어. 썰매에 앉아서 스틱을 양손에 쥐고 퍽을 상대 골문에 넣는 경기다. 경기방식은 아이스하키와 똑같고, 경기시간만 3쿼터 15분으로 아이스하키보다 5분씩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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