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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환자가 속쓰리면 심장병 의심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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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호 22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박모(55)씨는 얼마 전 속쓰림이 심해 소화기내과를 찾았다. 처음엔 위가 나빠진 줄 알았다. 그런데 검진 결과는 뜻밖에도 협심증이었다. 평소 고혈압을 앓던 박씨가 심장이 보내는 신호를 속쓰림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박씨는 최근 혈관을 뚫어주는 스탠트 삽입술을 받았다. 속쓰림은 질환명이 아니다. 개인이 호소하는 주관적인 증상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원인 질환이 다를 수 있다. 한·양방에서 바라보는 속쓰림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본다.


길병원 소화기내과 권광안 교수(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편집위원)는 “속쓰림은 역류성 식도염, 위·십이지장궤양, 위암, 협심증 등이 원인일 수 있다”며 “정확한 진단 없이 제산제에만 의지했다간 병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위장약(제산제)을 2주간 복용해도 속쓰림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복용을 중단하고 전문의와 상담할 것을 권고했다.


속쓰림 증상의 위치로 질환을 대략 가늠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 배꼽 위 상복부가 아프다면 위·십이지장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위·십이지장 내벽에 염증이 오래되면 살이 패이면서 상처가 나는데 이것이 위·십이지장 궤양이다. 위산은 pH(수소이온농도지수) 1 정도의 강산이다. 위산이 상처를 지날 때 속쓰림을 유발한다. 만성 위축성 위염이나 위암일 때도 상복부 속쓰림이 잦다.


우유는 위산 분비 촉진 … 잡곡·생선이 도움둘째, 가슴이 쓰릴 땐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할 수 있다. 역류성 식도염은 속쓰림을 호소하는 환자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역류성 식도염은 위산이 식도를 타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질환이다. 식도 아래는 위(胃)와 맞닿아있는데 이곳에서 식도를 조여주는 괄약근(하부식도괄약근)이 헐거워졌거나 횡경막의 인대가 늘어나 있으면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할 수 있다. 하부식도괄약근이나 횡경막 인대가 식도를 제대로 조이지 못하면 위산이 식도를 타고 역류한다. 위산이 식도 구간(약 25㎝)을 파고들 때 타들어갈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린다.


셋째, 고혈압·당뇨병을 앓는 중년 중 상복부나 가슴이 쓰리다면 박씨처럼 심장질환일 수 있으니 검사를 받도록 한다. 권 교수는 “자신도 모르는 새 협심증·심근경색 같은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가 속쓰림 증상을 호소해 소화기내과를 찾았더니 심장질환으로 판정받는 사례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속쓰릴 때 우유를 마시면 도움이 될까.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김도훈 교수는 “속쓰릴 때 우유를 먹으면 알칼리성인 우유가 위산을 중화하고 위산이 위 점막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 쓰린 속을 일시적으로 달랠 수 있다”며 “하지만 우유 단백질인 카제인을 분해하기 위해 위산이 더 많이 분비되면서 우유를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유의 칼슘도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 위·십이지장궤양 치료를 받으면서 우유를 하루 한두 잔 마시는 정도는 괜찮다.


금식하면 식후 위산이 분비되지 않아 속쓰림을 막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십이지장궤양은 음식을 먹든 먹지 않든 위산이 분비된다”며 “음식을 보거나 생각만 해도 미주신경(迷走神經)을 자극해 위산이 분비된다”고 덧붙였다.


너무 짜거나 맵고 뜨겁거나 찬 음식은 피한다. 위에 자극을 줄 수 있어서다. 폭음, 폭식하거나 부패된 음식, 소화가 힘든 식품을 먹으면 급성위염을 야기해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영양팀 박영옥 영양사는 “잡곡·채소에 풍부한 섬유질은 위산 분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며 “위 운동이 저하된 상태가 아니라면 섬유질은 궤양을 치료해 속쓰림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생선 등 식물성 기름에 많은 오메가3 지방산도 위 점막을 보호한다.


식사는 골고루, 규칙적으로 한다. 과식을 삼가고 고추·후추가루 같은 자극적인 음식은 줄인다. 커피·콜라에 많은 카페인은 위산을 분비하므로 속쓰림에 좋지 않다.

도움말: 길병원 소화기내과 권광안 교수

비위 기능 약하고 기가 허할 때 속쓰려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김모(23)씨는 1년 전부터 속쓰림이 심해져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밥을 먹어도 계속 토해 1년새 20㎏이나 빠졌다. 결국 1년 째 휴학 중이다. 양방병원에서 위내시경·피검사를 수차례 받았지만 별다른 이상소견이 없었다. 제산제, 위운동촉진제, 소화제 등을 처방 받아 먹어도 원인 모를 속쓰림이 계속됐다. 김씨는 휠체어를 탄 채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약·뜸·침치료를 받으면서 죽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입원 3주 만인 17일 퇴원했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내과 박재우 교수는 “속쓰림 원인을 찾지 못한 환자가 한방병원을 찾을 때가 많다”며 “동의보감에서 소화기관은 ‘비위’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비위는 오장(간·신장·폐·비장·심장)과 육부(소장·대장·간·위·삼초·심포)의 한 기관이다. 이중 비는 기운을 끌어올린다. 먹은 음식의 영양분이 몸 전체를 돌게 한다. 위는 내려가는 기운이다. 음식을 밑으로 내려보낸다. 한방에서는 비위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속쓰림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방에서 속쓰림은 식적·담음·위기허로 구분한다. 식적은 음식찌꺼기가 위 안에 오래 쌓여있는 상태다. 과식·소화불량일 때 나타난다. 담음은 액체 상태의 음식물이 옮겨다니면서 위장 부위에 담이 들린 증상을 말한다. 위기허(또는 위허)는 위 기운이 허한 상태다. 선천적으로 위 기능이 약한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한방에선 약물·뜸·침치료 병행하기도한방에서는 속쓰림 증상을 약물·침·뜸 요법으로 해결한다. 약물요법으로 식적에는 창출·후박 등을 넣어 위를 평안히 만든다는 평위산을, 담음에는 진피·감초 등을 넣어 달인 이진탕을 처방한다. 또 위 기운이 허한 때는 인삼·백출 등을 넣은 이공산·사군자탕을 조제한다. 침 치료는 팔다리의 혈자리를 활용한다. 합곡(엄지와 검지 사이 손등살)·족삼리(무릎 바깥쪽에서 3~5㎝ 아래), 공손(엄지발가락 바깥), 내관(손목 아래 3㎝)에 침을 놓는다. 침 치료는 주 2~3회 20분씩 2~4주간 진행한다. 합곡(명치와 배꼽 사이)에는 침을 놓거나 뜸을 뜬다. 뜸 치료법은 쑥의 따뜻한 기운이 위의 허한 기운을 채우는 원리다. 뜸 치료는 1~2일마다 20~30분씩 1~2주간 받도록 권장된다. 지압요법도 있다. 합곡·족삼리를 손톱 끝으로 꾹 눌렀다 떼기를 반복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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