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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화장은 자연스러움이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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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호 24면

맥(MAC) 글로벌 아티스트리(artistry) 부서의 디렉터이자 글로벌 수석 아티스트인 로메로 제닝스(Romero Jennings·44)는 런던·파리·밀라노·뉴욕 세계 4대 컬렉션에서 진행되는 200여 개의 패션쇼 메이크업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이다. 레게 음악과 강렬한 원색 패션으로 유명한 카리브 해의 섬나라 자메이카 출신으로 6세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 패션학교 FIT에서 여성복 디자인을 전공하고 우연히 떠난 일본 여행에서 메이크업의 세계로 빠져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지난달 26일 ‘2016 SS 메이크업 트렌드’ 설명회를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제닝스를 만나 올 봄에 유행할 컬러와 메이크업 비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맥 글로벌 아티스트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브랜드의 핵심 DNA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부서다. 새 제품이 만들어지면 이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활용도는 무엇인지 전 세계를 돌며 프로모션 한다. 현지의 여러 아티스트와 만나 교류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브랜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각국의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고객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수석 아티스트란. “전 세계에서 일하는 맥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2000여 명인데 그중 수석 아티스트는 4명뿐이다. 이들은 일종의 브랜드 홍보대사다. 브랜드 이미지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4대 컬렉션에서 진행되는 패션위크에 참여해 새로운 메이크업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인생을 바꾸게 된 일본 여행이 궁금하다. “21세 때 우연히 떠난 여행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패션 디자이너 사토 고신을 만났는데, 그는 마이클 잭슨, 듀란 듀란, 마일즈 데이비스, 스맙, 히카루 겐지 같은 셀러브리티를 위해 쿠튀르 의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작업에 흥미를 느껴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됐는데, 그때 카탈로그 작업을 위해 메이크업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됐다.”


왜 사토 고신은 어시스턴트에게 메이크업을 맡겼을까. “뉴욕 FIT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던 80년대에 학생들은 돈이 부족했다. 자기가 디자인한 옷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서로 도와야 했다. 친구들끼리 서로 모델이 되어주고, 메이크업이나 사진 촬영을 대신 해주기도 했다. 그는 아마도 새로운 카탈로그 작업에 기존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대신 실험적인 내가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메이크업 공부를 시작한 건가. “일본에서 5년간 살면서 현장에서 패션과 메이크업을 동시에 공부했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엑스트라로 배우 활동을 하던 여동생이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소개해줬고, 그를 통해 ‘맥’이라는 메이크업 브랜드를 알게 됐다.”

화장은 여성을 위한 것이다. 특히 70~80년대에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된다는 건 별난 선택이었을 텐데. “메이크업에 대한 열정은 사실 어려서부터 있었다. 어머니를 통해 여성이 화장을 하면 얼마나 자신감이 커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립스틱, 아이섀도, 마스카라 정도의 단순한 과정만으로도 여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년에 4분의 1은 출장 중이다. “아티스트로서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는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할 때가 아주 흥미롭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오래된 역사와 서양과는 확연히 다른 전통 문화가 있다. 또 음식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중요한 경험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데, 여행을 통해 색다른 꽃과 식물을 볼 수 있어서 내게는 출장이 일이 아닌 기쁨이다.”


맥에서는 2016 SS 메이크업 트렌드를 ‘한 듯, 안 한 듯한 화장’이라고 제안했다. “아주 미묘하고 적은 터치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뉴 내추럴 트렌드다. 슬쩍 봐서는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선 하이라이트, 컬러, 꼼꼼한 스킨 케어 등 신경 쓸 것이 아주 많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메이크업’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이 개념이 한국의 K뷰티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아티스트로서 생각하는 K뷰티란. “한국 여성들은 대단히 섬세하다. 얼굴에 사용하는 아주 작은 도구까지도 완벽하길 원하고, 미세한 컬러 차이도 정확히 구분해낼 만큼 민감하다. 또 아주 오랫동안 공들여 화장을 하지만 실제로 보이는 모습은 원래 자신의 피부 톤처럼 자연스럽기를 원한다. 맥은 오래전부터 이런 취향의 K뷰티에 관심을 가져왔고 한국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외국계 브랜드로는 최초로 BB콤팩트를 출시했고, ‘캔디 얌얌’ ‘써니 서울’ 같은 립스틱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출시되는 쿠션 콤팩트도 K뷰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최신 기술의 스펀지를 활용해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럽고 매끈한 피부 톤을 만들어주는 제품이다.”

2016 SS 키 컬러로 ‘아쿠아틱’과 ‘핫 체리’를 제안했다. “4대 컬렉션을 통해 매년 새 트렌드를 제시하는 디자이너들과 쇼를 진행하다 보면 메이크업 트렌드도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그래서 올 봄여름에 유행할 컬러로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블루 아이섀도와 핫 체리 빛깔의 립스틱을 선정했다.”


블루 아이섀도는 한국에선 ‘어머니들의 화장’이 연상되는 촌스러운 느낌이다. “똑같은 색도 어떤 텍스처를 가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70년대에는 건조하고 메탈릭한 느낌이 강해 주름이 도드라지고 촌스러워 보였다면, 현대는 브러시와 텍스처의 발달로 훨씬 부드럽게 발리기 때문에 패셔너블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특히 바다 색깔에서 가져온 블루는 굉장히 중성적인 컬러라 어떤 피부 톤, 눈동자 색깔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립스틱을 바르지 않는 여성도 많은데 핫 체리 빛깔이라면 더욱 튀지 않을까. “패션위크 등을 통해 이미 검증받은 색이다. 또 내가 작업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는데 매트하면서도 벨벳 같은 텍스처의 립스틱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더라. 내 어머니도 좋아하는 걸 보면 핫 체리 빛깔의 립스틱은 전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는 컬러다.”


‘컬러’를 사용하는 걸 두려워하는 여성도 많다. “아이섀도나 립스틱 등에 선명한 컬러를 사용할 때는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과 겹치지 않는 게 방법이다. 색을 처음 시도하는 게 두렵다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라. 블루만 해도 수백, 수천 가지가 있다. 메이크업 전문가들에게 내게 가장 잘 맞는 톤을 추천받는다면 나를 표현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아티스트로서 직접 다양한 컬러의 화장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는 않은가. “립스틱, 아이섀도 컬러를 바꿈으로써 기분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성이 정말 부럽다. 하지만 꼭 컬러 제품이 아니어도 남성이 활용할 수 있는 여성 화장품은 많다. 각질 제거제를 이용해 피부를 매끄럽게 정돈한다든가, 아이래시를 이용해 속눈썹을 올려줘서 눈매를 또렷하게 한다든가. 세럼을 뺨 주변에 발라주면 생기 있는 동안 피부 톤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아이 브로를 이용해 눈썹 모양을 다듬기도 한다.”


가장 완벽한 메이크업이란. “패션과 메이크업을 모두 공부하면서 생각한 결론은 의상과 메이크업은 나의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가끔은 옷이나 화장이 과도해서 또는 나랑 잘 안 맞아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때가 있다. 옷이나 화장이 그 사람을 먹어버리는 경우다. 그래선 안 된다. 어떤 의상을 입든 어떤 화장을 하던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화장품 중 단 하나만 선택한다면. “쿠션 콤팩트(웃음). 피부를 보호해주고 얼굴의 가장 넓은 면적을 커버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좋은 화장은 맑고 자연스러운 스킨 톤이다.”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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