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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구 일본군의 구조적 범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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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호 30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로부터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지난 16일에 이어 어제(20일) 또 한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별세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한다고 선언한 한일 합의가 이행되기 전에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일 합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바로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실로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국제기구에 제출한 일이다.


아베 정권은 1차 집권(2006~2007년) 때부터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다’고 강변해 왔다. 또 ‘위안부 문제와 관련, 사실과 다르게 인식되어 있는 점에 대해선 국제사회에 설명해 나갈 방침’이라고도 했다. 그러므로 한일합의를 했다고 해도 일본 측의 주장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면 그들이 말한 ‘사죄와 책임’의 진의는 무엇인가? 한일 합의 이후 자민당의 한 의원이 “위안부는 상행위였다”고 발언한데 대해 아베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간부들이 그 국회의원을 잇따라 비판했다. 이런 언행으로 볼 때 아베 정권이 밝힌 ‘일본 정부의 책임’이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군을 잘 감독하지 못했던 책임, 일본정부가 위안부를 모집한 업자들을 잘 감독하지 못했던 책임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감독 책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당시 일본 정부나 구 일본군이 위안부를 무리하게 강제동원하라고 명령한 사실은 없고 강제동원을 했다고 하면 업자들이 한 것이라고 발을 뺀다.


사적인 일이지만 본인은 공식 문서와 피해자 증언 등을 중심으로 올해 1년간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생각이다. 현재는 1997년 3월 일본 측의 ‘아시아 여성기금’이 발표한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 전 5권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자료집 5권에는 일본정부가 조사하여 발표한 위안부 관련 공문서들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다. 이 자료집 제1권 앞부분에는 ‘16살부터 30살까지’의 작부(酌婦·술시중을 하는 여성)를 ‘군의 방침으로’ 우선 3000명 모집한다는 광고가 유포되었다는 1938년의 경찰자료가 실려 있다. 자료 속에서 일본 경찰은 ‘군의 지시에 따라 모집한다는 이런 얘기는 결국 추업(=위안부업)을 시키기 위한 것이니 군의 지시라고 쉽게 믿기 어렵다’고 하여 관계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일본 측은 이런 자료들이 오히려 ‘일본 경찰이 업자들의 불법적인 위안부 모집을 단속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은 군의 모집의뢰를 받은 업자들이 나이 어린 소녀들까지 속여서 위안부로 동원한 일이 다반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구일본군이 경찰이나 정부가 단속하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구일본군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천황 직속이었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일본정부에 대해 구일본군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일본제국헌법은 ‘천황이 신민(臣民)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여 천황을 신격화했기 때문에 결국 구일본군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나 기관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즉 당시 경찰이나 일본정부는 구일본군을 단속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이런 모순된 구조가 군부의 폭주에 면죄부를 줬다.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이 관동군의 폭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그런 관동군의 폭주를 억제할 권력 자체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독재기관이었던 구일본군이 사실상 단속을 받지 않고 저지른 범죄가 위안부 문제라는 관점이 성립된다. 즉 일본에서 나치독일에 해당하는 존재는 구일본군인 것이다. 한국도 이제 자료에 입각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위안부 문제 규명과 논리 구축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왔다.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정치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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