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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우주 138억 년, 중력파 1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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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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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제자가 물었다. “이것, 어디에 쓰는 거죠.” 스승이 답했다. “아무 데도 쓸모없다.” 1888년 전자기파를 처음 검출한 헤르츠의 일화다. 스승 헤르츠는 틀렸다. 7년 뒤 마르코니가 전자기파를 이용한 무선통신 기술을 개발했다. 헤르츠가 없었다면 라디오도, TV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인슈타인도 틀렸다.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왜곡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1915년 발표한 그는 중력파를 찾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파동의 세기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과학계는 흥분에 빠졌다. 미국과학재단이 지난 주말 중력파를 처음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우주를 향한 새 창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오정근 박사에게 물었다. “중력파, 어디에 쓰는 거죠.” 그가 답했다. “아직 몰라요. 과학은 그렇게 발전합니다. 헤르츠가 그랬잖아요. 20세기 초 양자역학 논란도 마찬가지였고요. 조선시대 성리학 논쟁처럼 무용해 보였지만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중력파가 뭐길래? 자료를 뒤졌다. 문과생 머리에 쥐가 났다. 그런데 시야가 넓어졌다. 눈에 안 보이는 중력파를 잡아채려는 과학자들의 땀이 보일 듯했다. 13억 광년 전에서 날아온 이번 중력파가 길이 4㎞, 지름 122㎝ 크기의 진공 튜브를 통과하며 해당 기기에 일으킨 길이 변화는 4×10의 마이너스 16㎠, 즉 4㎞ 막대기가 1경분의 4㎝가량 늘거나 줄어든 셈이다. 오 박사는 “지구에서 6500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성단에 사는 한 외계인의 머리칼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구에서 감지한 것”에 비유했다. “태양이 원자 크기만큼 진동한 것을 지구에서 느끼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쉽게 상상이 안 된다. 이번 중력파를 일으킨 두 블랙홀이 충돌하는 데 걸린 시간은 0.15초. 당시 방출된 시간당 에너지가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나오는 모든 빛 에너지의 50배나 된다고 한다. 인도 불교의 찰나(刹那·75분의 1초)와 겁(劫·무한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과학과 종교는 한 뿌리라는 명제에 주억거리게 됐다. 현대 천문학이 추정하는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 100년 만의 중력파 발견은 찰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 6개월 미세조정을 거치면 현재 미국에 두 곳이 있는 중력파 관측소의 검출 능력이 크게 높아진다고 한다. 어떤 ‘놀라운 신세계’가 펼쳐질까. 아니면 또 어떤가. 우주는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는데….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