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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박근혜식 체제 경쟁에서 빠진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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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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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

“북한이 날로 먹으려 하잖아요.”

체제 경쟁 중심축은 경제와 정치
박 대통령은 어떤 노력을 해왔나

지난해 1월 청와대 신년인사회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희상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을 왜 안 하시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박 대통령의 짧은 한마디엔 북한 정권에 대한 깊은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돌이켜보면 ‘북한이 날로 먹게 놔두지 않겠다’는 자세가 사드 공식화,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졌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공단 입주 기업이나 시민들의 의견을 타진하거나 수렴하는 과정이 누락됐다는 데 있다. 급변침 상황에서 평형수(소통)가 부족하고 고박(설득)이 불량하면 복원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오늘 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주목하는 건 그래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통일 대박론의 실패를 인정하고, 앞으로의 비전과 전략을 납득이 가게끔 설명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두 가지를 묻고자 한다.

 우선은 경제다. 남한 경제력이 북한의 40배란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강공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엔 남북의 경제 격차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경제의 질은 어떠한가. 저성장과 양극화·고령화 속에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헬조선’에 이어 금수저-흙수저 계급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까지 등장했다. 얼마 전 지인들과 저녁을 먹는데 한 참석자가 헌법 얘기를 꺼냈다.

 “11조 2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렇다면 금수저는 헌법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지난해 12월 통계청 자료를 보면 상위 30% 가구가 73.4%의 순자산(부채를 뺀 자산)을 차지한 반면 하위 30%는 2.5%를 놓고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체제의 불안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접지 않도록 얼마나 노력해왔는가.

 두 번째 위협 요인은 박 대통령 자신과 직접 관련돼 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원칙은 지난 3년간 대북 문제뿐 아니라 국내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돼 왔다. 그 결과 1987년 6월 이후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었던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 대통령이 지난달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서명 운동에 참여한 것을 두고 한 전직 판사는 ‘공화정의 위기’라고 말한다.

 “대의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같은 선출직 대리인인 국회의원들과 협의해 현안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대통령이 국회를 압박하려고 거리 서명에 나선다는 게 말이 됩니까. 마름이 땅 주인에게 ‘소작농들이 일을 안 하니 당신이 직접 가서 혼내주라’고 요구하는 꼴 아닙니까.”

 그러는 사이 전직 경제부총리는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하며 ‘진실한 사람’ 인증을 하러 다니고, 여당 원내 수석부대표란 이는 “헌법보다 인간관계가 먼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차라리 70년대 유정회(유신정우회)를 부활시키라”는 비판에도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나 더 묻는다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게 충성도를 기준으로 숙청하는 것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잡아다 처형시키진 않는다고? 그렇게 북한 김정은과 상대평가를 하면 되는 일인가. 한 정당을 종북정당, 위헌정당이란 이유로 해산했다면 더더욱 헌법 정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맞게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배부르게 살 수 있다’거나 ‘돈 많은 쪽이 갑(甲)’이라는 천민자본주의로는 북한 정권을, 아니 북한 주민들을 승복시킬 수 없다. 정신으로도, 시스템으로도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소통과 양보로 우리 안의 냉전(冷戰)을 걷어내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경제 정의에 힘써야 한다.

 진정한 통일의 길은 북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도 남조선처럼 살고 싶다’는 염원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그래야 남북 모두를 위한 체제 경쟁이 되는것 아닌가. 그런 것 아닌가.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