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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DNA로 빙속 세계 최고 오른 이승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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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28·대한항공). [사진 중앙포토]

2위, 3위를 차지한 외국 선수가 한국에서 쇼트트랙을 배우고 싶다고 하던데요. 하하하."

세계선수권이 끝난 뒤 이승훈(28·대한항공)은 유쾌하게 웃었다. 7년 전 좌절을 안겨줬던 쇼트트랙 DNA가 그에게 스피드스케이팅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이승훈은 14일(한국시간)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2016 국제빙상경기연맹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매스스타트에서 7분18초26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에 올랐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적은 있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매스스타트는 여러 명의 선수가 함께 지정된 레인 없이 400m 트랙 16바퀴를 함께 달린다. 줄곧 후미에서 달리던 이승훈은 2바퀴를 남기고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3위였던 이승훈은 마지막 코너에서 안쪽을 파고들어 두 명의 선수를 단숨에 제쳤다. 2위 아리얀 스트뢰팅아(네덜란드·7분18초32)와 차이는 겨우 0.06초였다. 쇼트트랙에서 자주 보던 역전극같았다. 이승훈은 "마지막 추월만 노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승훈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다. 이승훈은 2010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표 선발전에서 넘어진 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1만m 금메달, 5000m 은메달을 따내는 사고를 쳤다. 하지만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1만m 4위에 머물렀다.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을 이겨내긴 쉽지 않았다. '장거리 최강자'인 스벤 크라머(30·네덜란드)는 1m87㎝로 이승훈보다 10㎝ 크다.

그러던 이승훈에게 꿈같은 기회가 왔다. 매스스타트가 평창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순간 판단, 순발력, 추월 능력을 갖춘 이승훈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예상대로 이승훈은 2014-2015시즌 월드컵 시리즈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승훈은 "나를 위해서 매스스타트가 생긴 것 같았다. '이 종목은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다른 선수들의 견제가 시작됐다. 매스스타트는 많아야 8명이 함께 타는 쇼트트랙과 달리 20명 이상의 선수가 경기를 한다. 그래서 몸싸움을 비교적 많이 허용하고 헬멧까지 쓴다.

이승훈은 "유럽 선수들은 나라가 달라도 같이 운동을 하기 때문에 한 팀이나 마찬가지다. 서로 끌어주고 돕는다. 그래서 올해 월드컵은 안정적으로 경기를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올해 랭킹은 7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승훈은 승부사답게 세계선수권에 집중해 1위를 차지했다.

이승훈은 "쇼트트랙 경험이 큰 재산이다. 쇼트트랙을 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추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보름(23·강원도청)도 쇼트트랙에서 전향한 케이스다. 역시 막판에 4명을 추월한 김보름은 "상대를 따라잡는 능력은 자신있다"고 했다. 김용수 대표팀 코치는 "평창에서는 매스스타트가 한국의 전략종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콜롬나(러시아)=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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