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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넘어진 아이들 짐 덜어줘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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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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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소년원장으로 부임하는 송화숙씨. 개원(1942년) 이래 최초의 여성 원장이다. [사진 장혁진 기자]

“살면서 누구나 넘어져요. 한번도 다쳐본 적 없이 반듯하게만 걸어서 삶을 마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실수로 넘어졌던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맑은 아이들은 고단한 삶을 짊어져야 한답니다. 소년원의 ‘원장’이 아닌 ‘엄마’로 아이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요.”

서울소년원 첫 여성원장 송화숙씨
“행동 거칠어도 마음 순수한 원생들
자립 여건 만드는 데 최선 다할 것”

 국내 최고(最古)·최대 규모 청소년 보호시설인 서울소년원의 첫 여성 원장으로 15일 부임하는 송화숙(57)씨는 14일 이같이 말했다. 이곳에 여성 원장이 임명된 건 1942년 경성교정원으로 문을 연 이래 74년만이다.

 송씨는 대학 졸업 후 시골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 86년 7급 보호직 경력공채로 공직에 첫발을 들였다. 서울소년원은 송씨가 영어교사로 소년원 근무를 처음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다.

송씨는 “군대 내무반처럼 딱딱한 교실 분위기가 적응하기 힘들어 그만 두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표현은 거칠어도 순수한 마음씨를 지닌 아이들을 떠날 순 없었다고 한다.

 90년 안양소년원 담임교사 시절 만난 김영숙(가명·43)씨는 송씨에게 각별한 제자다. 김씨는 알콜 중독인 아버지에게 자주 폭행을 당했던 처지였다.

퇴원 무렵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자 송씨는 사비를 털어 김씨에게 방을 구해줬다. 후원자도 연결해 주고 야간고교에 다니도록 지원했다.

 송씨의 배려 덕분에 김씨는 좋은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면서 성공적으로 사회에 정착했다. 어느덧 중년이 된 김씨는 송씨와 친자매같은 사이다. 최근 두 사람은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 훈련을 마친 김씨 아들의 면회도 함께 다녀왔다.

송씨는 95년 소년원 교사 생활을 마친 뒤 소년보호정책 전문가로 변신했다. 안산청소년비행예방센터장·안양소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안양소년원장 시절엔 매주 토요일마다 학생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총 105번 관악산에 올랐다. 악기에 소질이 있는 학생을 발굴해 소년원에서 곧바로 음대에 진학시키기도 했다. 안양소년원은 송씨의 재직 기간 동안 전국 최우수 소년원으로 두 차례나 선정됐다.

송씨는 “사회·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소년원생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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