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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외로움에 빠지면 면역력 ‘뚝’ 성찰 기회로 삼으면 활력 ‘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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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500만 시대. 혼자인 게 낯설지 않은 사회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이 유행하고 컬러링북 색칠, 블록 조립 같은 혼자만의 취미가 인기다. 그런 일상을 숨김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공유한다. 요즘 싱글족이 외로움을 달래는 방식이다.
반대로 날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들도 있다. 그저 끼니를 때우기 바쁘고 홀로 TV 앞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며 말벗을 그리워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대처하기에 따라 삶의 만족감은 천지차이다. 특히 만성적인 외로움은 심혈관·소화기 질환, 질병 예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감정에 허우적대다 건강을 잃지 않으려면 외로움과 정면으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감정, ‘외로움’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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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모(31·서울 영등포구)씨는 1년 전 SNS를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일어날 때부터 시작해 출퇴근, 직장생활, 식사, 취미활동, 쇼핑 등 크고 작은 일상을 모두 사진으로 기록해 남겼다. ‘좋아요’라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행복감은 커졌다. SNS는 10년차 자취생의 외로움을 달래준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공감·댓글 수를 늘리려고 안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SNS 속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에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해,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SNS에 몰입한다”며 “SNS를 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어 좋았다가 원래의 내 모습이 아닌 가공된 정체성에 더 큰 고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외로움 많으면 항바이러스 기능 약해져
외로움은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외로움을 느끼면 누군가와 따뜻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마치 식욕이 당길 때 배고픔이 밀려오듯 외로움을 느끼면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 우울 같은 심리현상은 물론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외로운 사람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스스로 무력감과 위협을 많이 느껴서다.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앞서 생각하고 기대하는 심리 탓이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서수연 교수는 “외로운 사람은 아닌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훨씬 많이 분비된다”며 “사회적 지지가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느낄수록 패스트푸드 섭취, 음주, 흡연, 불규칙한 수면 같은 건강을 저해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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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관여한다. 미국 시카고대 존 카치오포 박사 연구팀은 50~68세 성인 141명을 대상으로 외로움의 수준에 따라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했다(미국국립과학원회보, 2015). 연구 결과,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백혈구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 감염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혈구는 몸속에서 유해 바이러스와 싸우는 혈액세포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현국 교수는 “외로운 사람에게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고, 염증 반응 수치가 올라간다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대인관계를 형성하며 느낀 감정은 훗날 건강지표에 반영되기도 한다. 실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은 1만4000명을 상대로 친구 수, 동료와의 친밀감 등 외로움의 정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20년간 추적해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지난 1월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청·장년기 대인관계 형성에 취약했던 사람은 60대 중반이 됐을 때 허리둘레가 평균 5㎝ 더 굵었고, 염증반응 수치도 약 22% 높았다.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같은 각종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마음먹기 따라 치료 예후·재발률 달라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은 때때로 놀라운 치유·긍정의 힘을 발휘한다. 외로움을 건전하고 생산적인 활동의 기회로 활용할 때다. 특히 전문가들은 질병의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육종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중년여성 환자가 그렇다. 수술 후 재발해 암이 간에까지 전이됐지만 5년 넘게 무리 없이 생활하고 있다. 해당 환자를 지켜봐 온 SRC요양병원 백경기(혈액종양내과) 부원장은 “육종암 4기에서 5년 넘게 생존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지금껏 꿋꿋이 투병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외로움의 시간을 긍정의 힘으로 바꿨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암 치료의 최우선은 수술과 항암요법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잘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도 질병의 예후나 재발률에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외로움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첫 번째는 혼자인 상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된 스티브 잡스(애플의 창업자), 재혼 후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 사생아로 태어나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 오프라 윈프리(영향력 있는 방송인) 등 모두가 외로움 앞에 우뚝 선 이들이다. 외로움이란 에너지를 스스로 담금질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윤대현 교수는 “외로움에 집중할수록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며 “외로움에 친숙해지는 시간 속에서 더욱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나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과 창조의 비결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혼자 노는 방법을 익히면 자기계발과 즐거움이 동시에 충족된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인기비결이 여기에 있다. 출연진은 모두 혼자 살지만 외로움 속에 파묻혀 몸부림치거나 쩔쩔매지 않는다. 사진 찍기와 드론 날리기, 산악자전거 같은 취미생활에서 재미를 얻는다. SNS 활동으로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친구를 사귄다.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이라며 “혼자일지라도 강좌 수강, 봉사활동 같은 여가생활을 즐길 방법을 찾아 실천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태한 생활, 불량한 식습관 주의
성공적인 ‘나홀로족’과 교류하는 것도 방법이다. 혼자라는 것이 꼭 단절을 뜻하는 건 아니다.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한 이들과 교류하면 동지애를 느끼는 것은 물론 정보 습득이 용이하다. 문득 짙은 외로움에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홀로 좀 더 알찬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뜻하지 않은 상처에 흔들릴 때 같은 처지의 나홀로족을 만나면 힘이 된다. 혼자 사는 일상의 훌륭한 교본이자 버팀목 역할을 한다.

성공한 나홀로족이 되려면 심신의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혼자인 사람은 옆에서 돌봐주고 챙겨줄 사람이 없다. 특히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다가 무기력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나태한 생활과 불량한 식습관으로 건강을 해친다. 외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생활습관 교정이 필수다. 잠·식사 같은 일상생활에 기본규칙을 정해 지키도록 노력한다. 몸 상태를 고려한 운동법을 택해 체력도 꾸준히 관리한다. 평소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건강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정기검진으로 건강을 수시로 점검하고 늘 예민하게 신경을 쓴다. 윤 교수는 “외로움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심신의 건강을 잃기 쉽다”며 “혼자 있는 시간을 성찰과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아 잘 숙성시키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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