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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는 결정론 아닌 가능론” 석·박사 따러 전문직 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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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12면

미래예측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서울 성북동의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의 본관 전경(위)과 점집이 몰려있는 서울 미아리 점집 거리(아래). [중앙포토]

치과의사 강우석(57·서울 은평구)씨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미래예측학(未來豫測學)’ 박사가 그것이다. 신구대 치의학 교수를 겸직하고 있는 그는 2011년에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풍수로 제2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씨는 “이순신 장군도 주역의 대가였다”며 “과학도로 평생을 살았지만 항상 1% 부족한 느낌을 받았는데 배운 대로 따져 터자리·수술날짜를 잡아보니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풍수·관상 등 미신으로 취급받아 왔던 ‘술수학(術數學)’이 대학이란 제도권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사주명리(四柱命理)’ 분야가 활발하다. 1999년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에 사주명리학 강의 개설을 시작으로 동방문화대학원대·대전대·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경기대 등 10여 개 학교에 사주명리 대학원 정규과정이 생겨났다. 원광디지털대·글로벌사이버대 등 사이버대학에도 관련 학과가 설치됐다. 석·박사과정인 만큼 논문도 따라 늘었다. 지난해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등재(후보) 학술지에 게재된 사주명리 관련 논문은 박사논문 45편을 포함해 250편에 육박한다. 원광디지털대는 최근 일본 교토대와 한·일 술수학 포럼을 개최했을 정도다.


누가 이들 과를 찾을까. 학생 평균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전문직이 의외로 많다. 의사·변호사부터 기업체 이사, 증권맨, 상담사 등이 문을 두드린다. “고전에 대한 관심이 있어 문화센터를 돌다가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고 오는 사람이 절반,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온 사람이 절반이다.” 전담교수가 있어 규모가 큰 편인 동방문화대학원대 미래예측학과장 윤무학 교수의 말이다. 민속문학과로 출발했지만 2006년에 미래예측과로 이름을 바꾼 후 입소문을 탔다. 동양철학의 비제도권을 제도권 내 학문화한다는 조건으로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정권 교체로 진로에 걱정이 많은 고위공무원들도 은밀히 찾아온다. 신분상 정식으로 점집으로 가지도 못하니 입학상담 등을 빌미로 교수에게 접근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사람들이 미래에 관심을 갖는 한 이 과들의 인기가 쉽게 사그라질 기미는 없다. 동방대 김만태 교수는 “한국인에게 사주팔자는 수긍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의 틀이자 극복하고 개척해 나가야 할 양가감정적 존재”라고 해석한다. 서양의 점성술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방대 천인호 교수는 “사주라는 것은 타고난 그릇이고 그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느냐는 게 우리의 학문의도”라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결정론이 아니라 가능론이며 박사로 배출된 학생들이 점집을 내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주명리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아직도 결혼을 앞두고 신부집에 사주단자를 보내고 궁합을 본다. 명절에 모이기만 하면 벌어지는 윷놀이의 윷도 ‘척사점’의 하나다. 한국인의 연간 점술산업 규모는 약 4조원으로 추정된다. 점술 종사자도 6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인터넷 카페 다음에 등록된 사주명리학 카페는 1000여 개가 넘었다. 이제 인터넷으로 등록된 사주의 요소들이 빅데이터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광대 강사를 지낸 조용헌 박사는 “강단동양학(講壇東洋學)이 있으면 다른 한쪽엔 강호동양학(江湖東洋學)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조선 강호파의 양대 과목은 사주·풍수였다. 황당한 잡술로 취급받던 풍수도 1988년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부임하며 인식이 바뀌었다. 사주만 아직 불법체류자 신세였다는 것이다.


술수학 중 사주가 마지막으로 제도권의 실험에 나섰지만 재야의 기인들에 의해 전승되다 보니 아직 정설이 없다. 개설 초기 수업시간이 자칭 ‘강호제현(江湖諸賢)’들의 한 맺힌 토론시간으로 흐르자 교수도 통제가 어려워졌다. 동방대는 이 때문에 3년 전부터 박사논문을 쓰기 전 국내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2편 이상 실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고전에 근거해 토론을 진행시키기 위한 묘안이었다.


관건은 ‘미래예측학과’란 명칭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예측이 들어맞느냐다. 최창조 전 교수도 한 인터뷰에서 “가까운 미래를 맞힌다고 해도 잘해봤자 70%를 넘기 어렵다. 한국의 자생풍수는 기복(祈福), 발복(發福)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신이나 사이비과학을 믿는 사람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란 용어가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불안해지고 스트레스가 올라가는데, 이 때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 미신에 의지하게 되는 심리현상이다. KAIST 이찬진(경영학) 교수는 “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일종의 환상이지만 마음에 위로를 준다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주역팔괘도. 역학에서 자연계와 인간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호체계다.

술수학의 근거는 사서삼경의 하나인 『주역(周易)』이다. 주역의 기원은 멀리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복희씨 때 황허(黃河)에 용마가 지고 나왔다는 하도(河圖)와 거북이 등의 무늬였던 낙서(洛書)를 읽었던 연원으로, 태극에서 출발한 이진법의 음양론은 사상(四象)이 되고, 다시 팔괘(八卦)가 되고, 팔괘가 두 번 겹쳐져 64괘를 낳는다. <그래픽>


64괘는 우주 만물, 즉 자연의 이치이면서 동시에 인간 만사의 이치라서 곧 ‘감정학(感情學)’이기도 하다. 인간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64괘로 상징화해 그 괘를 읽으면서 자기의 감정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람은 왜 점을 치려고 할까. 국내 최초로 사서삼경을 완역한 주역의 권위자 성균관대 이기동(유학) 교수는 “점(占)이라는 뜻은 주역의 괘를 뽑는 것인데 재미로 뽑는 게 아니고 다급하게 묻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을 집중시켜 묻는 사람은 알고자 하는 사람이다. 묻는 사람은 배우게 돼 있다. 다급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은 물어서 그 위험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를 배운다는 것이다. 술수학 제도권 진입의 성패는 점의 확률에 있는 게 아니라 이치에 대한 배움에 있다는 것이다. 재야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88)옹은 한 인터뷰에서 “주역의 역(易)은 ‘바뀔 역’이면서 ‘쉬울 이’인 것처럼 신비주의로 접근하면 안 되고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의 이치를 궁구해 지식에 이름) 공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역은 길(吉)할 때는 과단성 있게 나아가고, 흉(凶)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이치로만 알려준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모든 것은 변(易)하게끔 돼 있다. 내가 처해 있는 이 상황을 만든 것도,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도 다 자연만물, 우주의 이치와 조금의 차이도 없이 필연적으로 움직인다. 그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유연하게 변하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주역이 ‘자기를 돌보는 학문’(爲己之學)인 유학의 경전이 된 이유다.


동방대 김만태 교수는 “일방적으로 맞히기 급급한 점이 아니라 피상담자와 이치에 근거해 소통하는 인생 상담학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동방대에서 주역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오상민 변호사는 “상담이란 면에서 동종직종이란 인식이 있어 변호사들도 요즘 술수학에 관심이 많지만 미래를 단언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위험하고 직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래학의 대가인 미국 하와이대 짐 데이터 교수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오히려 미래 시나리오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낫다”는 명언과 상통하는 지적이다.


이원진?국민대 문화교차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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