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거 … 20세기 아이콘 가구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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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32면

저자: 조 스즈키 역자: 전선영 출판사: 디자인하우스 가격: 1만6000원

한때 드라마 속 인테리어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 조명이 있다. 스타일리시하고 재력 있는 독신남의 방이면 어김없이 놓여 있어서 소위 ‘실장님 조명’이라고 불렸던 제품이다. 낚싯대처럼 휘어진 스탠드 끝에 반구 형태의 램프가 달려 있는 이 조명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명 회사 플로스가 1962년도에 만든 ‘아르코 램프’다. 네모난 대리석 받침대에 높이 2m가 넘는 아치와 광원을 조합해서 천장에 구멍을 뚫지 않고 늘어뜨릴 수 있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대담하고 진보적인 디자인 덕분에 대한민국 드라마 속 단골 캐릭터인 ‘실장님’의 모던한 분위기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집은 곧 그 사람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보다 철저히 자신이 즐기기 위한 ‘취향’이 절대적으로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취향은 어지간해선 잘 변하지 않는, 그 사람의 ‘진짜 취향’이다. 철 따라 유행 따라 바뀌는 옷·가방·구두와는 달리 집 안의 가구를 수시로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다.『명품 가구의 비밀』의 저자 조 스즈키가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이 취향에 관한 이야기다. 1cm의 비밀이 숨어 있는 진짜 명작과 유명 브랜드의 값만 비싼 럭셔리 제품을 구분할 줄 아는 취향을 가지려면 적어도 이런 비밀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세계적인 금융기관 리먼 브라더스에서 일했던 조 스즈키는 2003년부터 인테리어의 매력에 빠져 저명한 해외 디자이너와 경영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만의 명작 가구 리스트를 만들었다.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미술공예운동을 일으킨 윌리엄 모리스가 1864년에 제작한 벽지부터 대중들에겐 아직 생소한 디자이너 듀오 에드워드 바버, 제이 오스거비가 2011년 만든 팁톤 체어까지 26개의 명작 가구와 조명이 300페이지 분량의 책에 빼곡히 나열돼 있다. 그중에는 찰스 & 레이 임스의 ‘LCW(1946)’, 마르셀 브로이어의 ‘S32(1929)’, 한스 베그너의 ‘Y(1949)’, 아르네 야곱센의 ‘에그(1968)’ 등 저절로 ‘아, 이거!’라는 감탄사가 나올 만한 20세기 아이콘 의자들이 포함돼 있다. 론 아라드의 ‘더 빅 이지(1989)’나 파트리시아 오르키올라의 ‘카보슈(2006)’, 마르셀 반더스의 ‘부티크 소파(2005)’처럼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현대 디자인의 걸작들도 있다.


디자인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모두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제품들인데, 조 스즈키의 리스트가 타셴 출판사의『1000 체어스』와 다른 건 역시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제품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이야기)’ 때문이다. 한때는 파리의 길거리를 가득 채웠지만 어느 순간 잊혀져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까지 갔던 ‘A’ 체어가 복각된 이야기, 그저 세 장짜리 전등갓으로 만든 램프인줄만 알았는데 고대의 황금비율을 갖고 있는 ‘PH 램프’, 미 해군의 주문으로 생산된 잠수함용 의자 ‘1006 네이비’….


그중에서도 특히 따뜻하게 읽히는 대목은 디자이너의 열정을 이해해주고 격려해준 가구회사 경영진들의 이야기다. 너무나 유명해져서 가격을 올릴 법도 한데 ?소시민들을 위한 제품?이라는 콘셉트를 여전히 지켜나가는, 1년에 20개 밖에 안 팔려도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끝까지 생산을 고집해온 무대 뒤 사람들의 진짜 비밀 이야기가 편안한 의자에 몸을 맡겼을 때처럼 체온을 덥힌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일본 문화를 동경해 수시로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반열에 오른 일본 디자이너를 거론할 때는 살짝 질투도 나지만 그 역시 저자의 열정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취향이란 뭘까. 책에서 가구 디자이너인 에드워드 바버와 제이 오스거비는 이런 말을 했다. “새로운 사랑을 할 때 옛날 여자 친구 따윈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 좋아했던 여자를 죽 늘어놓고 보면 어딘가 공통점이 있다. 스타일(취향)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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