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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보 위기에 ‘초당적 대처 선언’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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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의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에 북한이 공단 폐쇄, 군사통제구역 선포를 함으로써 안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측은 한국의 대통령을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비하하면서 지금 상황을 “조선반도를 전쟁의 최극단으로 몰아가는 선전포고”로 규정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쯤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호기를 부리던 북한이 이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그만큼 한국의 조치가 아프고 의표를 찔렀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국민 안전 보호
박 대통령·여야 리더 한자리 모여야
북 공격 대비하고 남남갈등 예방을

 이런 때일수록 거칠고 충동적인 데다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엄중한 안보비상 시기엔 정치권도 나서야 한다. 선거의 계절에 정치가 권력을 추구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준전시를 방불케 하는 안보 위기에는 정치권도 초당적 단합을 추구해야 한다. 외부 공격은 자기를 지지하는 국민과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가리지 않는다. 누가 집권하건 국가·국민의 영속성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정치의 존재 이유가 위협받으면 정치권은 공동의 격퇴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치권이 초당적 대처는커녕 정파적 계산에 골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유감스럽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어제 “통일대박을 외치던 박근혜 정부의 갑작스러운 (공단가동 중지) 조치는 (김정은 정권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획책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이 김정은과 기획불안을 조성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걸린 어떤 군소정당의 “새누리당과 조선노동당이 여권연대를 하고 있다”는 현수막의 인식 수준이다.

 일부 여권 지도자들의 비뚤어진 인식도 문제다. 새누리당의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개성공단 폐쇄에 야당은 아프겠지만 햇볕정책은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분별없는 편협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야당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여 한목소리로 정치권 대응을 유도해야 할 집권세력 실세라는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 특별한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 더민주의 김종인 대표, 국민의당의 안철수·천정배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안보위기 초당적 대처 선언’을 하길 제안한다. 선거에서 견고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도 중요하고 북의 핵·미사일 실험에서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북한의 도발의지를 꺾는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행동으로 남남분열이 초래될 경우 추가 도발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도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①김정은의 오판과 도발에 결연히 대응할 것을 경고하고 ②한반도 긴장의 책임이 남북 비핵화 합의를 어긴 북한 정권에 있음을 분명히 하며 ③정치권이 안보 문제를 선거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기초적인 합의를 하길 기대한다. 이런 초당적 선언은 북한의 추가 도발의지를 무력화하고 국민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야 지도자들이 대승적 시야로 자기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를 이번에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