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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은 경제 양극화 해법 내놓는 당이 승리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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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종근 기자 중앙일보 비주얼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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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장년층에서 아주 높고 젊은 층에선 극히 낮은데 내년 대선에서 이 구도가 유지되긴 힘들다”며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얻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전망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다. 지역주의와 독과점식 거대 양당제, 포퓰리즘 공천 등 우리 정치 전반의 문제점들을 깊이 있게 짚어왔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정치학자 20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한국정치학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정치의 계절에 강 교수를 만나 바람직한 정치개혁의 방향을 들어봤다.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한국정치학회장 취임한 강원택 서울대 교수

-정치학회를 끌고 나갈 계획을 듣고 싶다.

“요즘 정치를 바라보는 정치학자들의 자괴감이 크다. 민주화 이후 긍정적으로 바뀐 것도 많지만 이제는 정치가 정체돼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987년 체제의 극복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직선제를 빼면 63년 헌법과 유사한 옛날 체제다. 당시엔 지도자가 이끌고 국민은 따라가면 됐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시민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집 앞에 쌓인 눈을 안 치워 지자체로부터 벌금을 받았다. 우리 같으면 주민이 먼저 구청에 전화해 왜 눈을 안 치우느냐고 따졌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보여줬듯이 이젠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시민의 책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통일 이후를 생각해도 시민성 확립은 중요하다. 남쪽 사람들이 충분한 시민의식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 동포를 공동체 일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나. 그래서 학회장으로 추진하려는 사업의 하나가 시민교육이다. 개인의 권리와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에 대해 표준화된 모델을 만들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하려 한다. 지난해 중앙일보에서 ‘이제는 시민이다’는 어젠다를 제시한 것과 비슷한 문제의식이다.”

-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정치만큼 욕을 먹는 영역은 없다. 그 이유는 뭘까.

“경쟁이 사라진 카르텔 정당구조 때문이다. 새누리·더불어민주당이 높은 담을 쌓아 다른 정당들이 국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장 지역으로 내려가면 경쟁의 의미가 없어진다. 소선거구제의 한계다. 그렇다고 중선거구로 바꾸면 파벌·금권 정치를 낳을 수 있다. 현재로선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최선이다. 한데 의원들이 스스로 지역구를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지역구는 유지한 가운데 비례대표를 늘릴 수밖에 없다. 세비는 동결하고 숫자만 늘리면 된다.”

- 지난해 국회의원을 늘리자는 얘기가 공론화됐지만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런 반(反)정치·정당적 정서가 기존 정당의 기득권을 오히려 공고히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요즘은 세미나에서 의원 수를 늘리자고 하면 수긍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 국민이 정치 욕은 많이 하지만 투표율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아주 거친 형태의 변화가 올 수도 있다. 투표율 하락 현상은 선거법과 관련이 크다. 지금의 선거법은 일제시대에 제정된 법을 기초로 58년에 만들어진 법이 토대다. 당시 자유당과 민주당이 진보당 조봉암 세력이 총선에 못 나오게 하려는 의도에서 담합해 만든 법이다. 이 선거법이 5·16 이후 더 악화됐고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 법으로는 미국처럼 차 범퍼에 특정 후보 지지 스티커를 붙이거나 후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렇게 규제가 심한 선거법은 현역 의원에게만 유리하다. 그러니 선거가 재미없는 것이다. 선거 비용만 빼고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선거는 축제가 돼야 하는데, 지금 선거법으론 유권자는 구경밖에 할 수 없다.”

- 지역주의도 정치 불신의 원인 아닌가.

“30년이 지나도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다. 지역주의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선거구제란 제도를 통해 강요된 산물이란 거다. 호남에서 왜 더민주 거부 움직임이 생겼겠나. 이젠 지역주의에 신물이 난 것이다. 사실 요즘은 출신보다 거주지가 중요하다. 서울에서 큰 젊은이는 아버지가 호남 출신이어도 호남 정체성이 없다. 이런 현상은 세대가 바뀔수록 심화될 거다. 이젠 피부에 와 닿는 지역감정은 없다. 다만 선거제도가 지역주의 구도를 유지시키고 있을 뿐이다.”

- 그래서 국민의당이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고 나섰는데 정작 호남에 매달리는 딜레마를 드러냈다.

“녹색당·노동당 하면 당명만 보고 뭘 하려는 정당인지 안다. 국민의당은 그게 없다. 추구하는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 호남 사람이 필요하긴 하지만 먼저 당의 가치에 맞는 사람들을 데려와 정체성부터 보여줘야 한다.”

- 국민의당을 비롯해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뭘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격차다. 경제적 격차, 즉 양극화가 가장 심각하다. 수도권·지방의 격차나 부의 분배를 둘러싼 세대 간의 격차도 크다. 이런 걸 해소하는 게 정당들의 최우선 과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워 반향을 얻었듯이 삶의 질 개선도 중요한 문제다.”

-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국민공천제’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 드리겠다’는 취지라는데, 국민이 언제 공천권을 달라고 했나. 정당에서 중요한 건 당원과 지지자다. 이들을 배제하고 국민공천, 즉 여론조사로 공천하면 당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당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의 후보를 뽑을 수 있는 모순이 생긴다. 또 여론조사는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반면 신인은 불리하다. 그래서 나는 지구당부터 살려야 한다고 본다. 현역 의원에겐 의원 사무실이 주어지는데, 경쟁자들을 위한 지구당은 없앴다. 현역의 기득권을 차곡차곡 쌓아온 게 오늘날 한국 정치다. 국민공천제에 앞서 이런 구조부터 깨야 한다.”

- 정당은 기율이 중요하다지만 우리는 당 지도부가 너무 강해 의원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여야가 쟁점 법안과 비쟁점 법안을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 탓에 그런 문제가 생긴다. 쟁점 법안에 대해선 당의 기율이 필요하지만 기율을 지키지 않은 의원에게 가혹한 징벌을 내리는 건 지양해야 한다. 영국도 정당 기율이 강하지만 당원의 자율적 선택도 존중한다.”

- 지난해 서울대에서 한국정치론을 강의하면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초청했다.

“‘산학협동’ 차원에서 학생들의 뜻을 물은 끝에 초청한 것이다. 김 대표는 수업에 오기 직전까지 긴장하는 모습이었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사정이 있다면서 오지 않아 아쉬웠다.”

- 요즘 우리 정치는 야당이 워낙 지리멸렬해 자민당이 독주하는 일본처럼 1.5당제가 될 거란 우려가 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보수 사회다. 또 현 정당 체제의 뿌리인 90년 3당 합당 결과 현재의 여당이 모든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그 구도를 깬 경우는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이 집권한 97년 대선과, 열린우리당이 승리한 2004년 총선 외에는 없다. 급격한 정당 재편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국회에서 보수 정당의 우위는 계속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대통령제라 일본처럼 대권에서도 여당이 우위를 독점한다고 볼 순 없다. 보수의 아이콘인 박근혜 대통령조차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 그래도 새누리당은 4·13 총선에서 180석을 얻을 것이라고 큰소리친다.

“과반은 차지하겠지만 180석까지는 얻기 힘들 것이다. 국민의 견제의식과 지역구도 때문이다.”

- 박 대통령이 지지율 40% 선을 유지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 레임덕 기간은 짧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다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역·세대 간 격차가 너무 크다. 젊은 층 지지율은 현저히 낮은 반면 60대 이상은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노무현·이명박 정권에선 이런 지지가 없었다. 박정희 세대를 경험한 사람들의 동류의식이자 정체성 탓 아닌가 한다. 60대 이상이 품어온 ‘좋았던 옛 시절’의 추억이 박근혜란 존재에 의해 되살아난 것이다. 굉장히 특이한 경우로 앞으로는 이런 대통령이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 임기 말까지 대통령에게 그런 지지가 이어질 것인가.

“총선이 지나면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언론의 조명을 받고 대통령 동정의 비중은 작아질 것이다.”

-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 눈치를 많이 보는데.

“우리 국정 체제는 청와대와 집권당이 협력해야 하는 구조다. 당이 여론을 반영해 의견을 내놓으면 청와대는 협의를 거쳐 정책에 이를 녹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당정 협의는 청와대 주도의 일방적 구도다.”

-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 평가하나.

“운동권 정당 이미지를 깨겠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인상을 준다. 새로운 집권 대안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격차 해소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경제적 격차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이 해법을 어느 정당에서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다. 세대 변화도 큰 이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대 이상에서 급증하나 젊은 층에선 극히 낮다. 내년 대선에서 이런 구도가 유지되기는 힘들다. 세대를 아울러 공감받을 후보가 필요하다.”

- 중앙일보 국회의원 이념평가에 참여해왔다.

“참신한 아이디어여서 기획이 시작된 2002년부터 쭉 함께해 왔다. 평가를 해보니 일반 국민 간의 이념 차이보다 의원 간의 이념 차이가 더 크더라. 정치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는 대신 오히려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문제다.”

- 지난해 중앙일보가 기획한 ‘북·중 국경 1400㎞ 답사 평화 오디세이’에도 참여했다.

“보람 있었다. 워낙 훌륭한 분들이 많이 참여했다. 북한·통일에 대해 이념적 입장이 달랐던 사람들이 접점을 찾는 과정이 좋았다. 그 성과가 많이 파급되면 좋겠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별세하며 재평가가 이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학자로서 그런 재평가를 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옮겨가는 전환기를 잘 관리했다. 당시는 박정희나 이승만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보다 ‘물태우’가 필요했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너무 가혹했던 측면이 있다. 균형 있게 각 대통령의 역할을 평가하는 게 학자로서 중요한 과제다.”

- 야권은 툭하면 분열하는데 여당은 90년 이래 당명만 바뀐 채 유지돼왔다.

“보수는 가진 게 많다. 이걸 지키려고 분열을 피하게 된다. 하지만 보수가 진정으로 권력을 지키려면 시대적 변화를 선점해야 한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내건 경제민주화는 변화를 선점한 예로 볼 수 있지만 집권 뒤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진실성을 잃었다. 내년 대선에서도 보수가 이길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박종근 기자

강원택은 …

▶1961년생 ▶서울대 졸업, 런던정경대 정치학 박사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정당학회장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