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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검찰, 이태원·삼례 살인 재조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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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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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90년대 후반에 발생한 두 개의 강력사건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과 ‘삼례 3인조 강도사건’.

강력사건 졸속 처리 잇따라 드러나
검찰 수사 시스템 점검 계기 돼야
모든 법 절차 동원해 사실 밝혀야
공익 대표자로서 책임 의식 필요

 이태원 살인사건은 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당시 대학생이던 조모씨가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수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잠자던 가게 주인을 질식사시키고 현금과 패물 등을 털어 달아난 게 삼례 3인조 강도사건이다.

 사건의 내용 자체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단순히 흥미거리만은 아니다. 검찰이 진범이 아닌 자를 잘못 기소해 억울한 죄인을 만들고, 피해자 유족들에게 피눈물 나는 고통을 준 것 아닌가. 국민들은 신속하게 처벌받아야 할 진범을 놓쳐 일사부재리 원칙 또는 공소시효 때문에 아예 처벌을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이태원 사건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패터슨과 리를 공범으로 함께 기소했어야 했다. 당시 검사가 리만을 범인으로 판단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는 피해자를 따라 들어온 패터슨과 리만 있었고, 패터슨과 리는 경찰 수사 때부터 상대방이 범인이고 자기는 목격자라고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상황이었다. 공범 간에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증거 원칙상 범인이 범행을 부인하더라도 공범의 진술만으로 유죄 판결을 할 수 있어 두 피고인이 동일한 법정에서 치열하게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다투었다면 대법원도 쉽사리 무죄 판단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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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의 몸에 묻은 핏자국도 공범일 가능성을 말해준다. 칼에 찔린 피해자에게서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가해자의 몸에 피가 튀어 묻게 된다. 패터슨은 양손을 포함한 온몸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고 리의 상의에도 스프레이로 뿌린 듯한 물방울 모양의 피가 소량 묻어 있었다. 여기에서 리는 직접 찌르지는 않았더라도 피해자와 가까운 거리에 패터슨과 함께 있으면서 범행에 개입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리는 이미 무죄 판결이 확정되어 처벌할 길은 없어져 버렸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검찰이 2차로 패터슨을 기소하면서 처음에는 패터슨과 리를 공범으로 기소했다가 공판 진행 중에 패터슨 단독 범행으로 공소장을 변경한 점이다. 검찰이 오랫동안 수사하고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을 실망시켰다. 이제라도 항소심에서 리를 공범으로 하는 공소장 변경을 다시 할 것을 권고한다. 리에 대한 처벌 가능성은 없어졌지만 역사적 사건으로서 그 진상을 명백히 하는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삼례 3인조 강도사건은 당시 상황만으로 볼 때 검찰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근에 한 재심 청구의 이유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주장 외에도, 당시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한 자백은 수사경찰들의 강압 때문이었으므로 그러한 자백을 증거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로 인정돼 자백이 증거로 못 쓰이게 되면 진범의 존재 가능성과 함께 재심 절차에서 무죄를 다투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이 확정돼 집행까지 마친 적지 않은 사건들이 가혹행위를 이유로 재심 절차에서 무죄로 바뀐 사례가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이 편견 없는 적극적 재수사를 벌여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기 바란다.

 국민이 검찰에 거는 기대는 성실히 진상을 파악해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는 검찰의 사법서비스 정신이다.

 수사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가 잘못된 시스템의 결과라면 이는 반드시 고쳐나가야 한다. 검찰은 전국의 조직이 상명하복의 구조로 한 몸으로 뭉쳐 검사 동일체로 움직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검사가 1인의 책임 아래 사건을 결정하는 단독 관청의 결합체다. 그러므로 한 명의 검사가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에는 그 잘못을 시정하기 어렵다. 사건의 중요도에 따라 부장·차장·검사장 등의 결재를 통해 그 잘못을 시정할 기회는 있으나 하루에도 수백 건씩 결재하는 상사의 입장에서 일일이 그 오류를 체크하기는 어렵고 충분하지도 않다. 법원에서는 살인사건 등 중요한 사건은 1심에서도 판사 1인이 아닌 3인제의 합의부 재판제도를 운영하고, 2심과 3심은 당연히 합의제다. 1인이 결정하는 시스템보다 3인이 하는 것이 훨씬 오류가 적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검찰제도는 가혹한 고문 등으로 악명이 높았던 중세 이전의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개혁의 산물이다. 검사가 서 있을 자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검사에게 부여된 경찰 수사지휘권, 수사권, 독점적 기소권, 형 집행 지휘권 등을 적절히 행사해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광범위하고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검찰은 국가를 대리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그 책임이 막중하다. 특정한 사건의 처리 잘못으로 사법정의가 허물어졌다고 판단될 때 국민의 비판이 검찰에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검찰의 숙명이다.

김영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