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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북핵 위기와 소방차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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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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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위기란 늘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를 냉엄하게 묻는 시간이다. 네 번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북핵 위기 속에서 결국 정부는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의와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마지막 제재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가 강력 제재로 기우는 동안 정치의 다른 축인 국회는 소방차 국회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연출하고 있다.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큰 불길이 번지자 수년째 북한 인권법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던 여야는 급히 외교·국방 상임위를 열었다. 지역구에서 서둘러 올라온 의원들은 TV 카메라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관계 장관들에게 사태의 전후를 따져 묻는다. 이어 본회의는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다. 하지만 국회의 시계는 여기서 멈춰 선다.

 큰불이 난 후에야 비로소 행정부의 책임을 짐짓 준엄하게 따져 묻는 소방차 국회로서 국회의 역할은 충분한가? 국회는 왜 진작부터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관한 우리 안의 분열을 좁히지 못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여야는 사드 배치에 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이 수천 ㎞를 날아가는 동안 북한 미사일 체계의 진화를 막을 대책을, 그것이 제재이든 대화이든 대응능력 개발이든, 진작부터 외교안보팀에 준엄하게 따졌어야 하지 않는가?

 외교안보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몫이 아닌가라고 되물을 일이 아니다. 이미 2004년 이라크 파병 논쟁과 국회 동의안 처리의 파란 속에서 드러났듯이,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논란 속에서 보였듯이 외교안보가 청와대만의 고민거리이던 시대는 이미 한참 지났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외교안보를 이끄는 엔진이지만 민주화 이후의 외교안보는 국회 의사당에서, 시청 앞 광장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상에서 함께 풀어가야 하는 공동 영역으로 진작 바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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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안보정책이 행정부·국회·시민들의 공동 영역이라면 국회는 불이 난 후에야 달려가는 소방차 역할에 머무를 수 없다. 국회는 미리미리 길목을 지키고 서서 일이 터지는 것을 예방하고 뭔가 미심쩍으면 세밀하게 캐묻기도 하는 국민의 순찰차가 돼야 한다. 의원들은 물론 예산·인력·정보 부족을 탓하겠지만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다. 민주화 이후 국회의 권한·예산·인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해 왔지만 여전히 의원들을 압도하는 관심사는 정책이 아니라 재선과 당내 권력 추구이기 때문이다.

 정치학 교과서에 따르자면 각계의 인재들이 의원이 되고자 하는 데 세 가지 동기-권력 추구(reelection), 정책을 통한 세상의 변화, 명예 혹은 봉사정신-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의원들의 모든 노력과 시간은 권력 추구에 맞춰져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수렴한다고 해서 재선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인권법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조정해 천신만고 끝에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킨다고 해서 역사책에 길이 남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정책에 관해서는 그저 커다란 불길이 치솟았을 때 잠시 행정부를 질책하고 이를 유권자들에게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것이 소방차 국회다.

 결국 시민들만이 소방차 국회를 바꿀 수 있다. 올 4월 총선에서 그동안 정책과 입법에 노력한 의원들을 더 많이 당선시키고, 당내 권력 추구와 선거운동에만 몰두해온 의원들을 더 많이 낙선시킬 때 유권자들은 의원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시민들이 정책과 입법 중심으로 국회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대표자들이 여의도에서 어떤 법안을 얼마나 만들어 냈으며 행정부의 나라 살림을 어떻게 감독해 왔는지를 세밀하게 살필 객관적 정보와 시간이 시민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들의 병역·납세 등의 기록을 공개하게 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누가 입법-정책형 후보이고 누가 권력 추구형 후보인지를 판별하기 어렵다. 지난 4년간 의원들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살피고 모니터링 해 온 것은 국회에 상주하는 수백 명의 언론과 비정부기구(NGO)들이다. 이들이 나서서 300명 의원의 입법 실적, 행정부 감독실적, 예·결산 감독실적 등의 정보를 세밀하게 제공해야 한다.

 다시 북핵 위기로 돌아가보면 밖으로부터 오는 위기는 단지 절반의 위기일 뿐이다. 굳이 19세기 말~20세기 초 우리가 걸어온 힘겨운 역사를 되새길 것도 없이 우리의 정치가 책임 떠넘기기, 작은 권력 지키기에 몰두할 때 밖으로부터의 위협은 불현듯 현실이 된다. 우리가 새로운 20대 국회에서 소방차 국회를 넘어설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안으로부터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안으로부터 견고해질 때에 우리는 밖에서 오는 위기를 잠재울 수 있다.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