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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시사 TONG역기] ‘이태원 살인사건’이 뭐길래

TONG

입력

요즘 ‘이태원 살인사건’이 뉴스에 많이 나오죠? 이 사건이 발생한 게 19년 전이니 아마 무슨 일인지 모르는 독자들이 많을 거예요.

TONG역 전, 사건 개요

서울중앙지검에 사건현장을 재현해놓은 범행현장 모형 [사진=중앙포토]

서울중앙지검에 사건현장을 재현해놓은 범행현장 모형 [사진=중앙포토]

1997년 4월3일 밤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진 살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 있던 유력한 용의자 아서 존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는 모두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의 증언도 있었고, 현장에 남은 혈흔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

검찰이 살인 혐의로 기소한 리는 1심과 2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20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정황 증거가 더 구체적이었던 패터슨은 범행 흉기를 갖고 있다가 버린 혐의(증거인멸)로만 기소, 수감됐다가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패터슨은 1999년 8월에 미국으로 떠났고, 검찰은 2002년에 더 이상 기소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2009년 앙화

2009년 앙화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배우 장근석 분은 패터슨 역을 맡아 연기했다. 이 영화로 사건이 재조명되었다. [사진=쇼박스]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만 남기고 끝날 것 같던 이 사건은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재조명됩니다. 검찰은 재수사 끝에 2011년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해 기소했고, 결국 지난해 9월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되어 강제 송환됐습니다.

마침내 지난달 29일, 법원은 패터슨이 피해자 조중필씨를 칼로 찌른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

자, 이제 질문 받을게요.

Q. 19년 전에는 왜 아무도 범인으로 처벌하지 못했나요?
A. 당시 미국 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했어요. 하지만 검찰은 리만 단독 기소했습니다. 초동 수사가 미흡했던 탓에 증거가 충분치 못했고, 결국 대법원에서 에드워드 리에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합니다. 정확하게는 ‘에드워드 리의 단독범행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판결이었어요. 둘 중 하나는 범인이 확실했기에 조 씨의 부모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주해버렸죠.

Q.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안 잡다고요?
A. 물론 유가족이 계속 재수사와 패터슨에 대한 체포를 요구했습니다. 검찰도 2000년과 2002년에 미국에 수사공조를 요청해요. 그러나 2002년 10월에 기소중지를 결정하게 되죠. 사실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를 잡아들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지금도 신원파악이 안되는 해외도피 사범이 5000명이 넘는다고 해요.

Q. 그럼 어떻게 재수사를 시작하게 됐나요?
A. 2009년 9월에 개봉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 내용을 알게 됐고, 여론이 들끓었죠. 2002년까지 패터슨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던 법무부는 공교롭게도 2009년 10월 미법무부와 공조해 패터슨의 소재를 확인하고 범죄인 인도를 청구합니다. 7년간 모르던 걸 영화 개봉 한 달만에 소재를 확인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죠. 이후 2011년에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됩니다.

Q. 죄 짓고 미국으로 도망가도 잡을 수 있는 거였어요?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98년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했답니다. 대한민국 법률을 위반한 범죄인이 외국에 있는 경우 해당 국가에 범죄인 인도, 혹은 긴급인도구속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태원 살인사건' 발생 18년만에 징역 20년이 선고된 사건의 주범 존 패터슨(36) [사진=중앙포토]

Q. 체포 후 한국 법정에 서기까지 4년이나 걸린 이유는 뭐죠?
A. 미국 법원에서는 범죄인 인도를 허가했는데, 패터슨이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는 등 송환을 지연시키려 했어요. 인신호보청원이란, 이유 없이 구금(구치소나 교도소에 가두는 것)됐을 때 인신보호영장을 신청해 구금에서 풀려날 수 있는 걸 말합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인신보호영장을 기각했고, 패터슨은 법원에 항소를 제기하는 등 여러 절차로 계속 시간을 끌었습니다. 끝내 한국으로 송환됐지만요.

Q. 처음 수사와 어떤 점이 달라져서 판결이 달라진 건가요?
A. 첫 수사에서는 검찰이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범행 현장의 혈흔 분석도 명확하지 않았고, SOFA협정의 영향으로 용의자의 친구를 비롯, 관련자를 조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죠. 그렇다고는 해도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17년 전 판결문 기록에 이들이 범행 직후 친구들에게 “우리가 재미로 어떤 친구의 목을 칼로 찔렀다”고 말했던 내용이 남아있거든요. 이번 수사에선 보다 뛰어난 방식의 혈흔 분석을 적용했고, 추가 증언도 확보했어요.

Q. SOFA협정은 또 뭐길래 수사에 방해가 되나요?
A. Status Of Forces Agreement, 즉 주둔군 지위 협정을 말해요. 당시 적용된 SOFA 22조 5항에 따르면 '살인 등 12개 주요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를 경찰 초동수사단계가 아닌 검찰 기소 이후에야 미군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다'고 정의합니다. 패터슨의 경우 아버지가 미군 군무원이라 미군범죄수사대가 수사를 관할했고, 그 때문에 초동 수사가 느슨했다는 의혹이 많았죠. 해당 조항은 2012년에 한미 합의로 기소 전 피의자 신병(구금의 대상이 되는 몸)을 인도받을 수 있게 개정됐지만, 강제력이 없어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Q. 고의적 살인죄가 인정됐는데 패터슨의 형량이 왜 징역 20년밖에 안 되는 거죠?
A. 재판부는 “무기징역형을 선택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범행 당시 패터슨의 나이가 18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법정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그럼 리는 죄가 없는 건가요?
A. 리도 범죄를 공모한 공범이라고 재판부는 인정했어요. 하지만 그에 대해 처벌할 수 없어요. 형사소송법상 어떤 사건에 대해 유죄 또는 무죄의 실체적 판결 또는 면소 판결이 확정된 경우 동일사건으로 다시 기소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원칙이라고 해요.

Q. 그런 나쁜 원칙이 있어요!?
A. 나쁜 원칙이 아니에요. 잘 생각해봅시다. 만약 법원에서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계속 기소가 인정된다면 어떨까요? 피고인은 기소 자체로 계속 고통을 받게 되고, 판결은 그만큼 효력을 잃게 되겠죠. 이 경우, 처음에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탓이지 법적인 원칙의 문제는 아니에요.

Q. 현장에 용의자가 있던 살인사건인데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니, 이래서야 검찰과 법원을 믿을 수…(으윽 판사님 이 질문은 고양이가 썼습니다! 읍, 읍!)
A. 그 얘기는 거기까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로 흐른 세월이 아쉽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게 된 건 잘된 일이에요. 그래도 현재는 패터슨이 항소한 상황이니 더 지켜봐야 알 일 아니겠어요.

글=박성조 기자 park.su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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