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논쟁] YS 묘소 논쟁과 풍수의 존재 이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길흉화복 논하지 않으면 풍수 아니다”

YS 묘역에서 나온 알돌은 ‘봉황포란형’의 완성… 박정희·김대중·김영삼 대통령의 묘소 위치는 국운 융성의 길조

기사 이미지

공중에서 바라본 국립현충원의 전직 대통령 묘역. 전직 대통령의 묘소는 풍수적인 해석이 미묘하게 엇갈리면서 풍수사상 논쟁을 촉발하기도 한다. / 사진·중앙포토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 특히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사람과 관련된 묘소는 풍수적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최근에는 김영삼 대통령 묘역조성 과정에서 나타난 ‘봉황알’과 관련하여 여러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그 논쟁과정이 대단히 치졸하여 국민에게 풍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줄까 심히 우려된다. 아울러 국가상을 당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은 고인의 고요한 영민의 바람이 이러한 가치 없는 논란으로 하여금 엄청난 누를 끼치고 있음을 깊이 반성하며, 필자는 이러한 논쟁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풍수사상의 진정한 목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한 일간지 칼럼에서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이 혈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 근거로는 주자(朱子)의 논리를 인용하여 혈이란 하나가 있을 뿐인데, 현충원의 경우 혈처는 창빈 안씨 자리이므로 나머지는 모두 혈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창빈 안씨 자리가 혈처인지도 의문이지만, 그 넓은 현충원 전체에 풍수적 혈자리가 하나라는 논리는 작은 범주에서 설명한 주자의 논리를 오독(誤讀)한 것이다.

물론 때로는 엄청난 산 전체에서 혈자리가 하나도 없을 수 있고, 단 하나만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현충원에 혈자리가 하나라고 주장한다면, 예를 들어 동구릉 전체에서도 혈은 하나요 서삼릉 전체에서도 혈은 하나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한 논리로 혈이냐 아니냐를 단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논리적인 것이다.

최근 김성수라는 분은 한 월간지를 통해 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제시했다. 자신의 오랜 경험을 통해 ‘용맥(龍脈)의 중앙은 수맥’이라는 교훈을 얻었다면서, YS는 수맥파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YS 묘소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논리의 전부다. 아무리 학설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용맥의 중앙은 수맥이라는 그의 주장이 버젓이 중앙 매체에 실리고 그 주장 하나로 YS 묘소가 부정되는 현실은 정말 참담한 심정이다. 용맥의 중앙인 입수맥(入首脈)과 수맥(水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풍수의 전체상을 보지 못하고 수맥 도구만을 활용하는 이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알돌’과 ‘막돌’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

기사 이미지

지난 11월 26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안장식이 엄수된 가운데 묘역 주변에 조성 과정에서 발견된 봉황알 모양의 돌이 놓여져 있다. / 사진·뉴시스

이번 YS 묘소 조성과 관련해서는 ‘봉황알’이 화제가 되었다. 김두규 교수는 광(壙)을 파다가 돌이 나오면 길지(吉地)가 될 수 없다면서, 흉석(凶石)에 지나지 않는 바위를 ‘봉황알’ 운운하며 세론을 현혹하였다고 말한다. 김성수라는 분도 광을 파다가 돌멩이 몇 개가 나오자 그것을 두고 ‘용의알’이라고 법석을 떨었다고 말한다. 광을 파다가 돌이 나오면 당연히 길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막돌과 알돌은 다르다. 과연 김두규, 김성수 두 분이 풍수경험상 ‘알돌’을 보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알돌은 오색(五色) 혈토에서 나오며 매우 드문 현상으로, 그만큼 귀한 것이다.

동작동 현충원은 풍수상으로 흔히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으로 거론된다. 어떤 땅을 동물의 형상으로 비유하는 것을 풍수이론상 물형론(物形論)이라고 하는데, 일반인에게는 복잡한 풍수논리 대신 비유를 들어 단칼에 제시한다는 장점 때문에 많이 선호된다. 현충원이 있는 동작동의 이름에 이미 ‘봉황’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어, 현충원이 입지할 때부터 이 터가 봉황이 알을 품은 자리라고 얘기되어 왔다.

이번에 나온 봉황알은 언론에서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방송한 측면은 있으나, 풍수적으로 절대 그냥 붙인 말이 아니다. 풍수학자 최창조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도 인용한 <옥수진경(玉髓眞經)>에 보면 “봉황의 형(形)은 구슬 같은 붉은 돌이 있고, 혹 오색 광채가 서려 있고, 혹 닭의 간(肝)처럼 적홍색이다(鳳形有石赤如珠 或如五色光彩舒 或如?肝赤紅色)”라고 하여 봉황형의 알돌을 정확히 제시했다. 그 알돌도 색깔에 따라 껍질이 벗겨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는 “봉황이 알을 일곱 개 낳았다면 그 봉황은 항문 파열로 죽는다”고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으로 희화했다. 코미디 같은 발언일 뿐이다. <옥수진경>을 강의하고 번역작업을 하고 있는 장원기 교수는 이러한 발언에 풍수인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흥분하였는데, 이러한 심정은 많은 풍수학인의 생각일 것이다.

현충원의 풍수와 DJ 묘소의 분석은 등재학술지에 게재되어 있다.(박재희·황영웅, <국립서울현충원의 풍수지리적 고찰>) 필자는 이번 YS 묘소를 풍수적 지형분석에 입각하여 학술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논문에서는 단순히 물 형론이 아니라 다양한 풍수논리로 논증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짧은 시간에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는 복잡한 풍수이론 대신 앞에서 언급한 물형론을 이용한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한 일간지 기자는 대중을 상대로 봉황포란형 운운했다고 ‘뻥풍수’라고 하고, 그것을 김두규 교수는 컬럼 제목으로 사용하여 ‘전형적인 뻥풍수’라고 희화하면서 풍수논쟁을 저질로 만들었다.

YS 묘역에서는 7개의 알돌이 나오고 마지막에 광중을 파면서 2개의 알돌이 더 나왔다. 필자도 묘지 조성에서 알돌을 본 적은 있으나 직경 50㎝가 넘는 알돌을 처음 보았으며, 특히 정확히 광중 속의 알돌 또한 처음 보았다.

길흉화복 제거하면 훌륭한 과학?

기사 이미지

풍수학자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김영삼 대통령의 묘역에서 나온 일곱 개의 바위는 봉황 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사진·중앙포토

물형론적 풍수이론에서는 산의 형상에 따라 반드시 관련 모양의 사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님 형상(僧形)에서는 사리가, 용 형상(龍形)에서는 여의주가, 봉황형(鳳形)에서는 봉황알이 함께 나와야 한다. YS 묘역에서 나온 알돌은 그야말로 풍수고전서에서 언급한 봉황포란형의 완성인 것이다. 흔히 풍수이론에서 동물 및 사물에 비유하는 물형론은 다소 이론이 빈약한 것으로 평가하여 왔는데, 필자도 이번 사례를 통하여 물형론의 신비로움과 정확성에 놀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풍수 논쟁의 귀결점이라고 할 수 있는 풍수의 목표를 생각해보자. 풍수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풍수 조건에 의해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오로지 길흉화복만을 바라고 풍수에 몰입하는 폐해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폐해는 어느 분야에서나 있는 보편적인 사회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폐해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과 아예 풍수에서 길흉화복론을 떼어내어 부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이 점을 일찍이 정통역사학자 이기백 교수는 통렬하게 지적했다. 풍수는 기본적으로 풍수적 조건이 길흉화복을 초래한다는 것이 풍수지리설의 핵심인데, 이러한 길흉화복만을 제거하면 훌륭한 과학이라고 주장한 최창조 교수의 견해를 넌센스라고 비판했다. 그것은 이미 풍수지리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모든 풍수고전에 보면 풍수지리설이 발생한 초기의 단계부터 그 대표적 인물들이 택지에 따르는 길흉화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결코 후대에 가서 진전된 속신(俗信)이 아니라는 것이다.(이기백, <한국 풍수지리설의 기원> 1994)

필자는 풍수의 이러한 길흉화복을 보다 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수의 목표는 황영웅 교수의 표현대로 ‘인간생명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재창조’인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개인이 재창조되어야 한다. 사회구성단위는 개인-가정-사회-국가-인류로 확산된다. 풍수가 지향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성으로, 그것을 통해 인간이 좀더 나은 인간으로 재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성이 풍수에서 말하는 길흉화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풍수의 길흉화복은 본래 인간사회를 보다 바람직하게 만들어가는 숭고한 가치관인 것이다.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올바르게 인격화된 인간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풍수의 길흉화복은 개인적인 길흉화복만이 아니라, 사회적·국가적 길흉화복까지도 포함한다. 오늘날 국가 도시건설 계획에도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풍수적 논리가 반영되었을 때에 그 사회가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이 점이 도시 속에 살고 있는 다수 사람의 사회적 길흉화복론이다.

누가 술사이고 누가 정통인가

기사 이미지

와우(蝸牛) 명당도. 풍수지리에서는 누운 소의 모양이나 소의 배 속 모양을 닮은 땅의 지형을 명당으로 여겼다. / 사진·중앙포토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풍수에서는 가운데 혈을 중심으로 뒷산을 현무 혹은 주산, 앞산을 주작 혹은 안산, 왼쪽 산을 청룡, 오른쪽 산을 백호라고 한다. 혈을 사방에서 보호하는 이러한 4개의 산을 사신사(四神砂)라고 말한다. 이 사신사는 흔히 유교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비유된다. 서울의 사대문 이름도 각각의 사신사 위치에 따라 인의예지를 넣어 흥인, 돈의, 숭례, 홍지(숙정문 외에 홍지문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유교에서는 인의와 예지가 겸비된 인간이라야 신의롭다(信)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信)은 인의예지가 갖추어진 원만한 인간상을 의미한다.

풍수에서도 이러한 이치는 마찬가지다. 인의예지가 갖추어지듯,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사신사가 갖추어지면 그 안의 혈에 있는 인간들은 원만한 신의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풍수에서 지향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인간 재창조이며, 이 점이 바로 길흉론의 핵심이다.

김두규 교수와 최창조 교수는 종종 술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자신들은 술사와 다르다면서 다른 풍수연구자들을 술사라고 업신여기는 표현이 종종 보인다. 과연 그들이 사용하는 술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누가 봐도 별다른 이론 없이 길흉론을 떠드는 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나 있는 것이므로 이 자리에서는 논외로 하자. 혹시 정식 대학교에 몸담고 있지 않으면서 풍수를 얘기하는 자를 말하는 것인가? 그러한 우월의식도 다소 있는 듯하다. 그러나 풍수는 강호의 고수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풍수 관련 글만 쓴다고 풍수는 완성되지 않는다. 장법(葬法)도 알아야 하고 기감(氣感)도 있어야 한다. 필자도 마찬가지이지만 풍수 관련 글을 쓰는 능력은 풍수분야에서 한 부분의 능력이지 전체는 아니다.

혹은 음택이나 양택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을 얘기하는 것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그들도 풍수감정을 다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추측컨대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풍수길흉론을 얘기하는 자들을 총칭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례로 교하가 통일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최창조 교수는 길흉론을 얘기하는 것인가 아닌가? 그는 술사인가 아닌가? <대통령풍수>라는 책을 쓰면서 자신이 누가 대통령 될 것인가를 맞추었다고 자랑하는 김두규 교수는 과연 길흉론을 얘기한 것인가 아닌가? 그는 술사인가 아닌가? 풍수길흉론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논리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필자 또한 술사인가 아닌가?

다시 강조하거니와, 풍수에서 길흉론을 빼버리면 풍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미 김두규 교수나 최창조 교수도 자신들의 책에서 숱하게 길흉론을 얘기하고 있다. 길흉론이 필요 없다면 풍수가 무슨 존재이유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풍수적 길흉론에 대한 깊이 있는 정립과 그와 관련하여 요청되는 진정한 풍수인의 역할과 자세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김두규 교수와 최창조 교수는 자신들의 글도 실제는 길흉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 외형적으로는 길흉론이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자기모순의 결과 결국 최창조 교수의 표현대로 “내 마음이 명당이라고 생각하면 그곳이 명당인 것이다”라고 한다면 풍수라는 학문은 존재할 이유가 없으며, 굳이 풍수를 연구할 필요도 없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흔히 ‘길지’, ‘명당’ 운운하는 것도 결국 길흉론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풍수연구도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현재 학문분류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전국 학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것은 풍수분야가 유일하다. 그만큼 풍수는 학문적 공론의 장이 마련돼 있지 못하다. 차제에 이러한 논쟁을 기회로 하여 보다 활발한 학문적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봉황알 운운하는 것이 싫거나 의심되면 고전적 근거 및 경험에 입각하여 학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그것을 천박한 논리로 희화하여 비판한다면, 그것은 결국 제 발등 찍는 것이며 풍수인 전체를 욕보이는 일이다.

YS 묘역을 조성하고 보니 우리 현대사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대통령과 DJ·YS 묘소는 서로 삼각형의 지점에 있게 되었다. DJ와 YS 묘소 조성을 주관한 황영웅 교수에게 물어보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그들 세 분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공과(功過)가 있을 수 있으나, 박정희 대통령을 중심으로 DJ는 오른쪽 백호맥, YS는 왼쪽 청룡맥에 위치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조성된 YS 묘역에서 봉황알이 출현함으로써, 현충원의 지형으로 얘기되어온 봉황포란형의 완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필자는 방송에서 평가한 바 있다.

특히 라이벌이기도 했던 YS와 DJ는 그 묘소의 성격도 정말로 흥미롭다. 음양론으로 보았을 때에 청룡은 양(陽), 백호는 음(陰)에 비유된다. 실제 두 분의 드러나는 형태도 YS가 드러내기 좋아하는 양의 모습이라면, DJ는 참고 기다리는 음의 모습으로 일생을 살았다. 좀 더 풍수의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 양에 해당하는 청룡에 위치한 YS의 혈자리가 도드라진 돌혈(突穴)이라면, 음에 해당하는 백호에 자리한 DJ의 혈자리는 우묵한 와혈(窩穴)이다. 돌혈이 양이라면 와혈이 음인 것이다. 흔히 풍수에서는 죽어서 영면하는 무덤의 조건은 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라고 말하곤 하는데, 현충원의 YS와 DJ의 묘소가 그렇게 대비되고 있다.

한 분씩 차례로 모시는 과정에서 우연이지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의 위치가 삼각형을 이루게 되었고, 마지막에 묻힌 김영삼 대통령 묘소에서 이 지역의 풍수를 일컫는 봉황포란형의 봉황알들이 출현한 것은 세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의 오랜 갈등을 마감하고 새로운 국운(國運) 융성의 좋은 조짐이라고 필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국민을 상대로 그 정도의 풍수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 발표될 학술논문에서는 보다 논리적인 풍수이론으로 설명되고 해석될 것이다. YS 묘소를 둘러싼 본 해프닝이 학문적 논쟁과 논리를 통하여 새로운 풍수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점이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김기덕 -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사 가운데 주로 고려시대 왕족을 연구하였으며, 이후 오행사상·풍수사상으로 연구범위를 넓혔다. 문학과 문화콘텐츠의 상생적 결합을 의미하는 ‘인문콘텐츠학회’를 결성했고, 회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고려시대 봉작제 연구> <한국전통문화와 문화콘텐츠> 등이 있으며, 풍수 관련 논문도 다수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