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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화끈하게 사과하면 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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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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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그냥 묻어두고 가는 게 능사일까. ‘뒤끝 작렬!’이란 소리를 들을까 봐 많은 사람은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심정으로 상대의 실수에 눈을 감을 때가 잦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오가 공적인 영역이거나 공권력 집행과 관련된 것이라면?

입 닫고 책임 피하는 공직자들
진심 어린 사과는 리더의 언어

17년이 지난 뒤 진범이 나타난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수퍼 살인사건과 19년 만에 다른 결과의 1심 선고가 나온 이태원 살인사건, 아리랑 TV 방석호 전 사장의 가족동반 호화출장 파문을 접하면서 “그냥 화끈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

▶관련 기사“방석호 사장 미 출장 때 법인카드 사적으로 쓰고 허위로 식사비 처리”

1999년 발생한 나라수퍼 사건의 경우 경찰은 엉뚱한 세 명을 ‘삼례 3인조’로 체포해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수사 와중에 제보를 받고 진범을 잡았지만 관할권 다툼 와중에 풀어주는 실수를 범했다. 삼례 3인조는 기소됐고 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억울하다”는 이들의 재심청구도 내쳤지만 최근 진범이 나타났다.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사죄와 함께. 그러나 수사와 재판을 했던 경찰·검찰·법원 중 누구 하나 “실수를 인정한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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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도 그렇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는 “이 문제로 더 이상 전화를 하지 말라”는 말만 했다. ‘채식주의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직 강력부 검사로서의 자부심을 밝혔다. 그러고는 “지방에서 보내는 가족과의 삶이 더 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19년간 고통 속에 살아 왔던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나 유감을 표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관련 기사  "옷의 피가 증거" 패터슨 20년형 선고에 19년 걸렸다 한 끼에 100만원이 넘는 식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던 아리랑TV 전 사장은 기자들 질문에 “내가 대답할 의무가 어디 있느냐”는 호통과 함께 사표를 던지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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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패자의 언어가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는 진정한 리더의 언어다. 하지만 이들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직자로서 져야 할 책임의 무거움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자격을 말할 수 있을까.

서울 용산에 출마하기 위해 새누리당 복당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강용석 전 의원의 사례를 보자. 2010년 강 전 의원의 아나운서 성 비하 발언 사건은 그가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당시 나는 해당 부서장으로 있으면서 언론 보도 전후 시점에 강 전 의원과 통화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그는 기자와 학생들의 탓으로 돌렸다. 만약 그가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관련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의 변명은 거짓말보다 더 나쁘고 추하게 느껴졌다.

『사과의 힘(The Power of Apology)』(베버리 엥겔 지음)은 사과에 필요한 세 가지 ‘R’을 제시하고 있다(※정재승 교수 등이 펴낸 『쿨하게 사과하라』 중 발췌).

먼저 유감(Regret)이다. 사과를 할 때는 상대방에게 불편·고통·피해를 줘 미안하다는 뜻을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 “제가 실수를 해서 피해를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와 같은 표현이다. 다음이 책임(Responsibility)이다. 진정한 사과는 유감에 그치지 않고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제 잘못입니다”와 같은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윤리적·법적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세 번째가 치유와 보상(Remedy)이다. 이미 저지른 잘못은 되돌릴 수 없지만 보상책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다짐의 바탕이다.

우리는 그동안 고위공직자 청문회 등을 통해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와 같은 사과의 언어를 수없이 접해 왔다. 하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는 분노와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공직자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자기 합리화가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듣고 싶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