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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병원 2만4169명, 노후 보장 3배 사학연금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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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대병원의 한 직원은 4일 “소원 성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입사 후 10여 년 동안 학수고대해 온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이하 사학연금) 가입자로 갈아탈 수 있게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다. 3월부터 10년간 보험료를 부으면 사학연금을 받게 된다.

간호사·의료기사·행정직원 ?
사립대병원과 형평성 등 이유
연금법 개정으로 특례 인정
일각선 “선생님 아닌데” 지적
5년간 90억 추가 예산 필요

여기만 그런 게 아니다. 강원대·경북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 등 13개 국립대병원의 임상교수(진료만 하는 교수)와 간호사·의료기사·행정직원 2만4169명이 국민연금에서 사학연금으로 갈아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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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사학연금법이 개정돼 특례가 인정됐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서울 종로구 본원, 분당병원, 보라매병원 소속 직원 1만여 명이 이번 조치의 혜택을 본다.

사학연금은 원칙적으로 사립학교 교직원만 가입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특례 조항이 생기면서 국민연금에서 빠져나가 사학연금으로 갈아타는 게 가능해졌다. 사학연금공단이 2005년 이 대열에 가세했고,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도 가입이 가능해졌다.

현재 국립대학병원 교직원 중 의과대학 교수를 겸직하는 교수는 공무원연금 또는 사학연금 가입자다. 이번에 이들 외 병원 인력이 사학연금으로 옮긴다.

사학연금으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국민연금에 비해 훨씬 많은 노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학연금의 기본 틀은 공무원연금과 같다. 국민연금에서 사학연금이 되면 보험료가 4.5%에서 8%로 올라 부담이 늘어난다. 퇴직금은 민간의 6.5~39% 수준이다.

하지만 노후 연금액이 국민연금에 비해 월등히 많다. 20년 이상 가입자(2014년)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87만원, 사학연금은 254만원이다. 30년 가입자 기준으로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 연금의 비율)이 국민연금은 30%, 사학연금은 51%다.

이 때문에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들이 2007년 국민연금에서 사학연금으로 옮기려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 최동익의원실 박상현 비서관은 “국립대병원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사학연금으로 옮겨도 크게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의료기사·간호사·행정직원 등은 후학 양성과 관계가 없는데도 왜 허용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배준호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학연금 문턱을 이번처럼 낮추면 여기저기에서 사학연금으로 갈아타겠다고 나설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아주 잘못됐다”고 말했다.

사학연금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말 발의됐으며,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두어 달 만인 지난해 12월 31일 전격 통과됐다. 당시 국립대학병원이 신종플루(인플루엔자 A/H1N1)·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 국가 의료재난에서 거점 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어린이병원 같은 수익성이 낮은 분야의 공공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개정 사유였다.

또 사립대병원과 동일하게 대학 부속병원 역할을 하는데도 사학연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정부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의 형평성을 지적해 개선의 필요성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사립대병원과 마찬가지로 국립대병원도 의료 분야에서 교육·연구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번 개정에 따른 사학연금 신규 가입자는 전체 가입자(28만여 명, 2014년)의 8.6%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늘어난다.

배준호 교수는 “이번 조치가 재정에 크게 악영향을 미칠 것인데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넘어갔다”며 “게다가 재정 여건이 가장 좋지 않은 게 사학연금이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공무원연금처럼 ‘정부가 책임져라’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학연금은 2042년 재정이 고갈된다. 국민연금(2060년)보다 18년 이르다. 이번 조치로 향후 5년 동안 정부 예산 90억원이 들어가고 점차 지원액이 증가하게 돼 있다. 퇴직수당의 60%를 국가가 지원하게 돼 있어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천인성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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