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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금감원이 자랑하는 금융상품 비교 사이트…추천 상품 열어보니 일반인 제외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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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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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원스톱 조회로 소비자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지난달 13일 금융감독원은 금융상품 통합 비교공시 사이트를 열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853개 금융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며 사이트 약칭을 ‘금융상품한눈에’로 지었다. 금융상품한눈에는 이날 한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금감원은 “첫날 13만6000명이 접속했다”고 자랑했다.

마침 적금상품을 알아보던 차에 직접 ‘금융상품한눈에’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월 저축 금액 100만원, 기간 12개월, 금융권역 은행’이란 조건을 선택하고 검색 버튼을 클릭했다. 47개 은행 적금 상품이 이자율 순서대로 나왔다. 이자율뿐 아니라 세금을 떼면 이자금액이 얼마인지까지 알려줬다.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선 볼 수 없던 정보였다.

한편으론 금감원의 친절한 안내에 감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맨 위에 오른 상품의 금리에 놀랐다. 경남은행의 ‘희망모아적금’은 연 이자율이 3.0%나 됐다. ‘이런 좋은 적금이 있었다니’라며 경남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런데 홈페이지를 뒤져서 찾아낸 상품설명이 엉뚱했다. 희망모아적금은 기초생활수급자·소년소녀가장·다문화가정·한부모가정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월 저축금액도 30만원이 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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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자율 높은 적금 상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은행 ‘우리스마트폰적금(2.2%)’은 확인 결과 월 50만원까지만 저축할 수 있다. 신한은행 ‘신한 나라사랑적금’(2.0%)은 군 관계자가 아니면 가입할 수 없다. 정기예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5000만원을 예금할 은행상품을 검색할 때 상위권에 나오는 5개 상품 중 2개는 조건과 맞지 않는다.

신한은행 ‘신한스마트정기예금(1.75%)’은 최대 한도가 3000만원, 우리은행 ‘레드몽키 스마트 정기예금(1.7%)’은 2000만원이다. 이런 조건은 각 은행 홈페이지에서 일일이 찾아봐야만 알 수 있다. 금융상품한눈에는 예금액이 100만원이든 10억원이든 똑같은 상품을 똑같은 순서로 보여준다. 상품이 한눈에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혼란만 준다.

이럴 거면 왜 굳이 저축금액을 넣고 검색하라고 했을까. 금감원 담당자는 “금융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를 위해 이자율보다는 이자금액으로 비교하기 쉽게 했다”고 말했다.

가입조건과 한도는 왜 알려주지 않느냐고 묻자 “일부 미끼성 특판 상품을 제외하고는 그런 제한이 없는 줄로 알았다”고 했다. 은행들이 소액에 고금리를 주는 스마트폰 전용 상품을 내놓기 시작한 게 이미 몇 해 전 일이다. 금융지식이 부족한 일반 소비자들 대다수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금융상품한눈에가 오픈한 지 3주가 됐다. 그러나 기자가 지적하기 전까지 금감원은 이런 미비점조차 알지 못했다. 사이트를 열어만 놨지 아무도 사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금융상품한눈에 접속자가 가장 많이 검색한 정보는 정기예금(27.9%)과 적금(27.6%)이었다. 금감원이 사이트 홍보에만 열 올리는 사이에 이미 많은 소비자가 한눈에 안 보이는 금융상품한눈에에 실망했을 거란 뜻이다.

한애란 경제전문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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