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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방치해 6도 올라가면 대멸종, 1.5도 상승에서 막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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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25면

1 탐보라 화산폭발 장면.

네덜란드 화가 헨드릭 아베르캄프(Hendrik Averkamp, 1585~1634)는 주로 네덜란드의 겨울 풍경을 그렸다. 비록 그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하는 농인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을 활기차게 표현했다. 그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는 군중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화폭에 담았다. ‘운하의 겨울 풍경(Winter Scene on Canal)’은 1620년 작품이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잡다하게 등장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다. 아베르캄프는 사실적인 풍경화가였다. 상상으로 그린 게 아니라 추위를 무릅쓰고 현장에 나가서 실제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런데 겨울에 운하 위로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놀이를 하는 풍경을 이제는 네덜란드에서 거의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운하는 이제 꽁꽁 얼지 않으며 배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일도 더 이상은 없다. 17세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다.

‘운하의 겨울 풍경’(헨드릭 아베르캄프 1620년 작)은 17세기 소빙하기의 전형적인 네덜란드 겨울 풍경이다. 운하가 꽁꽁 얼어서 배가 다니지 못한다. 당시 평균 기온은 이전 시대보다 단지 0.2도 낮았을 뿐이다.

17세기엔 0.2도 떨어져 소빙하기17세기 추위는 비단 네덜란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린란드 북동부에서는 빙상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가 해안까지 이동하면서 그나마 사람이 살 수 있던 장소가 사라져 버렸다. 알프스에서도 빙하가 이동하면서 강을 막아 산기슭에서 홍수가 자주 발생했다. 마치 아베르캄프의 그림에 나오는 네덜란드 운하처럼 런던의 템즈 강도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어서 아침마다 강 위에서 시장이 열리곤 했다. 모두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추위가 단지 겨울 풍경만 바꾼 게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눈사태와 홍수가 빈발해지면서 경작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1800년에는 밀 가격이 1500년보다 열 배나 비싸졌다. 또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1641년부터 1838년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대기근이 발생했는데 그 원인은 모두 추위였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어서 『조선왕조실록』은 현종 때의 경신 대기근(1670~71)과 숙종 때의 을병 대기근(1695~96)을 기록하고 있다. 경신 대기근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임진왜란을 겪은 노인들이 “왜란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보통 기근은 지역적으로 발생하는데 두 차례의 대기근은 조선 팔도 전체가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추위와 기근은 혁명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1642~51)이 일어났고, 독일에서는 30년 전쟁(1618~48)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스텐카 라진의 난(1670~71), 중국 명나라의 이자성의 난(1641~44)도 이때의 일이다.


도대체 17세기에는 지구 기온이 얼마나 떨어졌던 것일까? 17세기는 소빙하기였다. 굳이 앞에 소(小)라는 떨어지기도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평균하면 불과 0.2도 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활동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소빙하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한때 태양의 흑점 수가 감소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우세했지만 현재는 흑점 수와 소빙하기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소빙하기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2 탐보라 화산의 위치.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자 이듬해인 1816년에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동부에서 여름이 사라졌다.

탐보라 화산 폭발로 유럽·북미 여름 사라져다시 네덜란드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치도 다르고 재앙의 규모도 다르다. 1815년 4월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였다.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1000㎞ 떨어진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이 과거 1000년을 통틀어 가장 큰 분화를 일으켰다. 폭발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1500㎞ 떨어진 수마트라 섬에서도 대포 소리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해진다. (물론 나는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거대한 폭발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원래 높이 4200m였던 탐보라 산은 폭발로 꼭대기 1400m가 날아갔다. 150㎦의 화산재가 방출되었으며, 탐보라 인근 지역은 순식간에 화산재에 파묻혔다. 당시 숨바와 섬에는 약 1만2000명의 주민이 살았지만 생존자는 단 26명이었다. 화산 폭발에 이은 쓰나미로 인도네시아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화산재는 무역풍을 타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이탈리아와 헝가리에 갈색 눈이 내렸다. 지표면에서 고도 10~50㎞에는 성층권이 있다. 화산재는 성층권까지 이르러 햇빛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탐보라 화산이 폭발한 이듬해인 1816년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에는 ‘여름이 없는 해(Year Without a Summer)’로 기록된다.


정말로 여름이 사라졌다. 런던에서는 8월 31일에 눈이 내렸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내륙 지방에서는 6월 6일부터 3일 동안 15㎝의 눈의 내렸으며 한여름인 7~8월에 얼음이 얼 정도의 추운 날이 며칠씩 계속되었다. 코네티컷의 예일 대학의 기록에 따르면 1816년의 기온은 예년에 비해 평균 13.8도 낮았다.


탐보라 화산폭발의 결과 기후의 변화는 컸지만 다행히 그 영향은 일시적이고 국지적이었다. 1816년에 조선·중국·일본에는 기상이변이나 기근의 기록이 없다.


온난화라는 기후 변화를 겪고 있는 21세기에 굳이 17세기의 소빙하기를 거론한 까닭이 있다. 소빙하기의 기후변화는 규모가 작았지만 인간 활동에 끼친 영향은 심각했다. 소빙하기의 영향을 파악하면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에 어떤 정도의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 따르면, 앞으로 100년 동안 지구 기온이 무려 6도까지 오를 것이라고 한다. 주말의 기온이 금요일보다 6도 높다는 것은 외출할 때 두꺼운 외투는 집에 놔둬도 된다는 의미일 뿐이지만, 지구 평균 기온이 6도 오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7만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엄청난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화산재가 햇빛을 가려서 지구 평균 기온이 6도 떨어지자 지구상의 인류는 거의 절멸할 뻔했다. 전 세계 인구가 4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온도가 6도 떨어지면서 인류가 거의 멸종할 뻔했다면, 온도가 6도 오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5도 오르면 남·북극 빙하 사라져하지만 앞으로 100년 안에 온도가 6도나 오를 것이라는 예측은 과도하다. 그러나 가장 보수적인 학자들조차도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앞으로 100년 동안 온도 상승의 폭이 1.8~3.4도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의 활동은 어떻게 변할까? 지구온난화의 최전선 현장을 추적하고 있는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s)는 『6도의 멸종』에서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온도가 1도 오르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빙이 사라지고, 산 아래 사람들은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며, 세계 각지의 희귀 동식물이 서서히 멸종할 것이다. 온도가 2도 오르면 그린란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해안가에 있던 도시들이 물에 잠기며, 이산화탄소의 절반이 바다에 흡수되면서 석회질로 된 생물들이 죽어간다. 3도 오르면 양의 되먹임 현상으로 온난화는 가속된다. 아마존 우림지대가 거의 붕괴하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이탄(泥炭)층이 불에 탄다. 지구 평균 기온이 4도 오르면 남극 빙하가 완전히 붕괴한다. 시베리아·알래스카·캐나다 북부의 영구동토층이 녹고 메탄하이드레이트에 포획돼 있던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으로 방출된다. 5도 오르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모두 사라지고 정글도 불타 없어진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인다. 6도 오르면 죽은 생물들의 시체에서 발생한 황화수소가 오존층을 파괴해 자외선을 크게 증가시킨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진행된다.


산업 혁명 이후 최근 150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은 0.85도 올랐을 뿐이다. 이 정도 기온 상승은 대멸종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대구에서 키우던 사과를 파주에서 키울 수 있을 정도로 경작의 남북방 한계선이 이동한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온 상승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우리의 손으로 어쩔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그 임계점을 2도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 앞에서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구 온도상승 억제 목표 1.5도 설정과 선진국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환경운동연합]

6도 오르면 오존층 파괴돼 자외선 재앙지구온난화 문제에는 분명히 출구가 있다. 현재의 기온 상승은 자연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활동 결과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인간으로 인해 발생했다면 해결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출구는 넓지 않다. 매일 매일 좁아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행동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인류는 기후 파탄이 명백해진 다음에야 결심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멈춘 다음에도 지난 30년간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지구온난화의 충격은 천천히 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2도라는 임계점까지 감내해서는 소용이 없다. 지구온난화 활동가들은 1.5도에서 막는 방책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빈번히 발생하는 이상 기후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지구는 우리에게 계속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파멸에 이르지 않으려면 우리가 지금 당장 나서야 한다. 1.5도에서 막아야 한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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