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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트럼프, 아이오와 전통 보수층이 등 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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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에 그친 도널드 트럼프는 “2위에 오른 것도 영광”이라며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디모인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가 1일 아이오와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그동안 공화당 대선 경쟁을 이끌어 온 그의 기세가 꺾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론조사 18%P까지 앞서다
뚜껑 열어보니 3%P 차 패배
NYT “경쟁력 허상 드러나”
트럼프 “뉴햄프셔 승리 기대”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트럼프의 승리는 일찌감치 예견된 것처럼 보였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디모인 레지스터-블룸버그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28%의 지지를 얻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5%포인트 차로 앞섰다. CNN-WMUR 여론조사에선 30%로 크루즈를 18%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달랐다. 트럼프는 3.4%포인트 차로 크루즈에게 선두를 내줬다. 미국 언론들조차 예상치 못한 크루즈의 역전을 두고 뒤늦게 각종 분석이 쏟아진다.

우선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바람몰이식 여론전과 대규모 ‘유세쇼’에 집중한 트럼프가 패착을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전통적인 보수층이 다수인 아이오와 공화당원들의 표심이 투표 막판 크루즈와 마코 루비오 쪽으로 대거 유입됐다는 해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이오와의 결과만으로 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지 예상하긴 힘들지만 이번 패배로 트럼프의 본선 경쟁력이 허상(illusion)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부동표 흡수에 실패한 것이 패인이라고도 했다.

NYT는 “트럼프가 마지막 TV토론에 불참한 지난주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고 답한 유권자들이 트럼프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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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P)는 백인과 개신교 신자 등 전통적인 보수층이 많은 아이오와의 지역 특성을 지적했다.

WP는 “출구조사 결과 스스로 ‘매우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40%가 크루즈에게 표를 던졌고 트럼프는 20%의 표밖에 얻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지지 의사를 밝힌 적이 없던 신규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고 여론조사와 달리 루비오의 지지지자들이 대거 코커스에 참여한 것도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폭스뉴스는 “얼굴에 강펀치를 맞기 전까진 누구나 다 계획이 있다”는 전 헤비급 권투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트럼프가 예견했던 것처럼 새로운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나섰지만 불행히도 그가 가리키지 않는 방향으로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아이오와 패인에 대해선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 대개 일치한다. 밑바닥 표심을 훑지 못한 데다 아이오와의 전통적인 보수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좌충우돌’식 보수주의를 못마땅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트럼프가 추락할 것이라고 보는 분석은 아직 많지 않다. 여전히 대중적 지지가 공고한 데다 다음 프라이머리(일반 유권자 참여 경선)가 열리는 뉴햄프셔 여론조사 결과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다.

NYT는 “크루즈의 근소한 승리는 인상적이지 않으며 다음 경선이 예정된 주 가운데 아이오와보다 전통적 보수 유권자가 많은 곳은 없다”며 “본선으로 가는 크루즈의 길은 매우 좁다”고 분석했다.

폭스뉴스도 “크루즈의 승리가 경선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며 지난 몇 번의 공화당 경선에서 아이오와의 승리가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2012, 2008년 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한 릭 샌토럼·마이크 허커비 후보가 모두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점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트럼프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선 결과가 나온 직후 그는 “2위로 경선을 마친 것은 내게 큰 영광”이라며 “(다음 경선이 열리는) 뉴햄프셔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역시 선거 전략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지층을 실제 표로 연결시키기 위해 유권자 접촉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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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방송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가가호호 방문하며 악수하는 후보자를 선호한다”며 “트럼프가 이기고 싶다면 결벽증(유권자 손을 잡길 꺼린다는 의미)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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