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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물들 나이’에 시인 꿈 이룬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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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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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정으로 문학청년의 꿈을 접어야 했던 한상호 대표는 나이 육십에 시인으로 걸음마를 시작했다.

“나이 들면 주책스럽게도 오줌 자주 마렵다는데/ 나이 육십에 에구 남세스러워라/ 뭔가 자꾸 쓰고 싶은 생각…/ 그래도 뭐 어때/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어?”

한상호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

한상호(60)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는 늘그막의 시 생산을 오줌 누는 일에 비유했다. 그는 종합문예지 월간 ‘문학세계’ 2월호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했다.

“남들보다 일찍 가정을 꾸리고,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 한동안 글쓰기는 잊고 살았죠. 젊은 시절에는 읽고 쓰는 게 목숨처럼 소중했지만 눈 질끈 감고 참았습니다. 이제 다시 걸음마를 배웁니다. 인생 이모작 시대라니 시와 함께 이웃과 더불어 행복해진다면 좋겠습니다.”

한 대표는 등단작에서 그 마음을 담아 가족과 동무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피난길 동상 입어/ 푸석해진 발톱을/ 봄 논두렁 다지듯/ 다듬어 드린다(…).”(‘아버지 발톱을 깎으며’ 중에서), “고슬고슬한 추억을/ 우정이란 엿기름으로 뽀얗게 삭혀/ 뭉근한 세월에 잘 저으며 고아/ 물엿과 갱엿 중간 어디쯤에서/ 끈적하게 식혀 놓은(…).”(‘고향 친구’ 중에서)

대학에서 중국어문학을 공부하고 28세에 중국 담당 시장 개척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은 한 대표는 “세상에 거저먹을 떡은 없더라”고 말한다. 30여 년 중국 통으로 숨 가쁘게 살아온 그에게 시는 일종의 환기구였다.

호흡이 길어진 인생에서 뭘 하든 늦었다는 후회는 없다는 그는 시로 말한다.

“세상에/ 이리도 많은/ 두근거림이 있는 줄/ 단풍 물들 나이에야 알았다(…).”(‘난타’ 중에서)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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