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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한류, 다음은 K툰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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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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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툰 캐릭터들. 왼쪽부터 ‘소녀 더 와일즈’ ‘외모지상주의’ ‘치즈 인 더 트랩’ ‘갓 오브 하이스쿨’의 등장인물. [사진 각 업체]

‘웹툰 담당자들께. 이 작품을 최소 주 2회는 올려 주세요(Dear webtoon editors, please upload cheese in the trap at least twice a week)….’

네이버·카카오 79개 웹툰
판권 계약 형태로 해외 수출
중국-공포, 미국-순정물 인기
본고장 일본서도 유료화 성공
“풍부한 컬러+다양한 스토리
미·일 만화 장점 고루 갖춰”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라인웹툰’의 영어판 홈페이지(www.webtoons.com/en)에 올라온 인기 한국 웹툰(이하 K툰) ‘치즈 인 더 트랩’ 최신 화를 본 해외 네티즌 댓글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주 1회씩 최신 화가 소개된다. 사흘간 2200여 명이 ‘위로 올라간 엄지’ 아이콘을 눌러 호응을 표현했다.

이른바 한류(韓流) 콘텐트는 그간 해외에서 K팝이나 K드라마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K툰이 한류 콘텐트의 새 선봉장으로 떠올랐다. 웹툰을 공급하는 기업들이 K툰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라인웹툰은 국내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2014년 7월 해외 만화 매니어들을 겨냥해 연 글로벌 웹툰 플랫폼이다. 기존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인기 작품들을 외국어로 번역해 올린다. 영어(91개)와 중국어(57개), 태국어(48개), 인도네시아어(29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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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또한 라인웹툰과 네이버웹툰을 통해 지난해까지 24개 작품을 2차 저작물 판권 계약 형태로 수출했다. 이들 웹툰이 앞으로 해외에서 출판·영화·드라마 등으로 제작될 것이란 의미다. 주요 수출 지역은 북미·유럽·일본·중국·동남아 등이다.

경쟁사인 카카오도 2014년 1월 ‘다음웹툰’의 ‘늑대처럼 울어라’ 등 5개 작품으로 처음 북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후 플랫폼을 직접 만든 네이버와 달리 허핑턴포스트(미국), 큐큐닷컴(중국) 등 현지에서 검증된 플랫폼들에 콘텐트를 공급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까지 55개의 다음웹툰 작품이 해외에 진출했다.

웹툰 전문 기업들도 해외 시장 문을 활발히 두드리고 있다. 유료 웹툰을 공급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일본에서 ‘레진코믹스’를 시범 운영한 다음 유료화했다.

레진엔터 관계자는 “시범 운영한 3개월간 누적 페이지뷰가 500만 건을 넘어섰다”며 “K툰이 만화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통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미국에도 진출했다.

23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미스터블루는 지난해 말 현지 업체와 중국 진출을 위한 협약(MOU)을 맺었다. 지난해 새로 출범한 국내 첫 웹드라마 전문 제작사 빅프로그도 웹툰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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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나간 K툰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중국에선 ‘0.0mhz’나 ‘기기괴괴’ 같은 공포물이 인기다. 비슷한 문화적 배경에다 독특한 소재가 더해져 현지 독자들이 몰입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에선 판타지물 외에도 ‘창백한 말’ 같은 순정물이 인기다. 순정물이 드문 미국에서 차별성 있는 장르로 다가섰다. 통상 수출이 까다로운 장르라는 코믹물도 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스테디 셀러인 조석 작가의 코믹물 ‘마음의 소리’는 현재 라인웹툰 누적 조회 수만 50억 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K툰이 형식과 내용 모두 수출 경쟁력을 갖췄다고 분석한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는 “미국식 컬러 만화와 일본식 스토리 만화의 강점이 결합된 게 K툰”이라며 “장편 서사에 능한 데다 색채감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볼 수 있고,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위아래 스크롤만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K툰이 가진 형식상의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스파이더맨’처럼 히어로물 일변도인 서양 만화에 비해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것도 K툰의 강점이다.

K툰을 공급하는 기업들의 체계화된 지원도 큰 힘이다. 네이버는 스크롤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독자들의 구미에 맞도록 스마트폰 화면에서 터치 한 번에 다음 장면을 볼 수 있게 했다.

카카오와 레진엔터도 해외 독자들이 모바일 환경에서 K툰을 즐길 수 있도록 포맷을 최적화했다. 번역에도 공을 들인다. 전문 번역자들이 2~3차례 감수해 보다 자연스럽게 번역된 작품을 올린다.

라인웹툰 관계자는 “과거 한국 웹툰은 일부 출판사를 중심으로 전문가 집단의 식견에 따라 수출 여부가 결정되는 소극적 시장이었다”며 “지금은 기업들이 실시간 전 세계 소비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K툰을 수출하고 있어 (K툰이) 한층 성장성 있는 상품으로 커갈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과제도 있다. K툰이 인기를 끌자 정식 서비스 제공 전에 해외에서 해적판이 기승을 부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비전문가에 의해 부실하게 번역되는 경우가 잦아 상품성 훼손이 우려된다.

정부가 나서 해외 저작권 침해로부터 K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흔치는 않지만 표절 논란이 K툰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작가들도 K툰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작품 소재를 다양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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