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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알고 아마존은 몰랐다 … 빅데이터만 믿지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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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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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역사는 이제 ‘하우스 오브 카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13년 넷플릭스가 첫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선보였을 때 미국의 한 TV 평론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한 말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첫 시즌 13편을 일시에 선보였다. 일부 젊은이 사이에서나 사용되던 ‘빈지워칭(binge watching·몰아보기)’이란 말이 이를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궁금한 화요일] 데이터가 다 말해주진 않는다

두 번째 시즌 때도 편당 한 시간 분량의 에피소드 13편을 주말 내내 몰아본 북미 시청자가 67만 명에 달했다. 심지어 몰아보기를 위해 직장에 결근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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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카드’는 평론가들로부터도 최고 수준의 평점(10점 만점에 9.1점)을 받았다. 오리지널 제작 경험이 거의 없는 넷플릭스가 어떻게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칠 수 있었는지 모두 궁금해했다.

넷플릭스의 답은 간단했다. “그동안 축적한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하고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을 맡은 오리지널 시리즈라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에 많은 사람이 ‘데이터가 답이다. 데이터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며 열광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엄청난 성공은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을 일반인에게까지 퍼뜨리는 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넷플릭스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열린 테드 토크(TED Talk)에서 데이터 과학자인 세바스찬 베르니케(Sebastian Wernicke)는 이렇게 반문했다. “사용자 데이터를 다루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아마존이 많은 양의 데이터를 연구해 만든 오리지널 시리즈 ‘알파 하우스’는 왜 실패했는가.” 베르니케는 데이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국 분석한 데이터를 가지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진정한 성공 요인은 사람에게 있지 데이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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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콘텐트 CCO(左), 신디 홀랜드 넷플릭스 부사장(右)

그렇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비롯해 넷플릭스의 드라마들을 줄줄이 성공시킨 주역은 누구일까. 넷플릭스의 콘텐트 수석(CCO)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와 신디 홀랜드(Cindy Holland) 부사장, 특히 둘 중에서도 자체 제작물을 담당하는 홀랜드가 현지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홀랜드는 넷플릭스가 드라마 제작을 위해 신규 영입한 인물이 아니라 10년 넘게 넷플릭스에서 일해온 베테랑이다. 홀랜드는 현재 직원 16명을 데리고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을 총괄하는데, 3조6000억원이 넘는 넷플릭스의 프로그램 예산에서 자체 제작물의 비중은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홀랜드가 ‘하우스 오브 카드’를 처음 기획하던 2011년에는 1200억원에 달하는 제작 예산을 혼자 집행하다시피 했다.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이라면 대개는 철저하게 데이터에 의존해 아주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전략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갈라졌다. 아마존은 8개 프로그램의 파일럿 제작물을 만들어 무료로 공개한 후 시청자의 반응을 데이터로 확인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계속 방영할 작품을 고른 반면, 넷플릭스는 작품이 결정되자마자 한 시즌 13편을 한꺼번에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홀랜드는 그같이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감수하기로 한 배경을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쇼비즈니스 업계 사람들에게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오리지널에 계속 투자할 테니 함께 일해도 좋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했다.” 이는 핀처 감독과 스페이시, 로빈 라이트 같은 화려한 출연진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반면 아마존은 가장 전면에 내세운 ‘알파 하우스’에도 수퍼스타를 캐스팅하지 못했고, 이는 실패의 주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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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들. 왼쪽부터 ‘데어데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하우스 오브 카드’. [사진 넷플릭스]

파일럿을 만들어 띄워보고 시장의 반응을 확인해 가면서 계속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미국 방송계의 관행이기도 하지만 간단하고 실험적인 서비스를 일단 시작한 후 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반복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익숙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넷플릭스가 그런 안전함을 포기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홀랜드는 “파일럿 제작에 쓸데없는 돈을 쏟아붓고 싶지 않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한 시즌을 제작하면 그 콘텐트를 즐길 수 있는 시청자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 뒤이은 넷플릭스의 히트작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아예 첫 시즌을 방영하기도 전에 두 번째 시즌을 계약하는 파격까지 보였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안전한 기획에 더하여 과감한 투자가 성패를 가른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제작 과정에서도 특이점이 있다. 콘텐트의 소비 방식이 변하면 콘텐트 자체도 변하게 된다. 가령 한 편을 보고 나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다음 편을 볼 수 있는 TV 환경에서는 에피소드마다 모든 인물을 골고루 등장시켜야 하지만 시청자들이 한꺼번에 여러 편을 몰아보는 넷플릭스의 드라마는 각각의 캐릭터를 서서히 발전시킬 여유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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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세밀한 전략은 홀랜드와 제작진 사이의 긴밀한 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홀랜드는 “넷플릭스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는 우리가 오리지널 콘텐트의 제작을 전적으로 제작진에 맡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작가들이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처음 의도에서 벗어날 때는 부드럽게, 그러나 직접적으로 개입해 극의 흐름을 유지한다”고 했다. 넷플릭스의 성공은 그들이 가진 데이터의 힘만은 아닌 것이다.

박상현 IT 미디어 칼럼니스트

박상현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디지털 스타트업 회사인 리틀베이클라우드 이사다. 현장에서 본 디지털 기술과 사회적 변화에 대한 글을 다수 발표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콘텐트 전략=넷플릭스의 오리지널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투자는 해외시장 진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부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의 경우 국가별로 별도 라이선스 계약을 해야 하지만 자체 제작물의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올 들어 한국 등 200개 국가로 서비스를 확장해 사실상 해외진출을 마무리한 넷플릭스는 미주·아시아·유럽 등 각 지역 시청자들의 수요에 맞춰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꾸준히 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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