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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보육대란 불만이 정부로 향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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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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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사회부문 기자

지난달 29일 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공방을 주제로 지상파 방송의 심야토론이 방영됐다. 이영 교육부 차관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출연해 처음으로 공개 맞장 토론을 벌였다. 1시간20분간 진행된 토론에서 양측은 누리과정 예산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고 공세를 폈다.

방송이 끝난 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엄마 커뮤니티’에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감상평이 잇따라 올라왔다. 분노의 방향은 대부분 정부를 향했다. “누리과정을 시작하면서 정부가 교부금을 올려주지도 않았다는데 말이 되나” “일단 두세 달 편성해서 급한 불을 끄자는데, 그 다음엔 또 이럴 건가요.”

이 차관은 “교육청이 충분히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엄마 커뮤니티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예산이 부족하면 빚(지방채)도 가용자산으로 쓸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해 “사장이 월급 안 주는 대신 사채회사 소개해 주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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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부는 교육감을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예산 편성을 촉구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교육감이)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삼고 있다”고도 했다. 교육부는 교육청 예산안을 분석해 교육감들이 돈이 있는데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여론조사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육대란이 중앙정부 책임이라는 응답이 45%, 교육청 책임이라는 응답은 27%였다. 특히 응답자 중 미취학·유치원 학부모는 77%가 중앙정부 책임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교육감은 물론 학부모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논리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교육부의 논리가 지극히 단순하다는 데 있다고 본다. 교육부는 지금껏 ‘누리과정 지원금을 교육감에게 줬다→돈 받은 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교육감은 돈 없다는 소리 말고 다른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반복해왔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3일 취임한 이후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세 차례나 찾아가 교사·학부모를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도 “누리예산 편성은 교육감의 의무”라는 원칙만 반복했다. 이 부총리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해결책을 찾겠다고 왔는데 이대로는 못 보낸다”는 원망이 학부모 사이에서 나왔다.

교육부가 교육감을 공격하는 대안으로 보육대란을 해결하긴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갈등을 풀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한편으론 교육감을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 학부모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취했어야 했다. 정부가 시작한 누리과정 사업이 엉클어진다면 국민의 비난은 어쩔 수 없이 정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

남윤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