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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비 27조원 ‘기회의 땅’에 한국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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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1 면

지난 19일 현재 31층까지 올라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시의 킹덤타워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은 2018년 12월 지하 150m, 지상 200층 1008m의 세계 최고층 건물로 완공될 예정이다. 현재 세계 최고층 건물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로 160층 828m다. 제다=김춘식 기자

바벨탑은 흙벽돌을 쌓아 하늘에 다가가려 했던 욕망의 탑이었다. 신은 인간의 오만함을 벌하려 사람들의 언어를 각각 다르게 했다. 의사소통이 안 되자 공사는 중단됐고, 바벨탑은 전설로 묻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21세기 바벨탑이 올라가고 있다. 완공되면 세계 최고층(1008m, 200층)이 될 킹덤타워다. 현재 최고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828m, 160층)보다 180m나 높다.


지난 19일 킹덤타워 공사 현장을 찾았다. 황량한 벌판에 우뚝 솟은 킹덤타워는 현재 31층밖에 올라가지 않았는데도 규모가 엄청났다. 지하 공사만 150m로 지하·지상을 합치면 이미 80층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든 셈이다. 오후 4시가 되자 공사장 인부들이 메카를 향해 절을 올렸다.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킹덤타워 공사장은 언어가 다른 다국적 노동자들로 넘쳐났다. 설계·감리·기술 분야는 미국·유럽에서 온 전문가가, 공사는 사우디인을 중심으로 주로 이슬람 국가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맡고 있었다.


킹덤타워 주변엔 대형 크레인 12개가 세워져 건물을 올리고 있다. 사우디 역사상 최대 건설 프로젝트인 제다 킹덤시티의 중심업무지역이다. 사우디는 킹덤시티를 중동의 금융·무역·관광·쇼핑 중심지로 만들 계획이다. 대학을 포함한 학교와 첨단 병원도 들어선다. 개발비가 226억 달러(약 27조1200억원)에 이른다. 세계적인 투자가 알왈리드 킹덤홀딩스 회장이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킹덤시티는 트램으로 도심 전체와 제다공항, 제다 구도심을 연결할 계획이다. 트램과 다리 2개가 완공되면 제다공항에서 킹덤시티까지 7분밖에 안 걸린다고 한다. 도시 중심에 인공 담수호를 파고 주변엔 1.5㎞ 산책로를 만든다. 수변 공간에 커피숍·레스토랑 등을 배치할 계획이다. 홍해 해변가는 대규모 리조트로 개발한다. 실제 돌아본 홍해는 아름다웠다. 야자수가 늘어선 맑은 바다에서 제다 시민들은 요트와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예전에 방문했던 두바이 인공섬 주변의 탁한 바다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지금도 제다는 메카 순례객 덕분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연 80억 달러를 넘는다. 킹덤시티 개발을 총괄하는 제다이코노믹컴퍼니(JEC)의 카림 이타니 영업마케팅 본부장은 “예로부터 제다 시민들은 내륙의 수도 리야드 시민에 비해 개방적이었다. 킹덤시티가 개발되면 제다의 관광 수입은 현재의 10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킹덤시티는 두바이·카타르를 제치고 중동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겠다는 야심 찬 전략을 갖고 있다. 이들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 우선 제다는 인구가 400만 명에 육박해 레바논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이슬람의 양대 성지인 메카·메디나를 찾는 유동 인구를 합치면 규모면에서 두바이·카타르를 압도한다. 또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된 사우디 증시(시가총액 5700억 달러)는 중동에서 가장 크다. 외국인 투자가 몰리면 중동의 금융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무니브 하무드 JEC 대표는 “킹덤시티를 국제적인 면모를 갖춘 중심도시로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의 중동 근거지로 제다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19일 알왈리드를 만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제다에 ‘사우디-중국자유무역지대’를 만드는 데 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모든 자금 결제를 위안화(RMB)로 하자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시진핑의 ‘경제 책사’인 류허 재경중앙영도소조 주임의 아이디어다.


유가 폭락으로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980억 달러(117조6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말 사우디의 순해외자산은 1386억 달러로 줄어들 전망이다.


사우디도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경제발전 장기전략에 따라 석유화학·자동차·가전·금속 등 제조업은 물론 금융·의료·교육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리야드 킹칼리드 국제공항은 여객 처리 능력을 현재보다 두 배로 늘리기 위해 터미널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사우디는 한국에 기회의 땅이었다. 1976년 현대건설이 따낸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당시 국가 예산의 4분의 1에 맞먹는 외화(9억3114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제다 킹덤시티 현장에 한국 건설업체는 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2005년 이해찬 총리의 중동 5개국 순방에 동행했을 때 우리 기업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를 건설하던 삼성물산과 제다에서 담수화 플랜트를 짓던 두산중공업의 엔지니어들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제다의 킹덤타워는 사우디의 빈라덴 그룹이 시공한다. 빈라덴 그룹은 이미 메카 카바신전 앞의 일명 ‘클락 타워’(120층)를 시공한 경험이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다른 나라들의 경쟁력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461억 달러에 그쳤다. 중동에서만 148억2000만 달러가 줄었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장은 “해외건설도 이제 설계·조달·시공(EPC)만 하는 단계에서 투자와 사후 운영관리도 책임지는 디벨로퍼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4~5면


제다=정철근 기자?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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