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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발자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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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2월의 키워드는 ‘발자국’입니다. 사라진 문명의 흔적, 세계 유명 작가들의 독서 이력, 우리네 삶의 여정이 결국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깨달음의 발자국을 찍는 과정이라는, ‘발자국’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세 권을 소개합니다.

사라진 고대 문명의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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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람들
그레이엄 핸콕 지음
이종인 옮김, 까치
612쪽, 2만3000원

선사시대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그레이엄 핸콕의 ‘논쟁적 도전’은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1995년 『신의 지문』을 펴내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라선 핸콕이 그 속편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출간된 후 최근 국내에도 번역돼 나온 『신의 사람들』이다. 원제는 ‘Magicians of the Gods: The Forgotten Wisdom of Earth‘s Lost Civilization’.

 문명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며, 그것도 높은 수준을 과시하다 천재지변에 의해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그렇다고 보는 저자의 가설은 이번 신작에서 그동안 새로 찾은 증거들을 앞세우며 강화된다.

그저 황당무계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원서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사라진 고대 문명의 역사에 담긴, 지금은 잊혀진 지혜를 찾겠다는 명분을 내건 도전을 그냥 내칠 순 없을 것 같다. 문명의 역사를 헤집는 그의 시각은 마지막 빙하기 끝 무렵인 1만2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에 목말라하던 핸콕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진 건 『신의 지문』 출간 이듬해인 199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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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 테페의 돌기둥들은 1만2000여 년 전 것으로 보이지만 용도는 아직 수수께끼다. [사진 까치]

그해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터키 동남쪽 아나톨리아 고원 지역에서 선사시대 유적지를 발견한다. ‘괴베클리 테페’(터키어: Gobekli Tepe·배꼽의 언덕 혹은 배불뚝이 언덕)라고 불린다. 인류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던 시기의 유적지인 이곳에는 높이 5.5m에 무게가 15t 이상 나가는 어마어마한 돌 기둥들이 매장돼 있었다.

2014년까지 진행된 조사를 보면 거석 기둥이 10여 개씩 모여 있는데, 그런 무더기가 최대 50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기둥에는 각종 동물 조각까지 새겨져 있었고, 농업의 흔적도 발견됐다.

 이 기둥들은 1만2000여 년 전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기념비적 건축물로 추정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발견자 슈미트를 포함해 고고학계는 대개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슈미트는 ‘사자(死者)들의 도시’였으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하지만 2013년 슈미트와 함께 이곳을 답사한 핸콕은 ‘사라진 문명’의 증거로 격상시켰다.

 핸콕의 지적처럼 이같은 거대한 기둥을 가공·조각하고 운반하는 일은 단순히 수렵-채취로 살던 단계에선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당 수준의 토목 기술과 운반 수단 등이 필요했으리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사라졌을까. 책에 따르면 1만2800년 전 발생한 거대한 혜성과 지구의 충돌, 그로 인한 대홍수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로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생존자들이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마법사들’ ‘하늘의 신비로운 교사들’이다. 그들이 사라진 문명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의 하나가 괴베클리 테페 같은 유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요지다.

 이런 식으로 고대 문명사를 재구성하는 핸콕의 답사 기행은 미국 워싱턴 주에 남아 있는 대홍수의 흔적, 페루의 거석 유적물, 인도네시아의 피라미드 등으로 이어진다.

[S Box] 21세기 문명도 아틀란티스처럼 감쪽같이 사라질까

바닷속으로 하룻밤새 사라졌다고 하는 아틀란티스, 그 신비의 대륙을 처음 기록한 이는 의외로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플라톤(BC 427~BC 347)이다.

그의 저서 『크리티아스』와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이야기는 20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수수께끼 같은 논쟁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레이엄 핸콕은 플라톤의 기록을 사실로 믿는 쪽이다. 고고학계에선 대개 신화나 전설 혹은 플라톤이 상상력으로 묘사한 이상향으로 본다.

 아틀란티스에는 잘 정비된 사회 조직, 우수한 군사력, 풍부한 지하자원과 농산물이 존재했다가 엄청난 지진과 홍수에 의해 갑자기 사라졌다고 플라톤은 적어 놓았다.

사라진 문명의 흔적을 찾는 핸콕의 도전은 ‘21세기 아틀란티스’를 찾는 여정이다. 그것은 존재의 사실성 여부를 떠나 각박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무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틀란티스 문명이 탐욕과 교만,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사라졌듯이 21세기 문명도 그럴 수 있다는 작가의 예견은 덤으로 주어진 경고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NYT가 명작가들에게 독서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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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
패멀라 폴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592쪽, 2만원

딱 하나의 질문으로 어떤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싶을 때 “무슨 책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취향과 가치관, 관심사 등 그 사람의 은밀한 내면세계가 좋아하는 책 목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작가 인터뷰 코너 ‘바이 더 북(By the Book)’을 운영하면서, 오직 책에 대한 질문만 고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듯싶다. 『작가의 책』은 이 중 작가 55명의 인터뷰를 추려 묶은 책이다.

 작가들은 솔직하고 거침없이 자신들의 독서 세계를 공개했다. 『아웃라이어』 작가 맬컴 글래드웰는 “톨스토이 책은 한 권도 못 읽어 봤다”고, 배우 엠마 톰슨은 “『레미제라블』을 읽다 지쳐 끝까지 못 읽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소설 『캐나다』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리처드 포드의 대답도 흥미롭다. ‘과대평가된 책’을 묻는 질문에서도 의외의 대답이 쏟아졌다. 『연을 쫓는 아이』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는 『오만과 편견』을 꼽았다.

 같은 작가, 같은 책을 놓고 작가들은 제각각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황금방울새』의 작가 도나 타트는 “헤밍웨이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지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고등학교 시절 알게 된 헤밍웨이가 내게 가능성과 허용의 범위를 활짝 열어 줬다”고 말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며 여러 번 등장했다. 책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개인적인 경험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들의 진솔한 대답은 독서 욕구를 자극한다. 알랭 드 보통을 사로잡은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존 그리셤이 최고의 법정소설로 꼽은 『앵무새 죽이기』,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회사 운영에 적용시켰다는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등은 들춰보고픈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 “술술 읽히는 책은 침대에서 읽고, 좀 어려운 책은 차에서 오디오북으로 듣는다”는 『뷰티풀 마인드』의 저자 실비아 네이사의 독서 습관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원제 ‘By the Book’.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살아봐, 바로 옆사람 때문에 힘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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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1·2
니시 가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은행나무
1·2권 각 460·428쪽
각 권 1만3800원

일본 특유의 사소설(私小說) 성격이 짙은 장편소설이다. 저자는 이슬람 혁명 직전인 1977년 이란에서 태어나 이집트, 일본 오사카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흔치 않은 이력인데, 소설의 주인공 ‘아유무’의 인생 궤적이 정확히 겹친다.

때문에 소설 초반의 긴장감은, 작가가 자신의 인생 자체를 가감 없이 기록한다는 ‘사소설 문학 강령’에 신간 『사라바』가 들어맞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데서 온다.

 하지만 아유무는 사내 아이다. 저자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여성. 사소설적 ‘팩트’와 소설의 허구가 갈라지는 분기점들이 있다는 얘기다.

특히 어려서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편이었으나 중·고교 시절 축구를 열심히 한 결과 대학생이 되서는 넘치는 체력을 주체하지 못해 뭇 여성들을 농락하고 다니는 대목에서는 저자와 주인공을 동일 인물로 보기 어렵다.

 소설은 현대 일본의 사회경제사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가나코, 아니 아유무 가족의 이란·이집트 체류는 정확히 80년대 후반 일본 버블 경제의 몰락 직전까지다. 95년 고베 대지진과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테러, 심지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이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바탕 위에서 저자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아유무 내면의 갈등과 아픔을 솜씨 좋게 직조해 나간다. 백미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치밀한 심리 묘사.

가령 이집트라는 낯설고 두려운 환경에 뚝 떨어진 초등학교 1학년생 아유무는 무섭기만 한 이집트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웃고는(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다), 곧 자신의 나약함을 한탄한다.

성장하며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겸연쩍은 장면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보편적이다.

 아유무의 고뇌는 대부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의 실패’에서 온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끝내 일어나 걷는다. 그의 한자 이름은 걷는다는 뜻의 ‘步(보)’. 비결은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의미 부여하기다. 소설 제목 ‘사라바(サラバ)’는 ‘안녕’이라는 뜻의 일본 인삿말이지만 아유무는 다급할 때면 주문처럼 사용한다. 시시콜콜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작품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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