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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안철수의 새정치 벌써 후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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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지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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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박지원 의원이 28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박 의원은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에 합류할지를 묻는 질문에 “국민의당에서 여러분들이 함께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박 의원은 저축은행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 중이다. 1심에선 무죄였으나 2심에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국민의당에서 이런 걸 문제 삼지 않느냐고 묻자 박 의원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 의원과 가까운 인사는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모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민의당 현역 의원은 28일 현재 17명이다. 교섭단체(20명)를 구성하려면 3명이 더 필요하다. 교섭단체는 국회에서 원내 3당의 위치를 공인받는 명분도 명분이지만 국고보조금 90여억원(교섭단체가 안 되면 30여억원)이란 실리도 챙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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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문제는 더민주를 탈당하기 전, 그리고 탈당한 이후 쏟아놓은 안 의원의 ‘말(言)’이다. 안 의원은 더민주를 탈당하는 이유 중 하나로 문재인 대표가 당 혁신안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 혁신안에 안 의원은 “부패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당원은 즉시 당원권을 정지하고, 당직은 물론 일체의 공천 대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당한 뒤에도 "인재 영입의 첫 번째 기준은 반(反)부패”라고 했다. 안 의원의 이런 원칙은 지금 ‘교섭단체’라는 목표 앞에 흔들리고 있다. 안 의원은 입법로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신학용 의원의 합류도 허용했다. 논란이 일자 안 의원은 “신 의원은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입당 문은 낮추고 공천은 도덕성 기준을 높이겠다”고 해명했다. 입당 따로, 공천 따로인 고무줄 잣대인 셈이다.

선거 때가 되면 여의도에 “표는 피보다 진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표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게 한국 정치란 얘기다. “새 정치”를 앞세워 새 살림을 차린 안 의원도 그런 여의도 논리에 이젠 물들어버린 걸까.

더민주 쪽도 덕지덕지 때가 묻고 있다. 당 윤리심판원이 ‘시집 강매’ 의혹의 책임을 물어 당원자격정지 6개월을 결정한 노영민(3선·청주 흥덕을) 의원, 아들의 로스쿨 졸업시험과 관련해 구제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아 당원 자격정지 3개월을 받은 신기남(4선·서울 강서갑) 의원에 대해 소속의원 30여 명이 징계가 가혹하다는 탄원서를 준비했다. "당의 혁신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다”(이철희 뉴파티위원장)는 비난이 쏟아지자 의원들은 서명 작업을 중지했다. 한 재선 의원은 “우리끼리만 동정하다 총선에서 다 죽는 걸 모르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이지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