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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미래를 열 것인가, 종말을 맞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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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철근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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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3년 전 동종업계 교수들의 반발로 곤욕을 치렀다. 새너제이주립대에서 ‘사회정의’란 샌델 교수의 온라인 강의를 개설하려고 하자 그 대학 인문대 교수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싸구려 온라인 강의가 학생들과 직접 교감하는 전통 교수법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배경에는 샌델 같은 스타 교수에게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었다. 새너제이주립대와 제휴한 온라인 교육업체는 에드엑스(Edx)였다. 에드엑스는 코세라·유다시티와 함께 온라인으로 유명 대학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표적인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서비스다. 일부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의 효과를 문제삼았지만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에드엑스 수강생들에게 부과되는 숙제와 시험은 MIT 학생 수준으로 어렵게 나온다. 반면에 비용은 가난한 국가의 학생들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에드엑스를 통해 MIT에서 제공하는 최고의 컴퓨터공학 프로그램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각종 평가와 이수 증명서 발급 비용으로 단돈 430달러 정도를 내면 된다.

무크 등장으로 세계 명문대학 디지털 혁신 중
한국 대학 수요 맞춰 개혁 안 하면 도태될 것

하버드와 MIT에서 시작한 에드엑스는 점점 커지고 있다. UC버클리 등 미국의 명문대는 물론 인도의 천재들이 간다는 IIT(인디아공대), 일본 교토대, 한국 서울대 등이 가세했다. 기득권을 지닌 전통의 명문들이 오히려 새로운 혁신의 물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학이 비싼 수업료를 포기하면서 무료 서비스에 참여한 배경에는 훨씬 큰 글로벌 교육시장을 장악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MOOC가 부상하면서 오프라인 교육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대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 등록금은 사상 최고로 비싸졌지만 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예전만 못하다. 한국 대학의 투자수익률은 지난해 기준 7.48%로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인문사회계의 수익률은 6.28%에 불과하다. 의약계열(13.8%), 공학(9.5%)에 비해 훨씬 낮다. 그런데 의약·공학계열의 인력 수요는 앞으로 더 모자라고, 인문사회·예술계의 인력 공급은 넘칠 것으로 전망된다. 10여 년 전 이공계 기피 현상이 극심했을 때부터 사회의 수요에 맞춰 대학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도 구조개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뒤늦게 노동시장의 인력 수요를 고려한 대학 구조조정에 나섰다. 일명 ‘산업 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이다. 산업 수요에 맞춰 대학의 학과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올해만 2012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강제 구조조정이 어려우니 재정 지원이란 ‘당근’을 통해 대학들의 자발적인 개혁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대학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급자, 즉 대학 교수들의 반대다. 정원 감축 대상이 된 전공 분야의 교수들은 학문의 다양성을 내세운다. 공학 전공자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데 사회과학은 너무 낮다는 미국과학재단의 2014년 지표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14년 기준 한국 대학 입학자 중 인문계열은 12%, 사회계열은 26%로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 상태다. 대부분의 인문사회 계열 졸업자들은 취업시장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 전공 분야 교수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공대는 개념설계 같은 창의적인 역량을 가르칠 준비가 안 돼 있다. 특히 온라인 강의처럼 새로운 매체를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이정동 산업공학과 교수는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의 제언을 모은 책 『축적의 시간』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잘나가는 공대도 산업계의 현실과 거리가 먼 방향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이다. 디지털이 가져온 변화의 파도 속에서 대학은 아날로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학제, 전공, 커리큘럼, 교수법 등 시스템이 수십 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공급자(대학·교수)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수요자(학생·기업·사회) 입장에서 대학교육 시스템의 큰 틀을 다시 짜야 한다. 한국의 대학이 새로운 미래를 열지,아니면 종말을 맞을지는 혁신에 달려 있다.

정철근 중앙SUNDAY 사회에디터